사법부의 '비선 실세', 법원행정처

[기고] 법원행정처 혁파가 사법개혁의 출발점이다

2016년 7월 기준으로 대법원장이 임명·제청·추천·위촉할 수 있는 자리는 약 1만 6,092개에 달했다. 법관 2968명과 법원공무원 1만2995명에 대한 인사권은 물론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구성에 관여할 수 있는 자리가 129개로 집계되었다. 이렇게 법관의 임용과 보직발령 등이 모두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된다. 가히 제왕적 권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제왕적 권력 뒤에는 반드시 비선 조직이 존재하게 된다. 대법원장 배후에도 법원행정처라는 거대한 비선 행정조직이 존재한다.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에 관한 인사정보와 업무정보 등을 수집, 확보해 실질적인 인사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행정 사무관리(administer) 업무를 지원하는 기관이 비대해짐으로써 이러한 행정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관료적 질서를 구축하면서 조직 내 여타 기관 위에 '비선 실세'로 군림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 관료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아직 널리 드러나 있지 않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지만, 가장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운영되어야 할 사법부에서 오히려 이러한 비선 조직의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 취지를 넘어서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시, 감독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전체 법관과 전체 재판을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인사관리실이나 기획조정실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법원 전체를 통제하는 강력한 중앙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법관 인사 문제는 법관인사위원회 등의 기구에 귀속되어야 한다. 또 사법정책연구도 법원행정처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과도하다. 각종 사법정책 연구는 별도의 연구소에서 진행될 일이며, 그것이 인사와 기획조정의 기능을 지니는 법원행정처의 내부 조직화해 수행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법부는 독립했지만 법관은 독립하지 못했다


흔히 사법부 독립이라 하면 3권 분립의 주요한 내용으로서만 이해돼 왔다. 과연 사법부의 독립이란 어떠한 개념인가? 또 사법부 독립은 법관의 독립과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는 것인가?

'사법권의 독립'이란 "법관이 어떠한 외부적 간섭을 받음이 없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판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해 사법권 독립의 핵심은 타국가기관(他國家機關)으로부터 독립된 사법기관의 구성원인 법관이 외부(주변)로부터의 일체의 영향이나 압력을 받음이 없이 법 독자의 논리에 따라 그 기능을 수행하며 또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사법권 독립은 과거 군사정권 시대까지는 주로 행정부로부터의 사법권 독립이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오히려 사법부 내부, 즉, 법관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는 사법 상층부로부터의 개별 법관의 독립이 크게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사법권 독립과 관련해 가장 크게 문제되고 있다.

독일 기본법 제97조 제2항은 "(법관은) 법률의 판결이나 법률이 정하는 형식 및 이유에 의해서만 법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전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법관의 전보 인사를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해 독일에서는 특정 법원의 법관으로 임명되면 퇴직까지 계속 한 법원에서 근무할 수 있다.

우리 헌법도 "재판상의 법관 독립"을 명문화하고 있기는 하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법관은 헌법과 법률 및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할 것이 요구되고 있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법원은 법원행정처의 주도로 대법원장이 전국의 판사들을 절반씩 나눠 매년 인사를 하고, 당사자들은 2년에 한 번씩 인사를 당해야 한다. 마치 군대 조직처럼 철저하게 서열화된 채 법관의 계층화와 관료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해 우리 사법부의 현실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법부는 독립했지만 법관은 독립하지 못했다."

법원행정처는 일제 식민지 잔재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법부란 조직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곧 심판기관이요 사법부이다. 하지만 우리 사법부는 군사 독재시대의 사법부의 틀을 유지하면서 상급자에 의한 주관적 근무평정을 전제로 한 피라미드식 다단계 승진구조로 인해 법원 내부에 관료주의의 폐단이 심각하다. 이러한 관료주의는 독립적인 법관의 판단에 장애를 일으킬 위험 내지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과 양립할 수 없다. 특히 법관의 '승진'이라는 개념은 법관의 직무와 기본적으로 부합되지 않는다.

사법부 중앙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되는 인사관리나 통일된 사법정책 기획 혹은 사법정책 조정의 업무 나아가 사법정책에 관한 제반 연구조사 사업들은 그 자체로 사법 독립과 부합되지 않는 개념들이다. 본래 독립기관이어야 할 법관에 대해 상급 판사가 근무평정을 하고, 중립성이 의심되는 인사위원회가 법관들에 대한 인사 과정을 심의하는 현재의 인사 시스템이 강력하게 작동되는 한, 법관의 독립을 기대할 수 없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의해 재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기획해 정립, 조정된 사법정책이 이를 통제하게 되고 법관은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을 통한 관리, 통제는 상명하복의 계급질서 속에 모든 법관을 편입시키게 된다.

이는 사실상 '검사동일체' 원칙처럼 일종의 '법관동일체'의 원칙과 다름없으며,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사실상 법관의 독립은 부정당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법원행정처라는 이 독특하고도 기이한 기구는 선진국 중 가장 사법 후진국인 일본을 제외하고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듯 사법 관료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법원행정처는 일본 식민지시대의 잔재이다. 즉, 일본 제국 시대에 일본의 전체 법원과 재판관을 지배, 통제했던 사법성(司法省)을 그대로 모방한 제도인 것이다(사법성은 이후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법원행정처의 혁파는 사법 개혁의 출발점이다. 법원행정처의 개혁 없이, 사법 개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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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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