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정부, 탄핵 정국에 철도 민영화 카드 또 꺼냈다

[기고] 국토부발 한국 철도 잔혹사, 이제는 끝내야 한다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 12월 19일 저녁, 나는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경기도 양평에 있는 용문사에 들렀다가 서울로 향하는 6번국도 위에서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휴일 저녁 꽉 막힌 국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동안 대선 출구 조사 결과 방송이 시작되는 오후 6시가 되었다. 라디오에서 6시를 알리는 시보가 울리고 뉴스 아나운서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출구 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 승리 예측을 밝히자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며 경적을 울렸다.

환호했던 가장 큰 이유는 철도의 앞날 때문이었다. 당시 국토교통부(국토부)의 전신이었던 건설교통부(건교부)는 철도 민영화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100년 독점 국유 철도 체제로 인한 철도 부실을 민영화로 효율화하겠다는 게 건교부 철도 정책의 목표였다. 대선 전 2년여 동안 건교부는 자신들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유력 회계 법인의 연구 용역을 앞세워 강력한 철도 민영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관료들은 철도 민영화를 차기 정권의 핵심 추진 과제로 삼으려 했다. IMF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구조조정의 유력한 방편으로 간주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정부의 철도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국가 경제의 중요한 기반인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철도 민영화를 간절히 바라는 건교부와 이에 반대했던 시민사회와 철도노조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동언

관료 본색…정권 말엔 '못 박기'·정권 초엔 '드라이브'

결국 참여정부의 철도 개혁 대안은 민영화 대신 공공성을 바탕으로 철도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큰 틀의 합의와 무관하게 관료들은 철도의 공공성을 약화하고 시장 경쟁 논리를 강화하는 정책을 관철했다. 관료들은 겉으로는 청와대와 집권당에 머리를 숙였지만 풍부한 정보와 오랫동안 다루어온 정책 수완을 바탕으로 집권세력을 컨트롤 했다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인 것처럼 세탁하거나 국제적 추세로 포장하는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수행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관료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구현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근본적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국토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철도 정책을 정권 초기와 말기에 밀어 붙여왔다. 정권 초기 대통령과 집권당의 힘이 있을 때 추진하거나, 정권이 바뀌면 추진할 수 없는 조건일 때 ‘대못 박기 식’으로 관철했다. 이명박 정권 말기에 수서고속철도 민영화 안을 밀어 붙인 사례나 박근혜 정권 초기에 국민과 철도노조의 반대에도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설립을 밀어 붙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도 공기업 효율화 정책이 제시됐다. 목표연도까지 적자 해소가 안 될 경우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다행히도(?) 4대강 사업에 매진하면서 철도 민영화 정책은 임기 말에 추진되었다가 강력한 사회적 반대여론으로 다음 정권으로 이월됐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자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환호했던 것 이상으로 실망했다. 아니나 다를까 국토부는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3년 속전속결로 경쟁체제 도입이란 미명아래 고작 60여 킬로미터의 신선 건설을 빌미로 수서고속철도를 분리했다.

탄핵 정국에 나타난 '3차 철도산업 발전 기본계획'

탄핵 정국이 이어져 오고 정권 교체의 희망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가 철도 민영화 욕심을 버린 것은 아니다. 국토부는 오는 2020년까지 적용될 제 3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을 지난 8일 확정 고시했다. 내용을 뜯어보니, 지난 20여 년 밀어붙여 온 철도 정책이 정권 교체 후 제동이 걸릴 것을 사전에 막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철도 경쟁 체제는 국토부의 시대적 사명이다.

국토부는 수서고속철도 경쟁도입의 효과가 눈부시다며 이와 같은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3차 기본 계획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눈부신 경쟁 체제의 빛에 가려진 실상은 참혹하기만 하다. 수서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한국 철도 전체 이용 환경이 개선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악화하고 있다. 열차 편수가 증가하고 좌석 공급량이 늘게 되므로 국민들은 더 편하고 편리한 철도를 누려야 하지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침 시간 출근 시민들의 발 역할을 했던 일반 열차들이 감축됐다. 이에 따라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열차 이용자들의 불만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서울, 용산역에서는 마산, 창원, 진주, 포항 같은 도시에 고속열차를 직통으로 타고 갈 수 있지만 수서역에서는 불가능하다. 네트워크 산업은 상호 조화와 협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특정 부분만 소통할 수 없게 묶어 버렸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코레일이 수서 고속철도를 통합 운영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를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한 국토부의 작품이다.

눈부신 경쟁 체제의 효과는 이것만이 아니다. 당장 수입 감소로 인한 효율화 압박을 받는 코레일은 수익성 우선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올해 지방 적자선 등을 보조하는 공공 서비스 의무 지원금(PSO)을 전년 대비 650억 삭감했다. 지방 노선의 폐선이나 운행 감축, 민영화를 바라는 정부가 지방 적자선의 산소 호흡기를 살짝 빼버려 안락사를 유도한 셈이다.

이에 화답하듯 경전선, 동해 남부선, 영동선, 태백선, 대구선, 경북선의 열차 운행을 대폭 줄이겠다는 코레일의 발표가 있었다. 경제, 교육, 의료, 문화 등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지방이다. 그나마 서민의 발 노릇을 하고 있는 철도 운행을 감축함으로써 이제는 공공 교통수단의 맥조차 끊기고 있다.

'한국 철도 잔혹사 완결판' 써낸 관료도 청산해야

국토부가 내민 제3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의 내용은 그동안 국토부 발로 진행되어온 한국철도 잔혹사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철도의 자연 독점성을 시장 독점으로 치환한 뒤 '독점은 악'이라는 단순논리에 기댄 프레임으로 경쟁 체제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쟁 체제의 핵심 내용은 다수의 철도 운영자를 두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3차 계획에서 국토부는 특별히 새로 건설되는 신선의 경우 민간 참여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민영 철도 시대를 열겠다는 다짐이다. 또한 철도공사의 유지보수, 정비, 물류 분야를 잘게 쪼개 외주화를 확대하거나 민간 참여를 유도하겠다고도 밝혔다.

철도의 비전을 제시하는 장의 철도 안전 항목에는 유지보수 인력 효율화가 필요하다며 2020년까지 줄여야 할 인력 목표치까지 제시했다. 안전을 위해 유지보수 인력을 줄이겠다는 형용모순 가득한 말이 미래 비전으로 버젓이 올라있다. 안전과 효율은 동시에 만족되는 대상이 아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람이든 시설이든 그만큼 투자가 따라야 하고 이것은 비용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은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없을지 몰라도 그 덕에 시민들은 생명을 지킬 수 있다. 효율을 위해서 안전이 조금이라도 무시되는 순간 세월호 같은 참사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다.

3차 계획에서 더 황당한 것은 수익이 보장된 고속선이나 신설노선의 경우에는 민간에 개방하고 적자 선은 코레일에 맡기겠다는 안이다. 공공교통을 책임지는 중추기관인 철도공사를 잘게 쪼개고 그나마 적자에 허덕이는 부실기업으로 만들어 얻는 철도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커녕 극우단체 관제데모에 돈을 대는 재벌들의 수익창구로 철도를 헌납하겠다는 것이 철도발전계획이라면 이것은 민주공화국의 정책이 될 수 없다.

지난해부터 촛불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이나 정권교체만으로 한국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회 각 분야에 고질적으로 쌓인 병폐들을 전방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게 민심이다. 이런 개혁에는 권한과 정보를 갖고 반시민적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관료들의 청산도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수십 년간 철도를 농단해온 국토부 철도 관료들의 인적청산과 개혁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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