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끼려 사람을 죽였다. 월급이 올랐다!"

[기고 ] 박근혜 정부의 성과 연봉제,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 선로 유지 보수를 책임지는 두 사람의 현장 감독이 있다. 물론 두 명의 기관사나 차량 정비원으로 대체해도 상관없다. 한 사람은 승객의 안전을 우선시해서 1년에 열차를 대여섯 번 멈춰 세우지만 다른 한 사람은 강심장이라 그럴 때마다 열차를 통과시킨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성과급으로 봉급이 더 오르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철도가 민영화된 영국 사우스 웨스트 선로 보수 노동자가 던진 말이다. 이 노동자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기 돈 벌려고 모험을 감행하는 녀석들이 천직을 얻은 셈이죠."

박근혜 정부가 공공 부문을 개혁하겠다며 공기업에 반강제적으로 성과 연봉제를 도입했다. 처음부터 노동조합의 의견은 무시됐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카운터 파트너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은 적이 없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노동조합을 배제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정부의 반 노동 성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성과 연봉제 도입 시한을 지정하고 그 안에 노사 합의가 되지 않는 공기업에 대해서는 큰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부의 협박은 경영진의 일방통행을 부추겼다.

한국철도공사에 성과 연봉제가 도입된다는 것은 철도공사 모든 직원의 행동 우선순위에 성과가 자리 잡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과는 수익성, 곧 돈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적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기업이 수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원론적인 문제를 뒤로 하고라도, 성과주의는 금이 가기 시작한 봄날의 빙판처럼 위험하다.

철도의 효용성은 개인의 성과보다 기반 시설이 담고 있는 사회 경제적 조건이 좌우한다. 같은 매표소에서 일하더라도 시골역과 서울역의 매출액은 개인의 역량과 상관이 없다. KTX의 매출액이 높은 것은 KTX가 갖는 효용성의 결과이다. 철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런던의 역마차 회사들이 몰락하고 KTX가 개통되면서 대구와 포항의 국내선 항공편이 경쟁력을 잃은 것도 같은 이치이다.

▲ '돈 아끼려다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사실일 수밖에 없다. 효율을 강조하다 보면 안전은 등한시되기 마련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철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심지어 중간 관리자조차-과연 무엇으로 성과를 측정할 것인가? 과연 업무 성과를 계량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갖고 있다.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들만 해도 주 업무인 운전을 한 달간 균등하게 나누어 하고 있다. 특정 기관사가 더 많이 근무하는 것이 아니다. 또 어떤 기관사는 운전을 대단히 잘하고 어떤 기관사는 막무가내 식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적절한 운전능력이 없으면 승무를 할 수 없다. 당연히 업무에서 성과를 낸다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이 같은 구조는 열차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일정 조건과 기술 이상의 표준화된 업무 능력에 기반 해야만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사들을 A, B, C, D, E 등급으로 나눈다는 것은 말이 안 되거나 불필요한 기준을 억지로 이식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병가를 냈다가는 등급이 내려갈 것을 우려해 감기몸살에 걸린 기관사가 억지로 출근해서 성과를 내는 것은 승객들에게 좋은 일일까? 시시 때때로 업무 능력 필기 시험을 봐서 점수를 반영하면 성과가 좋아질까? 필기 시험 성적이 낮은 운전 경력 30년의 50대 기관사가 모는 열차는 위험할까?

철도청 공무원 시절 일부 철도 직원들은 특별 상여금을 받았다. 이때도 경쟁을 통한 직원 업무 능력 향상과 철도수익 증대를 모토로 삼았다. 약 20% 정도의 직원이 근무 평정을 거쳐 2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의 돈을 받았다. 일부 직원은 쉬는 날 사업소에 출근해 화단을 관리하거나 물청소를 했다. 또 어떤 직원은 소속장의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심지어는 관리자의 술자리에 호출되어 대리운전까지 했다. 이런 사람들은 승진서열 앞자리에 서고 연말에 현금을 챙겨갔다. 성과제가 직원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불신과 반목,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 되었다.

철도는 경쟁이 아니라 공동 작업을 통한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산업이다. 기관사와 정비팀, 신호 취급자와 선로 유지 보수팀이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성과 경쟁은 이런 관계를 심각하게 균열 낼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거짓과 은폐가 수시로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고가 발생할 뻔하거나 발생했을 경우 사고 관련자와 소속은 성과 연봉제 적용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때문에 책임을 면할 방도만 찾게 된다. 사고 원인을 찾아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은 뒷전으로 밀린다.

철도 사고는 한 가지 원인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관계된 여러 분야가 상호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고리가 느슨해지는 순간 사고가 불쑥 찾아온다. 성과 연봉제는 사고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기 위한 고도의 지능 게임이 된다. 정보가 차단되고 실수가 은폐된다. 사고의 본질적인 원인보다는 눈에 드러난 단순 실수가 과장된다. 서로가 적으로 내몰려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하게 되는 대가로 얻는 성과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성과 연봉제는 노조도 무력화 시키게 된다. 노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거나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을 때 저성과 낙인을 찍었던 사례는 수 없이 많다. 경영진이 강제전출이나 크고 작은 징계로 노조를 압박하고 성과 달성에 내몰린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노조를 외면하게 될수록 노조의 힘은 약화된다. 이런 틈을 타 사측의 하위 행동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앞세운 노조가 세를 얻으면 노동조합의 민주성은 상실된다. 공기업 노조가 무력화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공기업 노조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공기업이 제대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감시하는 임무도 부여받고 있다. 부정이나 비리, 부실의 문제에 대해 앞장서 질타하고 필요하다면 내부 고발을 통한 공익 제보자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러나 노조가 무력화되고 모든 구성원들이 무한경쟁에 내몰려 좀비처럼 성과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공기업 감시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된다. 그만큼 투명한 공기업, 건강한 공기업은 멀어진다.

정부는 성과 연봉제가 노동 개혁의 중요한 축이라고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공기업의 문제는 주인인 국민들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도록 막고 있는 역대 정권과 이를 방치한 정치권이 만들어온 것이다. 정권 입맛에 맞춘 낙하산 인사와 그들만의 리그로 불리는 이사진 등 주인인 시민들의 이해가 반영되지 않는 폐쇄적 구조 속에 쌓인 병폐가 한 둘이 아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성과 연봉제라는 허울 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기업 개혁에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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