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폐수'는 朴정부서 어떻게 '에너지 신산업'이 됐나

[초록發光] '눈가리고 아웅'하는 박근혜 정부의 '고무줄 통계'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은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뜻한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발견된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게 된 것도 '최순실 경로 의존성' 때문 아니던가. 한 번 잘못 들어선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처럼 전 국민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몸소 체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지난 4년간 혹은 그 이전 정부들이 결정해놓은 경로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에너지 기후 분야만 해도 온실가스 감축과 각종 에너지 관련 계획 및 정책 등 당면한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그 중에서도 신·재생 에너지 분야는 "한국 재생 에너지 비중 1%…OECD 최하위", "신재생 에너지 공급량 OECD 꼴찌…원전 중심 정책 벗어나야"와 같은 기사 제목이 말해주듯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 시스템은 경제성 위주의 값싼 원자력과 석탄화력 발전에 의존해 온 지난 수십 년 간의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한국은 1987년 '대체 에너지 개발 촉진법'을 제정했고, 2004년 '신에너지 및 재생 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으로 개정하면서 신재생 에너지 기술개발 및 보급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또 1997년 제1차 대체 에너지 개발 기본 계획을 시작으로 2014년 제4차 신·재생 에너지 기본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발전 차액 지원 제도(Feed in Tariff: FIT)를 시행했고, 2012년부터는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Renewable energy Portfolio Standard: RPS)를 시행하고 있다.

FIT는 신·재생 에너지의 생산 비용과 전력 시장 도매 가격의 차이 만큼을 신·재생 에너지 사업자에게 보전해주는 제도이고, RPS는 일정 규모(50만kW)이상의 발전 설비(신·재생 에너지 설비 제외)를 보유한 발전 사업자(공급 의무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토록 의무화한 제도다.

1.5% vs. 6.6%

신·재생 에너지 관련 법과 계획, 제도가 갖춰져 있음에도 한국의 2015년 총발전량 대비 재생 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1.5%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아이슬란드(100%), 노르웨이(97.9%), 뉴질랜드(80.1%), 오스트리아(77.7%), 캐나다(65.6%), 스위스(64.2%), 덴마크(63.2%), 스웨덴(63%), 포르투갈(47.8%), 핀란드(44%), 칠레(41.5%) 등 재생 에너지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물론, 이탈리아(39.9%), 스페인(35.6%), 독일(31.5%), 영국(25.8%), 일본(16.9%), 프랑스(16.2%), 호주(13.7%), 미국(13.3%) 등 주요 선진국에도 크게 못 미친다.

사실 '한국' 기준의 신·재생 에너지 통계를 보면, 이 차이는 조금 줄어든다. 한국의 2015년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은 37,079GWh로, 2004년 4,534GWh보다 8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 총발전량에서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1.3%에서 2015년 6.6%로 높아졌다.

<표> 국제기구 및 국가별 재생에너지 분류

자료: 에너지경제연구원(2010), 신재생 에너지 분류 및 통계체계 재정립 공청회 자료.


1.5%와 6.6%라는 엄청난 차이는 한국 기준의 '신·재생 에너지'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재생 에너지' 통계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신·재생 에너지를 3개의 신에너지와 8개의 재생 에너지로 분류하는 반면, IEA는 8개의 재생 에너지만을 인정하고, 재생 에너지 중에서도 폐기물의 경우 재생 가능한 부문만을 인정한다.

그 결과, 신·재생 에너지 비중인 6.6%에서 IEA가 재생 에너지로 분류하지 않는 비재생 폐기물 에너지(Non-Renewable Wastes)와 신에너지인 연료전지 등을 제외할 경우 재생 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1.5%로 줄어든다.

2015년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 원별 비중을 보면, 폐기물이 60.6%로 가장 크고, 바이오(15%), 태양광(10.7%), 수력(5.8%), 풍력(3.6%)의 순이다.

통계 분류 차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통계 차이가 커질수록 재생 에너지 현황과 목표, 정책 실행에 총체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재생 에너지에 분류될 수 없는 에너지원에 재생 에너지에 준하는 지원이 이뤄지면서 국가적인 낭비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발전소 온배수를 들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RPS의 이행 여건 개선을 위해 '신에너지 및 재생 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 제2조를 개정해 '석탄을 액화·가스화한 에너지 등의 기준 및 범위'에 발전소 온배수를 이용한 에너지를 추가하고 화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온배수를 신재생 에너지로 지정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발전소 온배수는 '에너지 신산업'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자료: 에너지신산업 홈페이지(www.energynewbiz.or.kr).


국회와 시민사회,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수 차례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에너지다소비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비롯된 폐기물, 기존 화석 연료 중심의 전력 공급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발전소 온배수가 신·재생 에너지로 둔갑하는 현실에서 야심찬 재생 에너지 확대 목표는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이제 필수품이 되었다. 내비게이션 없이 초행길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초행길 운전 중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려오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경로를 재탐색"해주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목적지임을 알았다면, 경로를 이탈해 갓길에 차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목적지를 재설정해 새로운 경로를 재탐색해야 한다.

한국의 재생 에너지 현실은 목적지부터 새롭게 재설정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지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기존의 경로에 의존하며 계속 가서는 안 된다. 먼저 경로를 이탈해 재생 에너지의 이름부터 바로 잡고(正名), 새로운 목적지를 재설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재생 에너지 '꼴찌' 국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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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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