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을 끊을 수 없다면, 최소한의 예의라도

[함께 사는 길] 일상화된 '동물 학살극 시대' 끝내자

지난해 11월 17일 이후, 60일간 3202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1분에 370마리, 1초에 6마리 꼴로 생매장 당했다. 역대 최대이며, 2003년 이후 2016년 봄까지 조류독감으로 살처분 당한 가금류의 수 4414만 6000마리에 육박한다. 이번에 가장 많은 살처분을 당한 가금류는 산란계다. 올해 1월 16일을 기준으로 2305만 마리가 살처분됐는데, 이는 조류독감 사태 직전인 2016년 3분기 산란계 6985만 3000마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다.

알을 낳는 산란계가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달걀 공급도 줄었다. 그러자 달걀 부족과 달걀 값을 걱정하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정부는 항공운송비를 지원할 테니, 달걀을 수입하라며 나섰다. 수많은 닭들이 땅에 묻혔는데, 고작 달걀값 걱정이라니. 살처분 당하는 닭들의 비명소리가 또 한 번 매장되는 순간이었다.

더 싸게 많은 육식이 불러온 공장식 축산

살처분 당하는 건 닭들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겨울과 2011년 봄 사이 145일간 347만 9962마리의 돼지와 소가 구제역 방역이란 이유로 살처분 당했다. 그 이후에도 세 차례 구제역이 발생했고, 약 20만7880마리의 돼지와 소가 땅에 묻혔다.

우리는 고기를 먹는다. 치킨 한 마리로 야식을 챙기고, 삼겹살에 소주를 찾는다. 반찬 없을 때 달걀만큼 만만한 식재료도 또 없다. 2015년 기준으로 한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당 쇠고기 10.9킬로그램, 돼지고기 21.5킬로그램, 닭고기 13.4킬로그램, 달걀 268개, 우유 75.7킬로그램을 먹었다.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으나, 고기 소비는 꾸준히 늘고 있고 사육되는 가축 또한 늘고 있다.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소 267만 마리, 젖소 41만 마리, 돼지 1019만 마리, 닭 1억6413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수입도 한다. 같은 기간 쇠고기 30만 톤, 돼지고기 36만 톤, 닭고기 12만 톤을 수입했다.

▲ 복지농장의 닭, 모래 목욕 등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환경을 개선했다. ⓒ카라

귀한 손님 왔다고 닭을 잡던 시대는 지났지만, 우리는 예전보다 더 많은 고기를 먹고 있으며 육식 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 또한 작아졌다. 오로지 더 싸게 더 많이 고기를 공급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발전시킨 축산업 덕분이다. 그 결과 효율성과 경제성이란 미명하에 적은 면적에 더 많은 가축을 사육하고,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효과적으로 살찌우는 기술이 발달했다. 케이지나 계류식 사육은 당연시됐다. 동물을 위한 환경 개선은 쓸데없는 돈 낭비로 치부됐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 항생제는 필수가 됐다.

공장식 사육은 효율적인 축육을 가능하게 했지만, 조류독감(AI)이나 구제역 같은 전염병에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생산방식이기도 하다. 일단 유행이 돌면 순식간에 농가 전체에 퍼지고 공장 안의 가축들은 감염군과 비감염군을 구분할 수 없어 치료 대신 살처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 이것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고기의 생산과 살처분의 전말이다.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애써 묵인해왔다. 우리의 탐식은 지금의 공장식 축산에 일조했고 지금의 살처분에서 자유롭지 않다. 육식을 끊을 수는 없더라도 더는 공장식 축산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동물복지농장

유럽연합(EU)은 1999년 5월 암스테르담 조약에서 동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 동물 보호 및 복지에 대한 의정서를 합의했다. 이후 △2006년부터 성장촉진제, 항생제 사용 전면 금지 △동물복지 5개년 행동계획 수립 △2012년부터 산란계 일반케이지 사육 금지 △ 2013년부터 돼지의 스톨 사육과 송아지 나무틀 사육 금지 등 공장식 사육과 이별하는 동물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 각국과의 FTA 협상 시 동물복지를 비교역적 의제로 제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주별로 돼지의 스톨 사육, 송아지 사육틀 사육, 산란계 일반케이지 사육 등을 금지해 나가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2005년부터 운송·도축·살처분 등 12개 분야의 동물복지기준을 제정한 뒤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동물복지기준을 지속적으로 개정하고 있다.


세계가 동물복지로 눈을 돌리는 이유가 단순히 생명윤리와 동물 보호 측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장식축산에서 나오는 배설물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 밀집 사육에 따른 전염병, 항생제 남용 등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동물복지를 찬성하는 이들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란 가축은 스트레스가 감소되고, 이는 면역력을 향상시켜 질병의 발생빈도를 줄여 항생제 등 약품의 남용을 줄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좋은 식재료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2012년부터 산란계를 시작으로 돼지·육계·소 등 가축에 대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각 동물의 특성을 고려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동물을 가두는 케이지나 계류식 사육을 금지하고 기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육면적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동물복지농장에서 산란계는 정상적으로 일어서고 돌아다니고 날개를 뻗을 수 있고 홰에 올라가거나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다. 또한 바닥의 최소 3분의 1 이상이 깔짚으로 덮여 있어 모래 목욕 등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부리를 자르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대신 환경을 개선해 깃털 쪼기나 카니발리즘 예방을 권장하고 있다. 강제 환우(깃털갈이)를 시키는 것 또한 금지하고 있다.

ⓒ프레시안

인증마크만 꼼꼼히 따져도

공장식 축산과의 이별은 마트에서 공장식 축산물 대신 동물복지인증제 마크가 부착된 축산물을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시중에 유통 중인 동물 복지 인증 축산물에는 △동물복지인증마크 외에 3가지가 더 있는데 △HACCP △무항생제축산물 △유기축산물이 그것이다.

HACCP는 안전관리통합인증제로 식품의 원재료부터 제조, 가공, 보존, 유통, 조리단계를 거쳐 최종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각 단계별 위해성을 예방하고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위생관리체계다. 즉,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 등이 위생기준에 적합한지를 확인한 축산물로 동물복지와는 무관하다. 무항생제축산물은 항생제, 호르몬제가 투여되지 않은 무항생제 사료를 급여하며 무항생제 인증기준을 준수하여 사육 및 생산된 축산물이다. 가축의 생물적 및 행동적 욕구를 만족해야 하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지만, 동물복지 수준은 아니다. 유기축산물은 유기기준에 맞게 재배 및 가공된 유기사료를 급여하며 항생제, 호르몬제 GMO를 급여하지 않고 가축의 기본욕구를 고려하여 유기축산물 기준에 따라 사육 및 생산된 축산물이다. 유기인증에서도 가축의 활동을 고려한 동물복지에 대해 일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생협 이용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가가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산란계의 1퍼센트만이 동물복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으며 돼지는 0.3퍼센트, 한우나 육우는 한 마리도 없다. 전체 돼지 사육두수 중 31퍼센트, 산란계의 53퍼센트가 동물복지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영국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때문에 마트에서 동물복지인증을 일일이 찾는 게 고역이고 귀찮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생협을 권한다. 조합원이 주인인 생활협동조합은 오랫동안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과 소비를 지향해왔다. '두레생협'에 따르면 유축복합농업을 추구하여 지역순환농업을 실천하는 생산물, Non-GMO사료로 생산하는 무항생제 친환경 축산물, 유기축산물 등을 지향한다. 조합원들은 생산지를 방문해 확인할 수도 있다. 두레생협에 달걀을 공급하는 한 생산농가는 1평당 15마리 정도의 산란계를 사육하고 있으며 바닥에 왕겨나 볏짚을 깔아주는 등 동물복지 못지않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항생제, 산란촉진제, 성장호르몬제를 넣지 않은 무항생제사료를 먹인다.

생협 생산자들은 조류독감 피해도 덜했고 생협의 달걀값도 변함이 없다. "생협에 달걀을 공급하는 농가가 열 군데 정도 있는데, 이번에 피해를 입은 농가가 없다. 심지어 같은 지역에 일반 양계농장은 조류독감으로 살처분했는데, 생협 생산농가는 피해를 면했다. 구제역 때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환경을 조성하고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면역력이 좋아서이지 않을까 싶다"고 '에코생협' 최재숙 이사는 설명한다.

▲ 생협은 공장식 축산을 끊는 대안이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육식 끊을 수 없다면 제값 주고 제대로

동물복지농장 축산물이 공장식 축산 축산물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공장식 축산의 숨겨진 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싸다 할 수 없다. 당장 공장식 축산으로 해마다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한 재정지출이 3조2300억 원이 넘는다. 이번 조류독감으로 인한 보상금만 29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매립지 오염도 비용을 소모한다. 지난달 농식품부와 환경부 합동으로 주요 매몰지 169개소를 점검한 결과 48개소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변 지하수 및 수질오염과 악취 문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장식 축산에서 하루 17만 5651세제곱미터의 축산분뇨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처리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지난 한해에만 농림부는 축산분뇨 처리 지원금만 427억 원을 지원했으며 올해 497억 원이 책정돼 있다. 축산물의 항생제 사용이 인체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드러난 지 오래이며 그로 인한 비용은 추산조차 힘들다.

육식을 도저히 끊을 수 없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고기를 제값 주고 소비해야 한다. 그러면 육식 증가로 비만이 문제가 된 지금의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더 건강한 식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장식 축산과 먼저 이별해야 반복되는 살처분 사태를 근절할 수 있다. 동물복지농장이 경쟁력을 갖도록 해 주는 일 또한 마트에서 우리가 동물복지 인증 축산물을 고르는 것에서 비롯된다. 전염병만 돌면 살처분부터 하고보는 일상화된 '동물 학살극 시대'를 끝내야 한다. "행복하게 살게 하고 고통 없이 죽여줘요!" 1000만이 넘는 죽어간 짐승들의 눈빛이 남긴 말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육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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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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