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 "최순실이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고 말해"

잠적 깨고 법정서 '생존 신고'..."위험한 것 같아 의상실 그만 둬"

6일 오후 2시, 법정에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들어오자 취재진과 방청객들의 시선이 분주해졌다. 증인석으로 걸어오는 고 전 이사와 참고인석에 앉은 최순실 씨를 번갈아 바라봤다. 최 씨는 고 전 이사를 잠시 응시했다가 시선을 거뒀고, 고 전 이사는 참고인석에는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증인석에 앉았다.

국정 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 씨, 그리고 그의 최측근에서 고발자가 된 고 전 이사의 만남 그 자체로도 이날 공판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잠적설이 돌 정도로 국회 청문회 이후 두문불출했던 고 전 이사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기에 더욱 관심이 고조됐다. 법정으로 가는 출입구에는 사진기자들이 장사진을 쳤고, 초반 열기와 달리 텅 비어가던 방청석도 가득 찼다.

'숨김과 보탬 없이 증언하겠다'는 증인 선서를 한 고 전 이사는 검찰의 질문에 차분하게 답변했다.

그는 먼저, 이번 사태에서 국민에게 큰 충격파를 줬던 최 씨의 연설문 수정 사실에 대해 증언했다.

"연설문 고치는 것을 목격한 게 사실이냐"는 검찰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더블루K 사무실에서 프린트기가 안 된다'고 해서 최 씨의 방에 들어갔더니 노트북 화면에 그런 문구, 그런 연설문 같은 게 있었다"고 말했다.

최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선 "(최 씨가) 청와대에도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고 청와대 비서들이 (최 씨의) 개인 비서인 것처럼 했다"고 답했다.

이어 "(최 씨가) 무슨 일을 해도 '대통령을 위해서 일한다, 대통령 때문에 일한다, 대통령의 신의를 지키면서 일한다'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해서 둘의 관계가 굉장히 가까운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일 '소추사유에 관한 피청구인(대통령)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준비서면에 "최 씨를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다"며 "그녀가 여러 기업을 경영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했다. 고 씨의 증언과 결부시켜 보면, '평범한 가정주부'가 청와대 비서를 '개인 비서'처럼 다루고,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고 말해왔던 셈이다.


고 전 이사는 박 대통령의 가방을 제작하던 중 최 씨와 연을 맺게 됐다. 이후 최 씨 요청으로 박 대통령의 의상도 만들게 됐고, 최 씨가 대통령의 해외순방표를 주면서 옷을 만들라고 했다고 밝혔다. 의상실을 최 씨가 구해줬고, 의상실 보증금도 최 씨가 냈다고 했다.

고 전 이사는 그러나 "최 씨와 모든 관계를 종료하면서 대통령 의상 제작도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의상실을 그만 둔 경위에 대해 "부적절한 일이 진행된다고 생각했고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만둔다고 했다"고 했다.

"위험하다는 느낌이 어떤 의미냐"는 검찰의 거듭된 질문에 그는 "예를 들어서 최순실이 차은택에게 국가브랜드, 이런 일을 지시하면서 장관이나 콘텐츠진흥원장 자리가 비었으니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이뤄지는 것을 보고 (위험한 느낌이 들었고) 또 예산같은 걸 짜기 시작했는데 그 예산이 (국가 예산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봤을 때 겁이 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은택과 최순실이 문화융성이라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저는 체육을 했던 사람이고 할 수 있는 건 체육과 가방 만드는 것, 의상, 디자인 이런 것이었지 제가 문화융성이라든지 이런 것을 전혀 알지 못해서 일을 못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면서 "제가 못하는 것을 하면서 욕먹을 필요도 없었다"고도 밝혔다.

그는 지난해 미르재단 의혹이 처음 불거진 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최 씨 만남을 주선한 점을 인정하면서, "(최 씨가 이성한을) 회유하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날 이후 '최순실 씨가 이성한과 네가 짜고 이러는 것 아니냐'고 모함해서 더블루K 이사 사임서를 제출하라고 했다"고 했다. 최 씨는 고 전 이사가 더블루K의 실제 운영자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이에 대해 고 전 이사는 "제 회사면 제가 잘릴 이유가 없다"며 코웃음 쳤다. 또 '고영태가 자신을 협박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진실 공방을 예고했다.

재판부는 검찰 주신문과 최 씨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끝난 뒤 최 씨가 직접 고 전 이사에게 질문할 기회를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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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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