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보다 '대한민국 판도라'가 더 위험하다

[함께 사는 길] '탈핵 전사' 김익중 교수

영화인가 예언서인가. 국내 최초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판도라>(박정우 감독, 2016)는 영화라 하기엔 너무 현실을 닮았다. 1년 전 모든 작업을 마쳤다는 영화는 공교롭게도 1년 후 수명연장으로 재가동한 원전 바로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대통령의 무능과 비정상적인 국정운영까지 드러난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더 잔혹하다. 그래서 영화를 본 이들은 영화를 픽션으로 넘기지 못한다. 사실 노후 원전의 위험성, 활성단층의 존재 등 시민사회는 줄기차게 원전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탈핵을 외쳐왔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김익중 동국대 교수도 탈핵전사라 불릴 정도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영화 <판도라>의 원전 관련 자문으로 참여하기도 한 그는 영화 <판도라>보다 스크린 밖 판도라가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늦은 저녁, 김익중 교수를 찾았다.

▲ 영화 <판도라> 스틸컷. ⓒ(주) CAC 엔터테인먼트 , (주)시네마파크

- 영화 <판도라>의 자문을 맡았다고 들었다

3년 전에 박정우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원전 사고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기술자문을 맡아줄 수 있느냐고 제의했다. 원자력계에 몸담고 있는 소위 원자력 전문가들은 다들 자기 영화에 반대하고 있다고 하더라. 사실 감독에게 연락이 오기 전 나도 원전사고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 영화계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거의 포기하려던 순간 박정우 감독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너무 좋아 소리까지 질렀다.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엉엉 울었다. 뭘 도와줄까 했더니 원전 관련 공학적인 숫자나 전문적인 용어 등을 봐달라고 하더라. 그 외에도 필요한 이미지 등 관련 자료들을 찾아줬다.

- 실제 판도라처럼 사고가 날까. 또 사고가 난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 스리마일섬(TMI) 사고는 인적 사고, 러시아 체르노빌 사고는 과학자들이 실험하다 터졌으며, 일본 후쿠시마는 자연재해다. 사실 핵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은 수백 가지다. 이중 단 3장만 뽑았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사고가 난다면 아마도 영화와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은 도망치고 도로는 막히고. 사고 당시 바람이 어디로 부느냐 비가 오느냐 등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결국 국내에 안전한 곳은 없을 것이다. 원전 없는 나라로 이민 가야 한다. 그것 외에는 답이 없다. 땅이 오염되었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나.

- 정부가 정한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은 원전 반경 20030킬로미터(Km)이다. 그 이상도 위험한가?

사실 20~30Km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반경 30Km까지 대피시켰지만, 그때도 근거는 없었다. 정부의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은 사고 시 피해보상을 받는 기준이며, 정부 대책이 미치는 거리일 뿐이다. 일본을 보라. 도쿄까지 고농도로 오염이 됐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도 국토면적이 적다. 원자력계는 피폭량으로 거리를 계산한다고 하겠지만, 웃기는 소리다. '1밀리시버트(mSv)가 건강 영향 경계선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럼 왜 1mSv이냐?'고 물으면, 아무 말도 못 할 것이다.

▲ 김익중 동국대 교수. ⓒ함께사는길(이성수)
- 실제로 수명이 끝난 월성1호기가 재가동 중이며, 그 원전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민방위 훈련처럼 원전 사고 시나리오를 세우고 대피 훈련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민방위 훈련은 하면 할수록 북한의 위협에 대해 국민들이 알게 된다. 정권 유지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핵사고 대비 훈련? 그건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전 국민에게 알리는 일이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 국민 대상으로 핵사고 대비 훈련을 10번만 하게 되면 바로 탈핵이 될 것이다.

-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 원전 재가동을 승인했다. 원안위의 결정을 국민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원안위가 생기고 나서 부결된 안이 하나도 없다. 원안위 위원으로 3년 정도 활동하면서 참 힘들었다.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모두 졌다. 7대 2로 다 졌다. 모든 게 다 답답했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원안위에 힘을 실어줘서 한국수력원자력을 제대로 규제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적 청산이 불가능하니 원안위를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사실 지금 당장 원안위를 없앤다 해도 아무 문제도 없다. 지금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니 없어진다고 해도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원자력계에 면죄부를 주지 않게 될 것이다.

-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났지만, 핵 산업 역시 정상적인 정책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삼척시장을 탄압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거다. 삼척시장을 선거법으로 검찰이 수사하고, 또 주민투표가 불법이라고 조사하고, 난리 치지 않았나. 몇 년 동안 탄압했다. 의도적으로 누군가 시킨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있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또 대기업도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은 이중으로 돈을 번다. 원전 건설 공사에 참여해서 돈을 벌고 낮은 전기요금으로 이익을 본다.

- 어떻게 탈핵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30대 초반에 경주로 내려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경주환경연합 창립할 때 정책위원장을 맡아 원전을 잠시 담당하긴 했지만, 중도에 관두고 회비만 내고 있었다. 그런데 8년 전에 환경연합 양이원영 활동가가 날 찾아왔다. 당시 경주환경연합 내부에서 문제가 생겨 이를 수습하러 내려왔는데, 환경연합 회원들을 다 만나고 다니는데 진정성이 느껴졌다. 날더러 비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해서 수락했다. 이후 경주환경연합 상임의장이 되었고, 경주 방폐장 문제에 대응했다. 경주에 있는 단체장들을 한 명 씩 만나면서 탈핵강의를 시작했다. 100명 정도 만난 것 같다. 그들과 경주 핵안전 연대를 구성했다. 방폐장 공사 중지가 목표였는데, 실패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실망하고 지쳐있었다. 그런데 그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정말 충격을 받았다. 다시 원전에 대해 파기 시작했다.

- 참 쉽지 않은 싸움이다. 힘들지 않나?

사실 원안위에 3년 있으면서 팍 늙었다. 하지만 질 게 뻔해 보여도 최선을 다해 싸웠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스스로 탈핵전사란 별명을 만들었다. 탈핵운동을 하기 전에 내 인생은 별로 의미 있지 않았다. 근데 탈핵운동하면서 내 삶에 의미가 생겼고 또 무겁게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탈핵 전사 김익중'으로 기억한다면 멋진 인생 아닌가.

-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를 많이 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교수님 강의를 듣고 탈핵 운동가가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2011년 겨울부터 탈핵 강의를 시작했는데, 5년 동안 한 1200회 정도 한 것 같다. 날 찾는 곳은 다 갔다. 500명을 대상으로 할 때도 있고, 2~3명을 대상으로 할 때도 있다. 몇 명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 강의를 듣고 한 명이라도 꽂혀서, 마음이 동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방사능과 인체 영향에 대해서는 세포생물학, 유전공학을 배운 내가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원자력계는 기준치 이하면 안전하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피폭량과 암 발생량은 정비례하며 기준치 이하도 위험하다. 안전기준치는 0이다. 이건 의학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이다.

▲ 영화 <판도라> 포스터. ⓒ(주) CAC 엔터테인먼트 , (주)시네마파크
- 우리나라는 탈핵이 될까?

탈핵은 무조건 된다. 전 세계가 원전을 줄이고 있다. 한국, 중국, 인도, 러시아만 원전을 짓는다. 어느 시점이 되면, 이 4개 나라도 더 이상 원전을 하면 안 되겠다고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4개의 나라를 지탱하기 위해서 우라늄 광산이 운영이 될까? 전 세계가 탈핵으로 가면 우라늄 광산들이 문을 닫기 시작할 것이고, 마지막 광산이 문을 닫으면 탈핵으로 가게 되어 있다. 절대 100년은 못 넘긴다. 이제까지 지는 싸움을 많이 했지만, 탈핵은 반드시 이긴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탈핵 운동에 한 번이라도 참여하면 승자가 된다. 이미 이기고 있다. 성과도 있다. 고리1호기를 영구 폐쇄하기로 하지 않았나. 이건 시민들이 이뤄낸 것이다.

- 정권이 바뀌면 탈핵의 시점을 앞당길 수도 있나?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원전이 위험하고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5년 내내 이것만 잘해도 성공이다. 국민들이 한 번 알아버리면 되돌릴 수 없다. 어느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국민들 뜻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탄핵하지 않았나. 결국 승부는 국민들에게 달려있다.

- 원전의 위험성을 알게 된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난 그들을 '동지'라고 부른다. 각자 고민해야 한다. '내가 뭘 잘하나. 내가 뭘 하면 좋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정말 생각지도 못 한 기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엄마들 조직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조례 제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난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심지어 영화 만드는 사람까지 나오지 않았나.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자. 그런 힘들이 모여져 탈핵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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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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