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귀까지 다가온 듯한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의 대결구도는 참으로 이색적이다. 여 대 야, 또는 보수 대 진보가 아니다. 문재인 대 반 문재인연합이다. 이번 대선의 핵심은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가 아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이다. 그런데 이 설명도 2% 부족하다. 사실 이번 대선의 본질은 이들 연합군의 '타도 문재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같은 편'인 야권 인사들이 반 문재인연합 세력화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문재인으론 안 된다"는 요상한 회의론을 쉴 새 없이 노래해온 이들 중엔 심지어 같은 당 소속도 있다. 이 유례 없는 놀라운 일이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2017 대선의 본질, "타도 문재인"
안철수가 내놓은 회심의 카드는 제3지대론이다. "친박·친노 패권세력 빼고 다 모이자"는 이 발언의 핵심은 '문재인 빼고'다. 박지원도 "극좌적, 수구패권주의" 문재인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문재인과 함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민의당 주승용은 심지어 "정권교체 못 해도 더민주와는 연대 안 한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들의 목표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오로지 '타도 문재인' 뿐이다.
그나마 국민의당 인사들의 발언이니 그렇다 치자.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의원은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려는 게 문제"라고 문재인을 비난하며 아예 대권도전에 직접 나설 모양새다. 한때 동지였던 손학규는 문재인을 "제2의 박근혜", 심지어 "수구파"라고까지 공격하며 안철수, 반기문, 김종인, 정운찬 등과의 연대를 저울질 한다. 왜 이들은 그토록 문재인을 비난하며 원수 대하듯 하는 것일까.
'반문'의 시작
"답답해요."
작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에 대한 질문을 받자 튀어나온 말이다. 이 말뜻은 무엇일까. 문재인은 여의도정치의 문법을 쫓지 않는다는, 즉 한국 정치의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의 관행이란 무엇일까. YS, DJ, JP 시절의 보스정치, 이후 이어져온 계파정치이다. 이 작동방식에서의 핵심은 타협이다. 그렇다면 한국정치에서 타협이란 무엇? 간단히 말해 두 자로 거래, 네 자로 나눠먹기인데 그 빛나는 사례가 바로 3당 합당이다. 바로 '밀실야합'이 한국 정치의 관행이었다.
문제는 당 대표 시절 문재인은 타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비타협적 성향 때문에 그는 많은 유력 정치인들과 멀어졌다. 손학규, 김두관에서 안철수, 박지원, 이종걸, 박영선, 그리고 결국 떼로 당을 뛰쳐나간 호남 중진들과 지금의 김종인에 이르기까지. 결국 원혜영마저 "무난하게 후보가 되면 무난하게 진다"는 이상야릇한 말로 문재인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분명 문재인 비토 정서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반문 정서의 원천은 무엇일까. 주목해야 할 것은 여태까지 문재인에 관한 거부감을 표시했거나 비난했던 야권 인사들이 하나 같이 다선 중진 정치인들이라는 점이다.
친문 대 반문 대결의 본질
흔히 "친노가 다 해먹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친노는 누구인가. 실상 이들은 오랜 세월 진보진영에서 '근본도 없는 자들' 취급을 당했다.
여태 한국 정치의 주류는 보수이고 비주류는 진보였다. 보수 중에서도 주류는 TK이고 비주류는 PK였다면, 진보의 주류는 단연 호남이고 비주류는 영남이었다. 부산 민주화세력에서 분기한 친노는 한국 정치지형에서 비주류 중 비주류였던 셈이다. 사실 이들은 정치판에서 주류, 비주류를 따지기도 민망한 수준의 미미한 집단이었다.
80년대 이후 동교동계, 그리고 이들이 키워준 서울의 386 운동권이 주류를 형성하던 진보진영에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물이 바로 부산 출신의 고졸 인권변호사 노무현이다.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을 흔들어댄 세력이 동교동이었다. 지금 문재인을 전방위로 포위해 주저앉히려는 자들도 호남 정치집단인 국민의당과 더민주의 다선 의원들, 즉 기득권 세력이다.
이들이 문재인의 집권을 사력을 다해 막으려는 이유는 문의 집권이 자신들의 기반을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다선 의원들은 여태 자신이 소속된 계파라는 배경에 더해, 자신들이 확보한 당원을 발판 삼아 당내에서 상부상조하며 쉽게 정치를 해왔다.
그런데 문재인은 당 대표를 지내며 당이 계파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결정하고 운영되게 했다. 그 이전 7년간 무려 여섯 개의 혁신안이 만들어졌지만 소속 의원들의 저항으로 모두 폐기됐는데, 문은 기어이 새 혁신안을 관철해 당헌, 당규에 못 박아버렸다. 그 덕에 시스템공천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간 나눠먹기가 불가능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혁신에 따른 온라인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전환은 온라인 입당을 가능케 해 무려 10만 명의 당원이 대거 유입됐다. 박지원, 김한길, 정세균 등 계파를 거느린 수장들은 오래 전부터 '온라인'에 한 결 같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문재인이 직접 새로운 인재 영입에 나서 지난 총선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하나 같이 다선 기득권 의원들의 정치적 기반을 흔들었다. 이제 자신들의 지분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특히 이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문재인은 자기 사람이 잘려나갈지라도 타협에 나서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공천평가위원회에 외부 전분가를 영입한 결과 친노로 알려진 유인태와 김현이 탈락했지만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김종인 비대위가 친노의 상징 이해찬과 정청래를 잘라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당 대표 당시 문재인은 반문 측의 반발로 자기 사람을 쓸 수도 없었다. 결국 대표 비서실장엔 김한길과 가까운 박광온 의원을 앉혀야 했고 핵심인 조직본부장엔 박지원의 측근인 이윤석 의원을 써야했다. 과거 여의도정치의 문법은 당연히 서로의 지분을 보장하며 나눠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차라리 자리를 비워둘지언정 거래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자기 사람은 한 사람도 기용하지 못했고 비서실 부실장마저 공석으로 남겼다.
우상호의 말처럼 당의 주류세력은 답답했을 것이다. 노무현은 타협했다. 후보 시절 정치적으로 이미 결별했던 YS에게 인사하러 갔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송민순 회고록 논란 때 종북논란이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라며 정면 돌파했다. 노무현은 아무데서나 울었다. 문재인은 잘 울지도 않는다.
'패권주의'의 실체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승리해 당대표가 된 문재인은 곧 혁신을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호남 다선 의원들이 탈당 조짐을 보이자 박지원, 이종걸 등은 당의 화합을 강조했다. 과거처럼 사이좋게 나눠먹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문재인이 묵묵부답 혁신의 길로 들어섰다. 결국 그들은 탈당했다.
바로 이것이 문재인에게 붙여진 꼬리표인 '정치력 부재', '리더십 부족'의 실체이다. 원칙에 반하는 타협을 거부한 결과다. 만약 정치력과 리더십의 정치인을 찾는다면 '정치9단'으로 알려진 박지원이나 얼마 전 안희정이 "동지가 어떻게 해마다 그렇게 수시로 바뀝니까"라고 비판한 손학규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 측면에서라면 천정배와 정동영 역시 훌륭한 정치력을 소유한 인물이다.
친문 패권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들이 주장하는 패권주의란 문재인이 나눠먹기를 거부하자 탈당해 떨어져 나간 호남 의원들, 그리고 자신의 지분을 보장해주지 않자 화가 난 당내 다선 의원들이 문재인을 공격하기 위해 집어든 프레임일 뿐이다. 그들이 문제 삼는 패권주의적 행태라는 것도 고작 지지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벌이는 집단행동뿐이다.
결국 패권주의란 문재인이 휘두르는 패권이 아니라 야권의 다선 중진 기득권 정치인들의 박탈감으로 인해 생성된 분노의 한풀이일 뿐이다. 이제는 잃어버린 자신들의 지분과 기득권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가사 "문재인으론 안 된다"는 문재인으론 정권교체가 안 된다가 아니라,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여태껏 자신이 누린 기득권이 다 날아간다는 의미다.
문재인은 살아남을 것인가
한국정치의 관행을 따르지 않는 문재인은 지금 포위된 채 사방, 안팎으로부터의 십자포화를 견디고 있다. 그가 끝까지 견뎌낸다면 그 자체가 바로 한국의 정치개혁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변혁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과연 반 문재인연합의 공세를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기득권은 무섭다. 노무현에게서 보지 않았던가. 문재인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장렬하게 산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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