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무현 넘어서는 비전' 제시하길

[기고] 더불어민주당의 아름다운 경선을 위한 제안

나는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하지 못해서 당신 스스로 본인이 임명한 검찰총장의 손에 돌아가시는 비운을 맞이했으며 국정원 개혁을 하지 못해서 친구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을 막은 셈이 됐다고 생각했다.

삼성의 편법 상속을 일벌백계하며 재벌 개혁을 하지 못해서 재벌의 사회경제적 지배력과 정치적 지분을 키웠으며 비정규직 규모 축소와 차별 해소를 하지 못해서 젊은이들의 '헬조선'을 만들어낸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교육 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가계 교육 비용 축소와 권위주의 토대 해소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위의 5대 개혁에 실패함으로써, 이후 이명박근혜 정부는 아예 대놓고 국정원과 검찰을 정권의 수족으로 부리고 재벌과 유착하며 노동을 탄압하는 1970~80년대의 구태로 돌아갔다. 아직도 박정희시대의 권위주의적 국가체제와 1997년의 IMF 외환 위기 때 본격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로 특징지을 수 있는 구시대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재임기간을 평가하는 그의 담담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절 본인이 구시대의 막내로 자리매김 되기보다는 새 시대의 장자로 자리매김 되기를 강력하게 소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시대의 구성 요소를 청산하지 못했다. 구시대는 정치검찰과 정치국정원, 정치재벌과 정치언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 생각이 더 발전했다. <유러피안 드림>을 탐독하고 <진보의 미래>를 집필하면서 성찰과 전망에 깊이를 더했다. 아마도 그가 살아있다면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와 개혁 전략에 대해 많은 조언을 했을 것 같다. 그가 있었다면 더불어민주당 대선 과정에는 어떤 방향을 제시했을까?

더불어민주당 내 대선후보 결정을 위한 경선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내에서 기득권과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분분하며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

솔직히 혹시 향후 더불어민주당 내부 경선 과정이 정책 경쟁보다는 세력 싸움으로 왜곡되어 1000만 촛불이 힘겹게 만들어 놓은 정권 교체의 기회가 유실될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유권자들은 대선 레이스를 통해 새로운 정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비전이 확고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특별히 이번 대선이 촛불혁명의 와중에 치러지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문재인의 기득권에 대한 비판은 모든 후보와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한 경선룰을 만듦으로써 해결해 나갈 문제다. 그러나 동시에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이 지나치게 게임의 룰에 매몰되지 않고 정책 경쟁이라는 진검승부의 과정이 되게 하려면 1등 위치에 있는 문재인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잘한 일이 아주 많다. 정치 개혁과 탈권위주의적 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앞장섰고 국정원과 검찰,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의 정상화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다. 민주주의와 삶의 질, 인권 관련 국제 비교 평가 지표에서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07년은 일제히 최고점을 찍은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한 일도 없지 않다.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름의 분석을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를 보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아름답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의 성찰적 모습에서 시작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으로서 참여정부의 실세였던 문재인 역시 참여정부가 국정원과 검찰, 재벌과 비정규직 개혁을 하지 못한 점에 일단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걸 내려놓은 퇴임한 전 대통령과 목전에 대선 경선을 앞둔 예비후보의 처지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면 당면 시기의 대선 주자는 새로운 정부와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자로 나설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 깊은 성찰과 더 큰 비전 제시가 함께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문재인은 참여정부의 실세 2인자에 걸맞은 사과와 다짐을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 청와대, 검찰, 국정원 개혁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문재인은 일언반구의 자성이나 사과가 없었다. 몹시 아쉽고 안타까웠다. 곧 이은 재벌 개혁 방안에서도 삼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던 데 대해 진정성 있게 고해하고 사과하는 언급이 없었다. 진솔한 자기 성찰로 몸을 낮추는 이에게 기득권이나 패권주의라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기득권 주장과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태도야말로 그 한계를 극복할 의지가 확실하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뜻을 세웠으나 실현하지 못한 것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노 전 대통령의 유업 삼아 정책적으로 유실되었던 것들을 찾아 공약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노무현을 넘어서는' 사회를 위한 개혁 계획을 적극 제안하면 어떨까 싶다.

문재인은 지난 대선 전에 <운명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낸 바 있다. 노무현을 만난 것도 대선에 차출된 것도 운명이라는 뜻인데 너무 소극적이다. 이제 운명의 내용도 바꿔야 한다. 촛불 혁명의 명령을 이행해서 구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여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이걸 위해 참여정부 때 못 했던 국정원과 검찰개혁, 재벌과 노동개혁에 과감하게 나서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그리하여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로 특징지을 수 있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하면 좋을 것 같다. 문재인이 참여정부의 공과를 이런 식으로 떠안고 참여정부를 넘어설 확실한 결의와 전망을 단호하게 보이면 좋겠다. 이럴 때 비로소 문재인은 뿌리 깊은 적폐를 청산하는 주체로 신뢰를 얻고, 더불어민주당 내 후보 경선도 미래지향적 정책 경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촛불 시민들은 체제의 교체,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근혜는 물론 '노무현도 넘어서는 시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박근혜 4년 적폐 청산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더 깊고 근본적인 개혁만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정부의 수반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그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면 좋겠다. 그 출발은 더불어민주당의 아름다운 내부 경선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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