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등 외신 "이재용 수사, 오히려 한국 경제에 호재"

"재벌이 코리아디스카운트 주범, 개혁 청신호 "

한국 최대 재벌 삼성그룹의 사실상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결국 특검이 16일 뇌물공여와 국회에서의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긴 하지만, 국내 재계에서는 경제도 어려운데 삼성그룹의 총수를 구속하는 것은 더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 투자자들의 시각은 전혀 딴판이다. 이들은 한국 증시가 세계적으로 저평가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은 바로 한국 특유의 정경유착의 산물인 '재벌'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모처럼 특검이 재벌 총수들을 제대로 단죄하는 행보를 보인 것은 수십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재벌개혁에 청신호가 켜진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다.(☞관련기사:외신, '촛불시민' 덕에 오히려 외국 자본 기대감 ↑)

영국의 금융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예 "일부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낙관하고 돈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수백만 촛불 집회에서 드러난 정치적 동력이 작용해 한국이 재벌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낙관론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자산운영업계에서는 한국의 국정농단 사태가 기업지배구조에 의미있는 개선으로 이어지고, 이런 변화가 국제 투자업계에 한국 경제의 기반이 회복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16일 특검이 뇌물공여 혐의와 국회에서의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재벌기업 지배구조에 지각변동 일어날 가능성"

미국의 투자전문지 <밸류워크>는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에 대해 삼성 등 재벌기업을 주범으로 단정하며 신랄한 진단을 내렸다.

이 매체는 "한국의 기업 대부분은 재벌가가 장악하고 있고,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 관심이 있고, 주주들을 무시한다"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은 재벌의 부정적 영향으로 엉망인 기업지배구조로 인해 한국 투자를 기피해왔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수요는 실질적인 기업 실적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기업들의 주가는 저평가된 상태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재벌의 기업지배구조가 엉망인 탓에 초래된 결과를 몇 가지 꼽았다. 첫째, 손실이 나는 사업에도 투자를 지속해서 전체적으로 영업이익이 낮은 수준이다. 핵심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닌 다른 사업을 선정해 장기투자에 나선다. 심지어 오너 일가의 개인적 욕망으로 무리한 사업을 일으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다.

두번째, 재벌은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한 안정적 지분 확보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주들에 대한 배당에 소극적이다. 그 결과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재벌은 1998년 외환위기 떄처럼 비상상황에서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자기자본이익률(ROE)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부채를 지는 것도 꺼린다. 코스피 상장 기업들의 ROE가 뉴욕 등 주요 증시 상장 기업들의 ROE에 비해 유난히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밸류워크>는 "지금 흥미로운 것은 삼성의 지배구조 문화가 전환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라고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국정농단 사태에 주목했다.

이 매체는 "이건희 회장은 사실상 사망한 상태이고, 이재용 부회장은 '기괴한' 부패 스캔들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면서 "혐의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미 삼성전자는 투자자에게 보다 우호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하라는 압력에 대응해 왔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 결과는 정말 놀랍다"면서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2016년 초 대비 60%나 급등하며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매체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앞으로 더 많이 오를 여지가 있는지는 두고 볼일이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런 변화가 한국 증시 전반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이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의 변화가 SK, LG, 현대 등 다른 재벌그룹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며, 그 결과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기대해도 좋을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5년 삼성물산 합병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주식을 저평가한 사례와 함께 2014년 현대자동차그룹이 한전부지 매입에 입찰 경쟁업체보다 두 배나 많은 10조 여원을 지불해 순식간에 시가총액 8조여 원이 증발한 사례를 거론하면서, "국정농단 사태 수사로 재벌이 피해자가 아니라 문제의 근원인 것으로 결론이 나면, 재벌개혁에 대한 정치적 압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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