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6.15 존중" 파격 '보수신당' 강령 대해부

[분석] '박정희·박근혜' 흔적 지우기…4.19부터 10.4까지 열거

새누리당을 집단 탈당한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이 주축이 된 개혁보수신당(가칭)의 정강·정책 가안이 5일 공개됐다.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이 지향했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시도가 상당 부분 희석됐고, 오히려 군사 정권에 맞섰던 민중 항쟁·혁명사들이 전문에 열거되어 주목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극적으로 노출된 삼권분립 등 민주주의 기초 질서 훼손을 다시금 바로 세우려는 의지도 전문 이곳저곳에 구체적으로 담겼다.

경제 영역에서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내세웠던 '창업과 과학 기술 혁신을 통한 성장' 전략과 지속 가능한 복지, 재벌 개혁 등이 언급됐고, 공교육 정상화와 원전 해체와 같은 정책 방향도 담겼다.

다만 유 전 원내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중부담-중복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신당이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서의 위치 설정을 어떻게 할지를 보여줄 '바로미터'로 여겨졌던 안보 분야에서는 "강력한 군사적 방어 체계를 구축한다" "독자적 국토 방위 능력을 확보한다"와 같은 표현이 들어갔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 또한 명시되었으며 통일 분야에서는 앞서 야당의 정강-정책 수립 때에도 논란이 됐었던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 선언'도 언급됐다.

이는 전체적으로 새누리당의 정강·정책보다 상당히 '좌클릭'한 것으로 평가된다.

뒤집어 말해 기존에는 진보 진영의 정책 방향으로만 여겨졌던 복지, 재벌 개혁, 공교육 정상화 등의 가치와 정책 방향이 세월이 흐르며 보수 진영 또한 추구해야 할 '시대 정신'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뜻한다.

일제·군사독재에 맞선 민중 항쟁사 열거

"오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대일항쟁기 3.1 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고, 전쟁의 잿더미와 군사적 대치의 부담 속에서도 전 세계가 놀랄만한 산업화를 이룩하였으며, 4.19 혁명과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을 거치며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이 과정에서 안보와 성장 중심의 보수적 가치는 국가 안보를 든든하게 하고, 국민 경제를 튼튼하게 만든 초석이었다."(보수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 전문 도입부

신당 정강·정책(가안)은 전문에는 이처럼 3.1 운동 정신과 임시정부 법통이 직접 언급돼 우선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런 서술은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한 현행 헌법에 충실하려고 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정강-정책 전문이 "우리 국민은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수많은 대내외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언급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다만 신당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만 기술하고, '정부 수립'과 '건국' 중 어떤 표현도 쓰지 않아 뉴라이트가 수년째 불 지피고 있는 '건국절 논란'을 피해갔다.

4.19 혁명과 부마 항쟁, 5.18 민주화 운동 등 과거 항쟁사를 나열한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이 또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는 현행 헌법 정신에 충실하려고 한 시도로 평가된다.

새누리당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역대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섰던 민중 혁명·항쟁사를 당 정강·정책에 아예 기술하지 않고 있다.

대신 "가장 짧은 기간 내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자랑스러운 역사"란 말로 해방 이후 사회 발전상을 짧게 설명하는 데 그쳐, 뉴라이트를 비롯한 사회 극우층의 역사 인식만을 담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신당의 정강-정책에 이처럼 항쟁사가 기술된 것은, 한국을 오랜 시간 지배해 온 '레드 컴플렉스'가 더는 보수 진영 안에서도 무비판적으로 활용되는 '공격 무기'가 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서구권 국가의 헌법이나 각 정당의 강령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하는 국내 민중 혁명사 기술은 그간 한국에서는 유독 '국민 통합을 저해한다' 식의 논리에 부딪혀 왔다. 보수 정당은 물론, 자칭 진보 내지 개혁 정당 안에서도 번번이 논란이 됐었던 게 현실이다.

특히 지난 2014년 3월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통합 신당 구성 논의를 하던 때에는 안 의원 측이 "회고적"이라는 이유로 4.19 혁명과 5.18 항쟁을 정강·정책에서 삭제하자고 주장하고 나서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는 빈축을 샀었다.

재벌 중심 성장, 규제 개혁 배척…박정희-박근혜식 '경제'는 가라

박정희-박근혜 식 '경제 패러다임'을 지양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신당의 정강·정책안 전문에는 "재벌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은 그 성공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정경유착과 불공정 거래로 오히려 시장경제의 활력과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정책 1파트인 '정의·인권·법치' 중 '자유 시장 경제와 정부 규제 개입' 파트에서는 "불필요한 규제는 혁파하여 시장 경제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되, 사회 정의와 시장 질서 등 공동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정부가 적극 개입한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가-재벌 중심 경제 성장론이 현재 한국 경제에는 더는 유효한 전략이 아님은 물론, 더 나아가 '시장 경제의 활력과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인식을 담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중 수차례 강조하며 밀어붙인 '규제 철폐'에 대해서도 신당은 "공동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정부가 적극 개입한다"고 하며 거리를 뒀다.

'작은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지향하고 시장 논리를 사회의 최우선 이념으로 뿌리 내리려던 신자유주의가 이제는 한국 보수 진영 일부에서도 배척되는 듯한 모습이다.

노인 부양·육아·건강보험 '사적 부담 및 민간 역할 최소화"

이런 인식은 정강-정책의 하부 내용인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 파트에서도 계속 눈에 띈다.

신당은 "노인 부양과 육아 및 교육의 사적 부담을 최소화한다"고 했고 "공교육 정상화, 내신 평가 및 입시 제도의 개선, 고등학교 교육 의무화 등을 통해 교육이 기득권의 유지 수단이 아닌 공평한 기회의 사다리가 되도록 한다"고도 했다.

주거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택 등 부동산을 경기 부양 수단이 아니라 쾌적하고 안전한 삶의 공간, 동동체 회복을 위한 공간이 되도록 한다"고 했고, 건강 보험과 관련해서는 "국민 건강 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고 민간 의료 보험은 최소화하는 등 역할 재정립"을 한다고 했다.

특히 건강 보험과 관련해서 신당은 "불합리한 건강 보험 부과 체계를 경제적 능력과 상황에 맞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부과 체계로 개편하여 안정적인 재원 마련에 노력한다"고도 첨언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나 이행되지 않았고, 민주당의 지난 4월 총선 공약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승민의 '중부담-중복지' 대신 '균형 재정' 강조한 복지
다만 '복지'와 관련해서는 일각의 예상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강·정책 중 복지 파트는 "사회적 합의로 복지 수준과 재정 규모를 정하고 부담과 혜택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 재정을 달성함으로써 재정 건전성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복지를 제공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는 유 전 원내대표의 '중부담-중복지(복지 확대와 이를 위해 일부 증세)'와 비교해 상당히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복지 수준에 대한 평가를 따로 하지 않고 지향할 복지 수준과 재정 규모를 '사회적 합의'란 말에 뭉뚱그렸으며, 어떤 규모의 복지를 지향하든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재정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강조했다.

정강·정책 전체를 살펴봐도 '따뜻한 복지' '튼튼한 사회 안전망' '지속 가능한 복지'와 같은 추상적 표현이 주로 쓰였을 뿐이다.

노동과 관련해서는 '노동시장 양극화 개선'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방점이 찍혔으며 구체적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한 대우를 받도록 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전환에 노력함으로써 청장년의 일자리 안정성을 제고한다"는 표현이 쓰였다.

그러나 노동삼권 보장과 관련한 언급은 별도로 하지 않았다. "노동 시장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 관계 교섭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취약 근로 계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다"는 언급이 있긴 하나, 이는 정규직 기득권 해체를 지향한다는 쪽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 개혁보수신당(가칭) 유승민 의원(왼쪽에서 네 번째)이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보수신당(가칭) 중앙당 창당발기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구 정책위의장, 주호영 원내대표, 정병국 창당추진위원장, 유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유승민 표 '혁신 성장 전략', 정강 정책에 그대로

신당 정강·정책에 중 '성장 전략'을 언급한 '2. 경제. 과학기술. 창업' 파트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혁신 성장론'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신당은 "재벌 개혁을 통한 새로운 성장전략 추구" 항목에서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간에 공정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구축하여 기술혁신에 의한 새로운 성장패러다임을 추구한다"고 했다.

또 "재벌 개혁을 통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에 혁신적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여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한다"고 했고 "저부가가치형의 수출산업은 기술혁신에 의한 고부가가치형으로 전환하고, 중소기업과 창업활동을 적극 지원한다"고 했다.

과학 기술 발전과 창의적 인재 육성 노력, 과학 기술인이 우대받는 사회 분위기 조성,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연구 개발 방식 지양, 창업 투자를 지원하는 금융 지원 제도 개혁 등의 언급도 유 전 원내대표가 지난해 9월 처음 제시한 '혁신 성장론'의 내용과 같다. (☞ 관련 기사 : 유승민 "혁신 가로막는 재벌 개혁할 리더십 필요")

사드 도입 의지 강조하고…6.15 10.4 평화 통일 존중

'보수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안보 파트에도 공을 들였다 .

신당은 안보 부문 첫 문단에서 '독자적인 국토방위 능력 확보'를 거론했다. "전통적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유지·발전시켜 나감과 동시에 무기 체계, 정보자산 등 지속적 국방 개혁을 통해 독자적인 국토 방위 능력을 확보해 국가 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한다"가 해당 문단의 전체이다.

신당은 또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효율적이고 강력한 군사적 방어체계를 구축한다"고 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되"라는 문장을 명시적으로 삽입해 두었다.

통일 파트에서는 "7·4 남북 공동 성명, 남북 기본 합의서, 6·15 남북 공동 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존중하면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 통일을 지향하고 남북 관계 개선과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또한 새누리당 정강·정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대목이다.

삼권분립 강화 수차례 언급…"계파주의 배척"

애초 신당의 출범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시작된 만큼, 이들의 정강·정책에는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 및 개혁 방안도 여럿 제시되어 있다.

우선 "삼권분립 강화"가 정강·정책 여러 곳에서 강조되고 있고, "사법정의 구현을 위해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근절하고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세청 등 권력 기관에 대한 개혁 조치를 강구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제고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의회 정치를 활성화하여 행정부와의 수평적인 협조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했고 "생산적인 정당 활동을 해치는 인물 중심의 계파주의를 배척하고 공천을 포함한 당내 운영의 투명화를 통해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한다"고 선언했다.

신당은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일부 도입하겠다고도 했다.

이들은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국민소환제도, 개별 정책에 대한 국민 투표 제도 등"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김세연 정강·정책 팀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정강·정책을 발표하며 "민생 정당, 정책 정당으로 국민께 보여드릴 생각이라 주거, 보건 의료 등 기존 보수 정당이 보여주지 못한 국민의 삶에 대한 실질적 개선을 가져올 정책에 대한 주요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또 "타락한 보수와는 선을 그어야 한다"며 "신당은 보수의 본류이자 적통을 이어받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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