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연발 문재인, 이러다 발목 잡힌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황교안 '공안 정치'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박 대통령이 빠진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국정 교과서 추진을 비롯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조기 배치 등 정책 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중심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있다. 황 권한대행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총리와는 다른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기존 정책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사안은 일단 정지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와 관련 "기존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국회가 상임위원회를 열어서 해당 부처 장관을 부르고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 따지면 그것으로도 압박이 될 수 있는데, 이럴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제도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한계가 있지만, 정부가 마음대로 만은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최소한 눈치라도 보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국회는 무슨 기능을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국민으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이를 대체할 야당의 대선주자들도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구설에 오르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16일 <중앙일보>에 게재된 도올 김용옥 선생과 대담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과 북한 중 어디를 먼저 방문하겠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말한다. 나는 북한을 먼저 가겠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정 전 장관은 "질문이 두 개 중에 하나를 택하는 방식이라고 해서 북한과 미국 중 한 곳을 고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답변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 중 어디를 먼저 갈 것이냐는 질문에 말려들기 보다는,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지난 10년 동안의 민주정부 시절 대북정책 노선으로 돌아가겠다, 한미 관계는 동맹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시켜 나갈 수 있고, 이것은 상수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관리를 하지만, 위험성이 있는 북한을 관리하려면 한미 간 긴밀히 협의가 필요하다' 라는 식으로 답변을 했으면 어땠을까 한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올해 식량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이달 초에 만난 한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올해 북한에 600만 톤의 식량이 필요한데 572만 톤을 생산했다고 한다. 예전에 150만 톤이 모자랐던 것과 비교하면 식량 사정을 해결하는 데 부족함이 거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은 한국과는 달리 대외의존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북한 내부에서 경제 운영의 주체로 기업이 생겨나고 있고 이른바 '돈주'가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제적 제재 속에 자급자족으로 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데, 제재를 한다고 해도 북한에 치명적인 상처를 내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없는 박근혜 정책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정책을 입안한 대통령이 직무 정지에 들어간 상황인데도 말이죠.

특히 안보와 관련된 사안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드 배치를 5월로 앞당기겠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의 경우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밀어 붙였습니다. 기존 정책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문제가 되는 사안은 일단 정지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부분이 있습니다. 국회가 할 수 있는 권한인 정부 견제 역할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주요 방법 중에 하나가 법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국회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정부를 견제할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도 대통령중심제이긴 하지만 의회가 법안을 만들어서 정부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촉진도 하는데, 지금 우리 국회는 행정부의 독주를 막을 의지 자체가 없어 보입니다. 제도적으로는 가능한데, 특히 야당이 그런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소리만 지르고 있잖아요?

사실 사드 배치만 해도, 12월로 예정돼있던 것을 5월로 바꾼다고 하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국회가 제대로 묻고 따져야 합니다. 국방위원회든 외교통일위원회든 상임위원회를 열어서 국방부 장관을 부르고 질문하고 따지면 그것만 해도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프레시안 : 야당의 모 관계자에 따르면, 야권이 GSOMIA 체결을 밀어 붙인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 대해 해임 건의안 제출을 망설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수선한 정국에 국방부 장관이 탄핵되는 것이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도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국회가 국정을 집행할 권한이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탄핵 당한 박근혜 정부의 독주를 막으려면 이런 의사 표시 정도는 자신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국회가 제도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한계가 있습니다만, 정부가 마음대로 만은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국방부 장관이 탄핵되면 국민들의 안보불안감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참는다는 것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입니다. 국민들은 황교안 권한대행 퇴진까지 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민주당, 동서남북을 모르니 참 큰일 입니다.

정부가 자기 멋대로 하려고 할 때, 결과적으로 집행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눈치라도 보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국회는 무슨 기능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야당은 뭐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까? 정당(political party)입니까, 아니면 청와대 가는 차표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입니까? 이렇게 해가지고 집권할 수 있겠어요?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국무위원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장관, 청와대 수석 등등 중에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법무장관과 민정수석 외에는 단 한 명도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자마자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했습니다. 지금 황 권한대행이 하는 행태를 보면, 이명박 정부 때부터 국내 정치의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한 '북한의 위협'을 또다시 사용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공안검사 출신다운 발상입니다. 공안은 시민들의 생활 질서를 관리하는 치안과 다릅니다. 그동안 공안은 북한의 대남전략을 구실로 삼아 군사독재 유신독재를 돕는 일을 해왔습니다. 반북이나 반공을 핑계로 독재 정치에 힘을 보태주는 것인데, 황 권한대행의 경력으로 보자면 보자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프레시안 : 황교안 권한대행이 이 자리까지 오른 과정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황교안 총리를 불러오면서 공안 세력이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된 건데요.

일각에서는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박정희 신화가 끝났다고 이야기하지만, 적어도 현실 권력의 차원에서는 박정희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있으니 오히려 아직 잘 살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까지 아무리 적게 걸려도 내년 3월까지는 가야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한 상황입니다. 박정희 체제의 신화가 오히려 황교안 체제를 통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퐁피두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는데, 이러다가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까 걱정도 됩니다. 실제 우리는 1987년 이와 유사한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을 굴복시키고 헌법까지 개정했지만 결국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당시 김영삼, 김대중 후보 모두 본인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득표율만 보자면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였습니다.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가 단일화를 했다면 전두환 후계자인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내년에 치러질 대선에서 이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야권에서 대표주자라고 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중 어느 한 사람도 양보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야권 후보가 쪼개지면 결국 새누리당 혹은 보수 계열의 후보가 어부지리로 무난히 당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레시안 :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 국정 농단으로 민심을 잃었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 내에서 권력과 재력, 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똘똘 뭉쳐 있습니다.

정세현 : 한국 사회는 선출된 대통령의 이념 성향과 국제정치관 등이 한미관계나 남북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권이 바뀐다면 아무리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좌충우돌'식의 대외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그 틈새에서 기회를 만들 수 있는데,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이 재집권한다면 남북관계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내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재 권력자들은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대신 또다시 북한을 구실로 한 공안 통치를 강화하면서 재벌 중심 경제를 끌고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 민주화 어렵게 된다는 얘깁니다.

이미 곳곳에서 한국 경제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리더십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 입장에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어쨌든 연속성을 가지고 일을 했던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 더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왼쪽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삼정 대표 ⓒ연합뉴스

경제위기가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대안을 야당이 제시하지 못한다면, 경제위기가 찾아오더라도 기존 정권과 한통속인 보수세력에게 유리하게 국내정치 상황과 표심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출범 이후 미중 관계마저 출렁거리고, 안보도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면 기존 리더십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보수정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한다는 쪽으로 민심이 돌아설 수 있습니다.

지금 촛불민심만 보고 진보진영이나 야권은 정권 다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닐 수 있습니다. 정치의 세계에서 하루는 보통사람의 일생보다 길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보위기‧경제위기 오면 민심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습니다.

문재인, 북한 먼저 가겠다?

프레시안 : 헌법재판소의 탄핵 소추안 심판이 시작되면서 사실상 박 대통령의 탄핵은 교착 상태로 진입했습니다. 이럴 때 국회에서 정책을 주도적으로 집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야당이 이걸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이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은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차기 권력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 와중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16일 <중앙일보>에 실린 도올 김용옥 선생과 대담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과 북한 중에 북한을 먼저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발언을 두고 벌써부터 보수 언론들은 문 전 대표를 때려대기 시작했는데요. 굳이 이렇게 말해야 했을까요?

정세현 : 그 대담을 봤는데, 질문이 두 개 중에 하나를 택하는 방식이더군요. 북한과 미국 중에 어딜 먼저 가겠냐고. 그런데 질문이 그랬다고 해서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답변이라고 봅니다.

인터뷰 내용을 보니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민생을 해결하고 젊은 층에게 이른바 '헬조선'을 탈출하는 꿈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더군요. 그렇다면 미국과 북한 중 어디를 먼저 갈 것이냐는 질문에 말려들기 보다는,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지난 10년 동안의 민주정부 시절 대북정책 노선으로 돌아가겠다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문현답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도올 선생이 우문을 던진건 아니고 직문직답을 바랐지만, 문 전 대표가 한 템포 쉬고 우회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무튼 북한관련 문제는 지뢰밭이어서 단어 하나도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좀 에둘러서 말했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한미 관계는 동맹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시켜 나갈 수 있고, 이것은 어떤 점에서 상수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관리를 하지만, 위험성이 있는 북한을 관리하려면 한미 간 긴밀히 협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설명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조율을 해 나가면서 남북관계의 상황을 주도할 수 있고, 지금보다 안보 위기도 훨씬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을 함께 가져가겠다고 자연스럽게 넘어가야지요.

덧붙이자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도 없다는 식이었는데, "이렇게 해서 어떤 성과를 냈나? 남북관계와 핵 문제 모두 어려워지지 않았나?"라고 따져 물으면서 본인 정책을 꺼내면 됩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5일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 공식 블로그

독도 문제만 해도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문 전 대표는 15일 외신기자들과 간담회에서 GSOMIA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본이 독도에 대해 계속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한일 간 영토 분쟁이 있는 마당에"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문제는 독도가 한일 간 영토 분쟁의 사안이라고 밝힌 데 있습니다. 이건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입장과는 다릅니다. 한국 정부는 한일 협정 전인 1964년부터 독도는 분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이동원 외무부 장관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두고 "내가 지금 내 부인이랑 살고 있는데 동네에 이상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본인의 부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며 일본의 이러한 주장은 대꾸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요구에 아예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독도가 분쟁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방향성의 차원에서 GSOMIA 체결이 적절하지 않다는 문 전 대표의 주장은 시의적절한 입장 발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세부적인 사안에서 이렇게 실수를 하면 나중에 일본한테 발목을 잡힐 수 있습니다. 일본이 이 발언을 낚아 채서 독도는 분쟁 지역이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 판결을 받자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제재가 북한을 아프게 한다? 식량 생산은 더 늘었다

프레시안 : 지난 17일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5주기가 지나갔습니다. 이 시기에 맞춰 북한이 군사적으로 소위 '사고'를 칠 경우 남한의 강경파와 박근혜 정부를 도와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습니다만 북한은 별다른 군사적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세현 : 저도 북한의 움직임을 그동안 상당히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지금 북한이 사고를 치면 황교안 권한대행의 국정 장악력은 더 커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살아날 수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여론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기간에 상당히 조용했습니다. 지난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제네바에서 있었던 북미 1.5트랙 접촉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이 감지될 때까지 미북 관계 개선 혹은 협상 가능성의 문을 닫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예측하기가 어려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겠다고 군사적 행동을 취했다가 잘못하면 사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덕을 한국이 보고 있는 셈인데요. 이런 점에서 국내 대선이 언제 치러질지는 모르지만 북한의 군사적 행동 때문에 보수 결집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진 것 같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후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국무성의 동아태 차관보가 지명되고 상원의 청문회를 끝내려면 빨라야 6월 중순입니다. 이때쯤이면 대북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먼저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런데 동아태 차관보가 지명되기 전이라도 국방장관, 국무장관 등이 큰 방향은 짜놓을 겁니다. 어느 정도의 방향성이 나온 이후 북한은 시간은 두고 기다려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차기 정부가 손을 쓰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이 나왔습니다. 역대 가장 강력한 제재안이라던 2270호보다 강화됐다고 하는데, 실제 북한이 체감하는 위협은 어느 정도일까요?

정세현 : 이번 결의안인 2321호에는 북한의 석탄 수출에 상한선을 둔 것이 주목할 만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여기서 손실을 보는 금액을 분명히 다른 곳에서 메꾸려고 할 것이고 메꿀 수 있을 겁니다. 북한에 들어가는 자금이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에 쓰인다는 논리인데,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키는 데 있어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 곳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기술자들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이 핵과 미사일 개발의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우리나 미국 일본 등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걸 돈으로 따지고 움직이는 물질자극적인 문화가 지배하고 있지만, 북한은 아직도 사상자극적인 문화속에서 체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물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위해 필요한 자재와 장비들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를 통해 얼마든지 들여올 수 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북한이 국제적인 제재를 받는 와중에도 내수가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달 초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의 한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올해 북한이 600만 톤의 식량이 필요한데 572만 톤을 생산했다고 합니다. 물론 28만 톤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북한의 식량 사정을 해결하는 데 부족함이 거의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한국 정부가 북한에 쌀을 지원했을 때 당시 북한에서는 1년에 150만 톤 정도의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이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입니다.

또 최근 북한 경제 운영의 주체로 일종의 기업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예전에 중국 개혁‧개방시기의 '집단'과 유사한 형태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대외 협상 창구에 있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지원' 사업을 따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나, 요즘은 '협력'사업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의 자존심 문제도 있지만, 이는 일방적인 지원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식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주택문제만 해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합니다. 평양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은 지방에서도 예전보다 개선된 주택들이 많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이는 북한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재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른바 '돈주'들에 의해 생겨나는 현상인데요. 돈주가 집을 지어서 거기서 이득을 본다고 합니다. 당국의 비호와 지원 하에 집을 지어서 거기서 나오는 이득을 나눈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경제가 굴러가지요.

실제 최근 북중 국경에서는 레미콘 차가 북한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레미콘차들은 돈주들이 투자한 건설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북한과 같은 체제는 기초 자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원시자본'이 없어서 이 자본 축적을 위해 독재도 하고 인력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단 원시자본과 물건이 확보되면 유통을 통해 일자리가 생기고 이후 이에 따른 파급효과도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국제적 고립 속에 자급자족으로 체재를 유지해왔습니다. 한국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제재를 해봐야 이게 북한에 치명적인 상처를 내기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제재에 열을 올리는 것은 북한도 한국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무역을 틀어 막으면 굶어 죽을 수 있는데, 북한은 다릅니다. 북한 내부에서 얼마든지 인민 경제를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와 상황이 다릅니다.

이번 제재 결의안인 2321호 역시 일종의 '희망적 관측'이 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이렇게 세게 제재하면 '이제는 손 들고 나오겠지'라는 희망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오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이 어떠한 반대 급부도 없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원래 없었습니다. 더구나 지난 5월 북한의 노동당 7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 당시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핵 보유국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관련 국가들이 협상도 하지 않고 압박만 해들어오는데 북한이 핵 보유국 선언을 없던 일로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압박에 굴복해서 핵을 포기한다고 하면 그날로 김정은 체제는 무너지는 겁니다. 김정은이 인민들에게 핵 보유 포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미국 혹은 국제사회와 협상으로 반대급부를 받아왔다는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현 정부 외교안보팀의 상상력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북한을 압박하면 손 들고 나올 것이라는 정책 자체가 매우 단편적입니다. 이러면서 자신들이 취한 정책이 시의 적절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것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도 기만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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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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