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997년 체제' 탈출 기회가 열렸다

[복지국가SOCIETY]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

(☞원문 바로 가기 : 촛불 시민 혁명으로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를 극복하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열차를 바라보는 외신이나 외국인들은 수백만 명이 결집한 대한민국의 촛불 민심에 놀라고 그들의 질서정연함에 다시 한 번 '엄지척'을 치켜세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왕조 시대에서 공화정으로 정체(政體)를 교체했는지 의문을 표시한다. 이는 세계사에서 흔치 않는 역사이지만 사실은 우리 안의 수치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 이후 우리 역사에서는 단 한 번도 지배 계급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이 기회다. 지금 다시 광장에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촛불의 메시지는 이렇다. 첫째, 촛불의 열기와 성과를 다시 특정 정치 세력이 독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낡은 체제(앙시앵 레짐)를 변혁해야 한다. 촛불 민심은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혁명에 준하는 변혁을 바라고 있다. 셋째, 역사의 죄인들을 확실하게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반복된 실패의 역사나 민주주의의 역행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될 때라야 완전한 민주주의가 달성된다. 바로 헬 조선으로부터의 탈출이다.

▲ 지난 11월 26일 150만 촛불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프레시안(최형락)

시장 만능주의 헬 조선 벗어날 대안 만들어야

지금이 야당으로서는 최고의 정치적 호기일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집권 여당은 재벌 대기업과 부자 특권층을 위한 정책들을 주로 집행해왔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더구나 우리 사회 특권층의 갑질 문화와 특권 의식은 그 정도가 너무나 심각했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마저 그들에게는 예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행위들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권력 기관과 언론 기관까지 통제하며 독재 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국정을 농단해왔다.

사회 안전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압도적 세계 1위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라는 오명만 남았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알바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청년들, 노후의 편안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야 할 전체 노인의 4분의 1이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을 일해 봐야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려운 게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이다. 소수의 부자들을 위해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불안하고 불행하게 살아가야 하는 세상,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지금 야당들도 국민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고 해서 여소야대의 국회까지 만들어줬다. 그럼에도 그들은 산적한 대한민국의 병폐를 거의 해결하지 못했다. 이제 야당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헬 조선을 탈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법률과 제도로 확립할 확고한 비전을 보여주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는 야당이 그동안 지탄받아온 바를 사죄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정치적 87년 체제와 경제적 97년 체제를 끝내자는 촛불 민심의 요구

박근혜 탄핵의 국회 가결 이후 여야 정당과 주요 정치인들은 차기 권력 창출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골몰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달프고 성난 촛불의 민심은 구체제의 청산과 보통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외치고 있다. 다시 말자자면, 정치적으로는 '1987년 체제'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1997년 체제'의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의 체제 변화가 시대적 당면 과제로 요구받고 있다.

먼저, 정치적으로는 승자독식-패자전몰의 '단순다수 대표제'라는 선거 제도와 정당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49대 51로 승부가 갈리는 현행 선거제도는 51%의 승자가 모든 권력을 독식하게 되어 있다. 반면 49%의 민의는 사장된다. 그러다 보니 권력을 획득한 쪽과 패배한 쪽이 집권기간 내내 반목하고 질시한다. 이런 정치의 역사가 87년 이후 3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가령, 세 후보가 34%, 32%, 31%의 득표를 했을 때 34%를 득표한 당선자는 낮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모든 권력을 독점한다. 이로 인해 집권 기간 내내 나머지 약 70%의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발목을 잡힌다. 그러다 보니 선거 이후에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전체 국민의 40% 가까이 되는 일이 늘 벌어진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사표를 방지하고 지지율만큼 권력을 획득하는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이다. 국민은 지지 정당에 투표를 하고, 정당들이 지지율에 비례하여 의석수를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그러면 이 진보적 정당들에게 5~10%만 표를 주어도 15석~30석의 의석이 생기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당이나 청년이나 여성을 주로 대변하는 정당, 또는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당들도 생겨서 작은 지지율로도 국회 입성이 가능하게 된다. 일명,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정당이 너무 많아진다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미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보통 4-6개 정도의 원내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다. 사실 정당 득표의 하한선인 3%의 지지를 얻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원내의 다양한 정당들이 자신의 취지에 맞는 역할들을 수행하며, 결국 다양한 국민적 이해와 요구가 대의 정치에 반영된다. 우리는 현행 선거 제도와 정당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그래야 거대 양당의 독점으로 인한 폐해도 줄일 수 있다. 또 선거 때마다 거대 정당 외의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기권을 하거나 차악을 선택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양극화와 불평등을 넘어설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1996년 말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이 다 된 것처럼 요란했다. 그러나 1년 후 IMF 외환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재앙을 마주했다. 사실 당시 정치권은 조급하게 금융 시장의 개방과 노동 시장의 유연화, 근로자 파견제 등을 수용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유럽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그 폐해가 드러나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대한민국에서는 그에 대한 진지한 검토나 공론화가 정치인들의 무능과 이익을 위해 무시돼 버렸다.

결국 199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인해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OECD 34개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심한 나라로 전락했다. 국민 행복지수도 터키와 멕시코를 제외하면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다. 국민이 불안하고 불행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매년 물가는 오르는데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90%의 임금 상승률은 제자리에 머물고, 지불해야 할 각종 비용을 제때 지불하지 못하는 국민이 크게 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 질서라는 허울은 재벌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해 대다수의 국민들을 희생시킨다. 이것이 헬 조선이다. 국민들은 '살아가는 게 힘들다'며 아우성을 쳐도 '1997년 체제'인 신자유주의 노선은 진보 정권에서나 보수 정권에서나 유지됐다. 경제학자들 역시 시장의 우위만을 주창한다. 분배와 정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기득권 세력의 탐욕은 30대 재벌 대기업의 창고에 800조 원이 넘는 돈이 쌓여 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1년 예산의 두 배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곳간 채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 앞에서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다.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보통 사람들이 행복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요구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1997년 체제를 끝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적 1987년 체제와 경제적 1997년 체제를 끝내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영원히 헬 조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민 대다수의 삶이 끝없이 추락함에도 불구하고, 재벌 기득권과 낡은 정치 세력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만을 위해 낡은 체제를 유지하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촛불에서 보여준 수백만의 함성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누구라도 이 대열에서 역사를 거스르고 시대를 역행하는 낡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현행 정치 시스템을 만든 낡은 선거 제도와 정당 체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그리고 역사의 본질적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어느 정권이 들어선들 경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대한민국의 변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지난 1987년 이후 30년 동안의 학습 효과이다. 이제 우리는 국민이 행복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 제도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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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이자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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