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궤도를 끝없이 돌아봅시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평화는 깨지기 마련

점심을 먹으면 채비 후 산책에 나섭니다. 30분 남짓한 시간, 늘 정해진 길을 따라 걷습니다. 이 시간은 하루라는 그림의 여백과 같아서 웬만하면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사람은 줄고, 먹이를 찾아 나선 청솔모와 새들은 늘어나 길의 즐거움이 더해졌지요.

오늘은 팀 버튼 감독의 마니아로 추정되는 단골카페 주인이 낸 차를 한잔 들고 걸었습니다. 공기는 청쾌하고 어린이집 아이들의 노래 소리는 그야말로 참새들의 지저귐 같았지요. 벤치에 앉아 차를 다 마시고 한껏 고양되어 내려오는 길, '부릉' 소리와 함께 트럭이 지나고 매연이 저를 휘감습니다. 그 짧은 찰나, 1초전까지만 해도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고요한 노래와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트럭을 돌아보며 가슴의 분함을 토해냈습니다. 저를 아랑곳 하지 않고 언덕을 오르는 트럭을 뒤로 하고, 서둘러 내려오면서 치밀어 올라온 기운이 가라앉자 허망함을 동반한 실소와 함께 '아! 평화란 깨어지기 마련이구나!' 싶었지요.

상담하다 보면 예전에 치료해서 다 나았는데 왜 또 아픈지 모르겠다는 환자를 봅니다. 그런가 하면 치료해서 이제 겨우 건강을 회복해 가는데, 다 나은 줄 알고 방심하다가 과거로 후퇴하는 분도 있습니다. 마르고 구워서 단단해져야 하는데 막 빚은 도자기와 같은 상태를 건강의 회복으로 착각했지요. 때론 나는 잘하지만, 주변 상황이 도와주질 않아 공 든 건강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중한 병에서 겨우 회복하다가 악화되면 조금 흔들려도 마음을 다잡는 분이 있는가 하면, 실망이 커서 마음의 동력을 잃고 한동안 표류하는 분도 있습니다. 본인이 받는 치료에 의구심을 품는 경우도 있지요.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건강은 일종의 동적인 균형 상태입니다. 음양과 오행으로 표현되는 우리 몸의 생명활동이 적정한 범위 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지요. 균형이 정해진 궤도를 이탈할 기미가 보이면 미병(未病)이라 부르고, 벗어나면 병이라 하고, 완전히 이탈하면 죽음입니다.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내부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쉼 없이 이루어집니다. 건강과 병, 그리고 삶과 죽음이 한 순간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늘 움직이는 건강이란 열차는 어느 때고 궤도를 이탈해 병이란 이름의 열차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병에서 다시 건강이란 안전 궤도로 들어올 수도 있지요.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예방이라 부르고 궤도를 수정하는 것을 치료라 부릅니다.

병이 났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나의 특징과 내 삶의 습관이 만들어낸 건강의 궤적을 의사와 함께 분석해 합리적이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한 후, 서로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이것 외에 별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병이 중하면 당연히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요. 하지만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면 시간이 쌓일수록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요즘 유행하는 말대로 '팩트'입니다.

우리가 방심한 순간 수백만이 촛불을 들어야 할 정도로 사회가 병든 것처럼, 건강 또한 언제고 그 평화가 깨질 수 있습니다. 요즘 '생물'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생물에게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하지요.

가능한 오랫동안 좋은 건강이란 이름의 열차에 타고 싶다면 나와 내 삶의 궤도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평화로운 산책길에 매연을 내뿜는 트럭은 등장합니다. 그래도 쌓아 온 시간이 있다면 조금 덜 흔들리거나, 조금 더 쉽게 내 리듬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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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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