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 부분 '유치원~' 이렇게 들리지 않아?"
아이와 함께 하는 출근 길, 유치원에서 나눠 준 음반을 틀고는, 잘 들어보라며 아이가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 부분만 되면 유난히 크게 부르는데, '유치해~' 라고 바꿔 부르기도 한답니다.
여러 나라의 인사말에 관한 노래였는데, 아이가 '유치원~' 이라고 하는 부분은 일본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말이 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제 귀에도 영락없이 그렇게 들립니다. 며칠 동안 아이랑 마냥 즐겁게 부르며 다녔습니다.
그러다 오늘 문득 그 부분이 '곤 니치와'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니 '왜 이걸 못 들었지?' 하는 생각에 실소가 나옵니다. 영어권 아이들의 발음을 탓하기에는 너무 생각 없이 들었구나 싶었지요. 아이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고 하다가, 몇 번 반복해서 듣더니 '아, 정말 그렇네!'라며 또 뭐가 재밌는지 깔깔 대고 웃습니다. 유치원 가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알려 주겠다면서 신나게 손을 흔들며 갑니다.
한의원으로 오면서 아이가 반복 재생으로 설정해 놓은 그 노래를 다시 들었는데, 이제는 정말 정확하게 '곤 니치와'로 들립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있는 그대로 인식함에 관해 반성을 많이 했지요.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몸과 생각의 관성을 바꾸는 것이 참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생각의 지도, 혹은 회로가 내면에 있어서, 자극이 왔을 때 익숙한 경로를 따라 인식하고 해석해서 판단하고 반응합니다. 그래서 입력은 같아도 출력된 결과물은 각기 달라지지요. 그런데 내면의 틀이 변화해야 치료가 잘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 생각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제가 아무리 열심히 좋은 정보를 전달해도 그 신호는 왜곡되어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와 딸아이가 노래 가사를 다르게 듣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즐긴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 환자를 치료할 때는 당장의 증상을 조절하면서(이것을 안 하면 진료를 받지 않으니까요), 그가 방문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면 환자가 가진 고정관념에 약간의 틈새가 생깁니다. 환자는 그 틈을 통해 다른 관점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사고의 틀이 바뀌는 경우는 지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환자가 어느 한쪽만 바라봤다면, 이제는 다른 쪽도 바라보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환자가 이 궤도에 들어서면 점차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선택을 내립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떤 치료법이나 의료 기관이 절대적이라거나, 이것 하나면 다 된다는 식의 정보에 휘둘리지 않지요. 말하자면 저는 환자의 인식에 지속적으로 딴지를 걸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의사에게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의심 없이 기존의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고정 관념을 가진다면, 의사 자신이나 환자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테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현실이라 말하는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범주와 동일한 개념입니다. 전혀 다른 노래 가사를 진짜라고 믿고 즐겁게 부르는 것도 좋지만, 좀 피곤하더라도 가능한 한 왜곡이나 축소나 과장 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나 개인이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한다면 건강할 확률이 더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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