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고용된 국회 청소 노동자들 "꿈 아니죠?"

국회 회견장 찾아 정세균 의장과 더민주 을지로위 의원들에 '박수'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요. 가슴이 벅차요. 이제 우리도 진짜 국회 주인이 됐잖아요. 아…. 이 자긍심과 애사심은 어떻게 돈으로는 환산이 안 돼요."

용역 업체에 고용돼 일해 오던 국회 청소 노동자들이 지난 2013년 공식적으로 직접 고용 요구를 하고 3년 만에 불가능할 것 같아만 보였던 꿈을 이루었다. 당사자들의 끈질긴 노력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연대, 그리고 4월 총선 결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에 힘입어 입법부의 수장이 된 정세균 국회의장의 의지가 모인 결과다.

청소노조 위원장 김영숙 씨는 5일 "이거 정말 꿈이 아니죠?. 저희 정말 마음고생 많이 했거든요"라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김 위원장의 목소리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김 씨는 이날 노조 조합원들과 둘러앉아 "아주 기쁜 점심 식사"를 했다고 했다. 국회 기자 회견장에 동료들과 다 같이 모여 우원식 김현미 유은혜 김경수 등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 환경 미화원 직접 고용 예산 통과와 환영 기자회견'을 지켜본 후였다.

회견장은 자주색 유니폼을 입은 청소 노동자 180여 명의 가슴 따뜻한 박수 소리로 가득찼다.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었고, 그간의 노력을 격려하며 서로를 포옹했다. 손으로 브이자(v)를 그리며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을 그냥 지나던 이들도 멈춰 서 휴대폰 카메라 안에 담았다.

국회는 지난 2일 2017년도 국회 예산안에 청소 용역을 위한 예산 59억6300만 원을 '직접 고용 예산'으로 수정해 의결했다.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중 청소 노동자들을 위탁 고용하는 데 쓰일 돈으로 잡혀 있던 관리 용역비(비용 명세)를 직접 고용 예산으로 논의 끝에 변경한 것이다.

국회 대변인실은 "위탁 용역에 소요되는 제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추가 예산 없이도 보수 인상이 가능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간접 고용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면 임금 부담이 커진다'는 혹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하청 업체가 챙기는 '중간 이윤'만 노동자 몫으로 돌려도 오히려 임금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애초 우리 근로 기준법은 중간 착취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과 공공을 불문하고, 상시·지속 업무와 안전 업무에 이르기까지 간접 고용이 무분별하게 퍼져 있는 현실로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떨고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신음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국회와 같은 핵심 공공 기관에서라도 '중간 착취'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수년째 이어졌지만, 이 당연해 보이는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2011년 박희태 국회의장은 "청소부들을 정규직화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는 선언에 그치고 말았고, 청소 노동자 204명은 지난 2013년 9월 전체 의원들에게 직접 고용 촉구 성명서를 전달하며 제 손으로 싸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19대 국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은수미 의원 등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이들을 '후방 지원'했다. 그러나 때마다 새누리당 의원들과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2013년 12월 국회 운영위 중 한 '망언'은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다.

"(청소 노동자들이) 무기 계약직이 되면 노동 3권이 보장된다. 툭 하면 파업할 텐데 어떻게 관리하려고 그러느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던 박근혜 정부의 여당 의원마저, 다른 곳도 아닌 국회 안 비정규직 문제 해결 시도를 위법적 논리로 주저앉히려던 모습은 사회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 관련 기사 : 김태흠 의원 한마디에 국회 청소노동자 '통곡', "김태흠 발언 논란 후, 올해도 계약해지 통보 받았다")

올해라고 정부가 태도를 고쳐 직접 고용 물꼬를 순순히 터준 것도 아니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2017년 예산안 원안에는 국회 청소노동자 관련 임금이 또다시 '관리 용역비'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 예산을 상용 임금과 고용 부담금(4대 보험 등)으로 변경하면 될 일이었지만, 기재부는 마지막까지 이를 반대했다. 예결특위 위원장인 김현미 의원은 "국회에서 직접 고용이 이뤄지면 공공 부문 직접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김영숙 위원장은 "예산 논의를 지켜보며 겉으로는 의연한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많이 불안했어요"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 위원회 트위터 갈무리
국회의 예산 논의에 앞서 국회 사무처와 노조(한국노총 전국연합노조연맹 국회환경노동조합)의 협의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현재 청소 노동자들은 용역 업체와 정년을 68세로 계약하고 있는데, 공공 기관은 정년을 60세로 하고 있어 자칫하면 직접 고용 전환이 외려 대량 해고를 부를 수 있었던 까닭이다.

6차례에 협의 끝에 노조와 국회 사무처는 정년 이후는 65세까지 기간제 형태로 추가 근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런 내용은 향후 청소 노조와 국회 사무처가 '직접' 임금·단체 협상을 체결하며 명문화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이렇게 저렇게 많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의장님이 의지가 정말 강해서 끝까지 저희 손을 놓지 않으셨어요"라고 전했다. 정세균 의장이 이른 시일 내에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의지가 워낙 강했던 덕에 기재부의 반대를 물리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정 의장은 지난 6월 15일 취임 간담회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가 앞장서 국회 내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었다.

김 위원장은 또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현미 의원님도 끝까지 저희와 논의를 계속해주셨어요"라고 했고, 19대 국회 때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온 우원식 의원 은수미 의원 등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저희를 위해 안 보이는 데서도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도 전했다.

국회의장과 예결특위원장 모두 지난 4월 총선이 여소야대로 귀결되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몫이 된 자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박수를 받아야 할 이들은 청소 노동자 당사자들이다. 다른 곳도 아닌 국회의 청소 노동자인 만큼, 사회적 문제가 되어 온 공공 기관 간접 고용 문제를 "우리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던 이들이다. 김 위원장은 "다른 공공 기관들도 빨리 따라왔으면 좋겠어요. 지난 3년 동안 마음고생 몸 고생 많이 한 우리 조합원들 정말 고생했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죠"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60대 '빨갱이'들의 눈물겨운 007작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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