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의 '김종 부역자'도 색출해야 한다!

[이종훈의 영화 같은 스포츠] 김종, 초능력으로 나라 망친 이

대한민국 정부에서 차관은 장관을 보좌하는 2인자인 동시에 주요 업무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명시적인 정의일 뿐, 국회에서 일하며 지켜본 바에 의하면, 차관은 힘이 별로 없다. 자연히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 또한 별로 없다.

이런 모습은 실무와 공직 경험이 없는 외부 낙하산 출신 차관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이들은 실무 권한을 꽉 틀어쥔 국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에게 휘둘리기 일쑤다.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때문에 이들은 장관을 대신해 각종 위원회와 회의에 대리 출석하고, 장관을 대신해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일을 전담하는 그야말로 '부처의 얼굴마담' 역할만 하다가 다음 개각 때 자리를 비워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의 이런 생각과 경험을 송두리째 뒤바꾼 인물이 있다. 바로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다. 필자에게 김종 전 차관은 미스터리 자체였다.

'왕 차관'도 아닌 이가 어떻게 체육 황제를?

만약 일개 개인이 대한민국 체육계를 완전히 장악해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고 싶다면 문체부 체육국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통합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이 세 사람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 부리면 된다. 문체부 체육국장은 대한민국 체육 정책의 모든 실무 권한과 행정을 틀어쥔 자리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내년(2017년) 사업 집행 예산만 1조3647억 원에 달할 정도로 큰 체육 예산을 주무르는 단체다. 통합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의 모든 경기단체와 생활체육단체를 총괄하는 자리다.

따라서 만약 이 세 자리가 한 사람의 휘하에 들어간다면, 그 사람은 대한민국 체육과 관련한 모든 정책과 예산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대한민국 체육계 전체가 그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간 한 사람이 이 세 자리를 자기 라인으로 채우고, 자기 휘하에 두고 부리는 일은 민주 정부에서는 장관이 아니라 장관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되는,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간 여러 인사가 이런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굳이 스포츠를 통째로 주무르려는 의욕이 충만한 이가 대통령이 되지 않는 한, 체육 황제란 등장할 수 없었다.

이 어려운 일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교수가 해냈다. 김종 전 차관은 차관으로 부임한 지 4개월 만에 문체부 체육국장 자리에 자신이 박사 논문을 지도했던 제자를 앉혔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에 대학원에서 자신과 같이 공부했던 친구를 내려 보냈다. 그로부터 6개월 뒤에는 교수 시절 자신과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일했던 선배 학장을 국민생활체육회 사무총장을 거쳐 통합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에 앉혔다. 이렇게 이 세 자리가 순식간에 '김종 라인'으로 채워졌고, 김종 전 차관은 대한민국 체육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대통령'이 됐다.

대한민국 정부 구조상 허수아비가 되기 쉬운 차관이 자신에게 힘이 집중되는 구도를 만들려면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의 모든 인사권을 틀어쥐어야만 한다. 공무원이 아닌 대학 교수 출신 차관이 이런 일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한 가지 예외는 있다. 바로 그 차관이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정권의 최고 실세로 소위 '왕 차관'일 때다.

하지만, 김종 전 차관은 박근혜 대통령과 큰 인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에도 크게 기여한 바가 없는 인물이다. 정권 실세라고 부르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 전 차관이 가졌던 힘의 크기는 분명 과거 왕 차관들의 그것을 넘어섰다. 대통령을 등에 업어야만 가능한 일을 대통령 없이 해낸 김종 전 차관의 힘은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

▲ 최순실의 '왕 차관' 김종뿐만 아니라, 모든 체육계 부역자를 솎아내야 한다. ⓒ연합뉴스

최순실의 왕 차관 김종의 하찮은 권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서야 모든 미스터리가 풀렸다. 김종은 왕 차관이 맞았다.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대통령'이 달랐을 뿐이었다. 설명이 불가능했던 김종 전 차관의 힘은 모두 최순실에게서 나왔다.

모든 의문이 풀리자 떠오른 영화가 하나 있다. 테리 존스 감독, 사이먼 페그 주연의 영국 영화 <앱솔루틀리 애니씽(Absolutely Anything)>이다. 이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에게 초능력을 부여받은 평범한 학교 선생님 닐(사이먼 페그)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낸다. 닐은 지구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하찮은 일에 그 능력을 사용하기 바쁘다.

김종 전 차관 역시 영화 속 닐처럼 어느 날 갑자기 최순실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로부터 차관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아 대한민국 스포츠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됐다. 비록 최순실로부터 얻은 힘이지만, 그 힘은 분명 대한민국 체육계의 현재와 미래를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김종 전 차관은 체육 발전을 위해 상아탑에서 고민하고 상상해왔던 모든 것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 힘으로 했던 일의 대부분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옹호하고 밀어주기, 최순실의 수하 차은택의 늘품체조 밀어주기, 최순실의 회사와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의 회사 뒤봐주기 수준의 '구린' 일이었다.

영화 속 닐은 비록 처음에는 하찮은 일에 초능력을 쓰기 바빴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노숙인에게 집을 만들어주고, 배고픈 이들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주고, 명분 없는 전쟁을 멈추는 멋진 일에 그 능력을 사용한다. 종반에는 우여곡절 끝에 멸망 위기에 빠진 지구도 구해낸다. 하지만, 김종 전 차관은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최순실이 준 힘에 취해 그가 가진 힘을 불법적 완장질에 사용하기 바빴다. 김종 전 차관은 대한민국 스포츠계 전체를 어두운 색으로 칠하고 말았다.

체육계 최순실 부역자 모두 솎아내야

지금 우리 체육계는 김종 전 차관과 최순실이 남긴 어두운 유산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됐다. 이를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영화 종반 닐은 자신이 가진 힘을 반려견 데니스에게 넘겨준다. 김종 전 차관은 박근혜 정권의 실세 차관인 동시에 최장수 차관이었다. 때문에 문체부와 체육계 전반에는 김종 전 차관으로부터 힘과 완장을 부여받고 전횡을 일삼은, 이른바 '김종의 사람'이 상당수 존재하고, 지금도 건재하다.

지난 3년간 일차적으로는 실세 차관에게, 궁극적으로는 최순실에게 충성한 인사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체육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음은 무슨 의미일까? 최순실과 김종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바로잡는 노력이 바로 그들로부터 힘과 자리를 부여받은 이들의 손에 달렸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친일파에게 친일청산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영화 종반 닐은 전적으로 반려견 데니스 덕분에 지구를 구한다. 최순실과 김종으로부터 힘을 넘겨받은 이들은 앞으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대한민국 스포츠가 영화 <앱솔루틀리 애니씽>과 같은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지켜봐야 할 일이다.

▲ 영화 <앱솔루틀리 애니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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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제가 만난 스포츠 스타들은 셀 수 없이 많은 패배가 자신을 승리자로 만들어 줬다고 말합니다. [이종훈의 더 플레이어]를 통해 수많은 이들을 승리자로 만들어 준 '패배와 실패'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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