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의 역설…'박근혜 수레'는 이미 불타고 있다

[분석] 법무부 장관 사표 반려도 못하는 피의자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제출한 사표를 반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김 장관과 최 수석이 자신들의 결정 번복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청와대 참모들은 두 인사의 사표 반려 문제라는 간단한 사안을 두고 전날 하루 종일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25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김 장관과 최 수석에 대한 사표 반려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인사와 관련된 것은 대통령의 결심 사안이기 때문에, 인사와 관련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사표 반려라는 간단한 사안조차 대통령이 결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국회가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데다, 특검 수사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사정 기관을 총괄하는 양대 포스트인 두 인사의 사표를 수리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게다가 검찰은 오는 29일까지 박 대통령을 대면 조사하겠다고 대외적으로 경고를 한 상황이다.

김 장관과 최 수석이 박 대통령의 설득에 따라 '원대 복귀'한다고 해도 이미 무너진 공직 기강이 다시 세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식물 장관', '식물 수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박 대통령이 두 사람을 사실상 경질한 것으로, 사정 라인의 3각 축인 김수남 검찰총장까지 물러나게 하는 '압박 카드'가 아니냐"는 해석은 힘을 잃는다.

'김수남 총장 압박 시나리오'는 수사 라인을 장악할 수 없다면, 수사 수뇌부를 붕괴시킨다는 해석인데, 이미 여론은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의 사표 자체를 정권 붕괴의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낮은 상황이다.

실제 김수남 검찰총장은 김 장관이 사표를 낸 시점(21일), 최 수석이 사표를 낸 시점(22일) 직후인 23일에도 "검찰 외부 상황과 상관없이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는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쪽에서는 "대통령까지 연루된 초대형 수사가 한창인 때 수장의 거취 문제를 거론하는 건 부절적하다"는 분위기다.

만약 정무 라인에서 김수남 검찰총장 압박용으로 이같은 기획을 했다면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여전히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다.

반대로 두 인사의 사표 제출이 순수하게 "도의적"이었다는 말을 믿더라도, 반려 조치조차 못하는 상황은 정권 내부의 혼돈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이러나 저러나 내부에서 붕괴가 시작됐다는 관측은 피할 수 없다.

결국 박 대통령의 사표 반려 노력은 고위 공직자들의 추가 이탈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새누리당 비박계마저 탄핵에 동참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무원들까지 이탈할 경우 박 대통령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사표 반려에 성공하더라도,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를 앞둔 상황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박 대통령이 검찰 인사권을 쥐고 수사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에게 여전히 업무를 지시하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라는 비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불타는 수레'라서 (탈출하려고) 사의를 표명한 것은 아니다"라는 최 수석의 강변에는, 이미 하나의 판단이 불변의 전제로 포함돼 있다. 수레는 이미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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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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