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넘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의혹이다. 청와대가 당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와 관련해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은 점을 놓고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여의도 증권가 '지라시'에 청와대나 혹은 모처의 장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한 일본 기자는 박 대통령이 전 보좌관이었던 정윤회 씨와 같이 있었다고 보도해 곤욕을 치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는 굿판에 참석한 건 아니냐는 의혹 제기도 있었다.
이렇게 설이 파다하고 또 극히 제한된 몇 가지 정보만 나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사실(fact)'을 구성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조심스럽게 '진실'을 구성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 '불면증'을 앓았다
기자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상태와 관련된 중요한 제보를 하나 받았다. 며칠 전, 박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정치인과의 저녁 식사 자리였다.
그는 박 대통령이 '불면증'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었다. 심지어 그 역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는 대통령 측근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불면증 때문에 고생하는데 좋은 의사를 소개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문의도 해왔다. 그는 실제로 몇몇 의사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그 자체로 중요한 비밀이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인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제보를 받고 나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진료한 적이 있는 의료인 여럿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모두 다 박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이유로 확답을 피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잠이 보약"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로 구설에 올랐다.)
불면증과 '세월호 미스터리'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은, 이것이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불면증을 앓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대통령 주치의 또는 최순실 자매와의 친분 때문에 대통령 자문의로 위촉된 게 확실해 보이는 김상만 의사에게 불면증을 해결할 처방을 의뢰했을 가능성이 크다. 알다시피, 불면증에는 수면제(수면 유도제) 같은 의약품이 처방되어야 하고, 일부는 장기 복용 시 부작용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김상만 의사가 대리 처방한 박근혜 대통령의 약 가운데 이른바 '비타민 주사' 같은 수액 주사 외에 향정신성 의약품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상만 의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복용할 수면제(수면 유도제)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에, 복지부의 조사에는 한계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수면제(수면 유도제) 처방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주치의나 의무실장의 관리 밖에서 수면제(수면 유도제)와 같은 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 의사에게 문의한 결과, 불면증을 앓는 환자에게 의사가 처방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약은 흔히 상품명 '스틸녹스'로 알려진 '졸피뎀'이다. 졸피뎀은 다른 약에 비해서 의존성이나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수면제를 먹고 잤다면…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걸 전제로 2014년 4월 16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구성해 보자.
불면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도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다른 일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 밤새 잠을 안 잤을 수도 있다. 애초 4월 16일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밀린 보고서를 탐독했을 수도 있고 <시크릿 가든> 같은 드라마를 몰아서 봤을 수도 있다. 오전에 일정을 처리하고, 낮잠을 청하면 되리라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그날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오전 8시 49분,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10시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첫 보고를 받았고, 오전 10시 15분 또 30분 두 차례에 걸쳐서 구조 지시를 내렸다. 특히 30분에는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세월호는 10시 21분 마지막 생존자를 구하고 나서 사고 101분만인 10시 30분 완전히 침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렇게 세월호가 침몰하고 나서 12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190명이 추가 구조돼 1시 20분께 팽목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잘못된 보고가 그대로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전원 구조" 오보)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이 때 구조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나서, 12시 50분께 최원영 당시 고용복지수석과 기초 연금법 관계로 10분 동안 전화 통화도 했다. 만약 밤새 깨어 있었던 데다 오전 업무까지 처리했다면, 박 대통령은 이 시간에는 견디지 못할 정도의 몸 상태였을 것이다.
만약 최원영 수석과의 통화 이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수면제(졸피뎀)를 한 알 삼키고 세 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면 어떨까? 개인마다 다르지만 졸피뎀 한 알은 세 시간 정도의 효력이 있다. (박 대통령은 수면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량된 졸피뎀(스틸녹스 CR)을 삼켰을 수도 있고, 수면 유지가 잘 되도록 디아제팜 같은 수면 유지제를 같이 먹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안보실과 정무수석실로부터 올라오는 보고는 쌓여 있기만 하고서 전달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잠들어 있었으니 청와대 경호실의 해명대로 외부인이나 병원 차량이 청와대를 방문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그 세 시간 동안 세월호에 갇힌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오후 4시에서 4시 30분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잠에서 깨었을 때는 세상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수면제에 취해서 정신이 멍한 상태였을 테고, 자다 깨서 얼굴 특히 눈 주위도 부었을 것이다. 급하게 준비를 해서 청와대 인근의 세종로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에 5시 15분에 나타날 때까지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되었을 게 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멍한 듯한 표정에 부은 얼굴을 하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드냐" 같은 엉뚱한 질문을 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박근혜 대통령, 잤으면 잤다고 고백하라
이상의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이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제보를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다수 의사의 자문을 얻어 그날의 가능성 있는 행적을 재구성해 본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굿'이나 '성형 시술' 같은 억측에 강하게 반박하면서도, 정작 그날의 행적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수많은 생명이 수장되는 동안 대통령이 자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있겠나?
앞으로 검찰 또 보건복지 당국이 박근혜 대통령이 졸피뎀(수면 유도제), 디아제팜(수면 유지제) 같은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면, 또 그런 약을 박 대통령이 김상만 의사 등을 통해서 입수할 수 있었는지를 확인한다면,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은 예상외로 간단히 풀릴 수 있다.
물론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설사 박근혜 대통령이 수면제에 취해서 자고 있었더라도, 왜 청와대 보좌진은 억지로라도 그를 깨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권위적인 행태가 그런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대통령보다 훨씬 더 권위 있는 '비선 실세'가 자는 대통령을 깨우지 말라고 막기라도 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고백하라.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여럿이 수장될 때, 자고 있었으면 자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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