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기 "삼성 처벌 않고 정권만 바뀌면 뭐하나"

반올림 "삼성이 최순실에게 입금할 무렵, 직업병 교섭 결렬"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 권오현 부회장과 같은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권만 바뀌면 뭐하나. 또 삼성이 다음 정권에 돈을 갖다바쳐서 (차기 정권이) 국민으로부터 쫓겨날 텐데."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를 만들다가 지난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17일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삼성은 그 정부에 엄청난 돈을 갖다 바치고 노동자를 꼼짝 못하게 하려 할 것"이라며 "그 정부는 초기에는 삼성의 달콤한 돈을 받아 쓰겠지만, 중반에는 돈 받은 일이 세상에 알려져 쫓겨나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삼성이 2015년 정유라 씨 승마 훈련비로 185억 원,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204억 원을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업병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직업병' 협상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기 시작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대한승마협회장)이 최순실 씨 일가를 지원한 시점과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삼성이 연루된 정황들을 접하면서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이 가장 놀란 건,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최순실 씨를 만난 시기다. 돈이 전달된 시기가 삼성전자가 직업병 협상을 뒤엎고 사회적 약속을 파기한 채, 심지어 조정 권고안을 무시한 채 은폐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시점과 너무 맞닿는다. 삼성은 어느 시점부터 조정 절차 논의를 지연시켰는데, '바쁘다'는 이유를 댔다. 그때 삼성 관계자들이 왜 그리 바빴는지 이제야 알겠다. 직업병 피해자들이 갖는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황상기 씨와 임자운 변호사, 삼성전자에서 일한 지 4년 만인 지난 2000년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아 시력을 잃고 16년 동안 투병 중인 김미선(36) 씨는 이날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의 주재로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이들은 삼성그룹이 최순실 씨 일가를 지원한 대가로 얻어간 것이 두 가지 있다고 봤다. 하나는 이재용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동원됐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과 관련한 '노사 문제'에 정부가 삼성 측의 손을 들어줬다는 의혹이다. (☞관련 기사 : "청와대·복지부, 국민연금에 '삼성물산 합병 찬성' 압력")
최순실 씨가 소유한 비덱스포츠의 쿠이퍼스 전 사장은 "삼성이 2015년 8월 노사 문제 협력과 연구비 등 정부 지원 약속을 받고, 최순실 측에 280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가 언급한 노사 문제가 '삼성 직업병 문제'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2015년 8월은 삼성이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공익 법인 설립안'을 거부했던 시기다. 삼성이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비덱스포츠(전 코레스포츠)에 돈을 입금한 2015년 9~10월은 삼성전자가 반올림의 반대 속에 '자체 보상위원회'를 발족하고, 조정회의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때다. 물론 삼성 측은 이러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삼성이 입금하고, 고용노동부는 삼성 편만 들어"

삼성 직업병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암과 같은 희귀병에 걸렸다고 반올림에 제보한 사람은 224명이고, 그 중 76명이 젊은 나이에 숨졌다. 2014년 피해자들과 교섭에 나선 삼성은 반올림의 반발 속에 2015년 8월 1000억 원대 공익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마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임자운 변호사는 "삼성이 조정 권고안을 파기하면서 언론에 대고 조성하겠다고 한 1000억 원은 삼성 입에서만 나오고 피해자에게 실제로 지급되지 않았는데, 정유라 씨에게 지급한 돈은 실체가 있는 것 같다"며 "이 사태(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삼성이 피해자처럼 취급되는 게 가장 화가 난다. 삼성은 국정농단의 공범이고, 이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라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가 직업병 문제에서 노골적으로 삼성 편만 들어줬다는 것이다.

"224명 중에 76명이 돌아가셨다. 법원과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보수적으로 피해자를 판단했다. 그럼에도 12명이 직업병으로 인정받았고, 그 중에 7명이 김미선 씨와 고 황유미 씨가 일했던 기흥사업장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중대 재해가 7건 발생한 사업장에서 고용노동부는 특별 감독 한 번 제대로 안 했다. 10년 가까이 피해자들이 싸우는 동안 진상 규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최근 정부가 작성한 '(반도체) 안전 보건 진단 보고서'를 삼성전자가 가지고 있었는데, 법원과 국회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니 삼성이 산재를 입증할 수 있는 '작업 환경 측정' 내용을 삭제해서 국회와 법원에 제출했다. 더 심한 것은 고용노동부가 삼성의 이런 은폐를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방치, 묵인한다는 것이다."

임자운 변호사는 삼성이 공언한 '자체 보상안'에 대해서도 "자체 보상을 받은 분이 120명인데, 어떤 분한테는 삼성이 3000만 원을 제안했다고 하고, 백혈병으로 딸을 잃은 유족한테는 4000만 원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 유족은 합의를 거부했다. 딸을 잃었는데 그 돈으로 합의할 수 있겠나? 120명의 보상금을 다 합쳐도 200억 원이 될까 말까 한다"고 말했다.

"삼성, 최순실한테는 185억 주면서 피해자들한테 왜 그러나"

1997년 20살에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납땜 업무를 하다가 시력을 잃은 김미선 씨는 "제가 기초생활수급자라 생계비 60만 원을 받는데, 재발 방지 주사비로 40만 원을 쓴다"며 "스무 살이 꽃다운 나이잖아요. 최순실한테는 185억 원을 주면서, 피해자들한테는 삼성이 왜 그러는지 솔직히 화가 난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관련 기사 : "삼성, 노동자 피 빨아 박근혜-최순실에게 토했다", 정유라에게 수십억 준 삼성, 故 황유미에겐…)

2007년 딸을 백혈병으로 떠나보내고도 10년째 거리에서 삼성전자와 싸우고 있는 황상기 씨는 "삼성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무마시키기 위해 박근혜 정부, 최순실 씨에게 몇백억 씩 갖다주고, 그 딸에게 10억짜리 말을 사줬다는 것을 보면 말이 안 된다"며 "삼성이 정부에 몇백억 원씩 돈을 갖다주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못 만들게 해서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죽어가는 딸에게 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

황상기 씨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이재용, 권오현 부회장을 처벌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에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상당히 힘들더라도 이재용과 권오현 부회장을 반드시 처벌해서 다음부터는 정경유착이 없도록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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