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한겨레>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 소속 한 위원은 문형표 당시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합병에 찬성하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다. 이 위원은 "복지부 장관한테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위원은 또 자신의 지인이 전화를 걸어 '청와대의 뜻이다. 찬성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지인은 '합병이 부결되면 삼성그룹 승계가 암초에 부딪히고 우리 경제에 중요한 기업에 충격이 올 수 있다. 국가 경제 혼란이 올 수 있으니까 찬성하는 게 옳다'고 청와대의 뜻을 전달했다. 며칠 뒤 또 전화가 와 '청와대 뜻'이라며 비슷한 의견을 전달했다"면서 "(나는) '청와대'를 곧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당시부터, 삼성물산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합병에 찬성했느냐는 의문이 일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순실 씨를 뇌물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제기한 의혹은,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인 최 씨가 삼성으로부터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지원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과, △삼성 경영권 승계의 중요 고리였던 삼성물산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한 것 두 가지를 서로 주고받은 일종의 대가성 거래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만약 이같은 의혹이 사실일 경우, 최 씨가 2000만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노후를 불안정하게 하고 그 대가로 뇌물성 금품을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관련 기사 : "최순실, 국민연금 통해 삼성물산 합병 개입"…진실은?)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의 주주 의결권을 대행하는 전문위 위원이 복지부 장관이며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직간접적 압력을 받았다는 정황은 매우 민감한 파장을 낳을 수 있다.
다만 이날 <한겨레>에 증언을 한 인물이 소속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는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직접적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일이 있을 때, 민감하거나 전문적인 결정을 위임받아 하는 곳이 이 위원회다. 그러나 당시 국민연금은 전문위원회에 의결권을 위임하지 않고, 직접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원회' 회의에서 찬성을 의결했다.
그럼에도 이날 보도가 주목되는 이유는 '복지부·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과연 이 전문위 위원 한 사람에게만 압력을 행사했겠느냐'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앞서 <프레시안>은 "최순실 씨 등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의사 결정에 개입하려 했다면, 그 '고리'는 보건복지부나 국민연금 고위층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복지부 장관이었고, 현재 국민연금 이사장인 문형표 이사장이 '합병에 찬성하라'는 취지의 전화를 했다는 것은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에 박근혜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정황이 된다.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한 듯 국민연금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문형표 이사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에게 찬성을 종용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 해당 부서로부터 현안 사항으로 보고받았으며, 전 직장 동료였던 이 전문위원에게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통화한 바는 있으나 찬성하라고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을 뒤집으면 문 이사장도 전문위원과의 통화 사실 자체는 인정한 셈이다. 게다가 그는 해명에서 "당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닌 (내부) '투자위원회'만 거쳐 결정을 내렸다는 사항도 사후적으로 보고받았다"고 했다. "(투자위원회)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한 바 없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해명이 됐다. 당시 복지부 장관이었던 그가, 삼성물산 합병 관련 결정에서 전문위가 배제됐다는 점을 몰랐던 상태에서 복지부 산하 전문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안 관련 대화를 나눴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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