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관련 민심 이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일각에서 하야 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당대표 사퇴 압박에 시달리는 여당 대표가 28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때 14% 수준으로 폭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한 날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날 오후 5시경 기자들에게 긴급 기자회견을 통보하고 박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1시간 반가량 '독대'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청와대 참모·내각 쇄신과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조속한 송환 및 수사 진행을 재차 건의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오늘 청와대로 대통령을 찾아가 만나 뵙고 정치권과 국민의 여러 가지 분위기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왔다"면서 "특히 청와대가 최고위원회 제안(인적 쇄신)을 심사숙고하겠다고 했는데 그 부분도 워낙 엄중한 시기인 만큼 빨리 추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우리 당은 비상시국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며 "인적 쇄신을 요구한 우리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당 지도부 전원은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이 대표는 "저는 이 사안이 언론에 본격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줄곧 많은 원로와 각계 인사를 오늘 점심 때까지 찾아뵈었다"면서 "각계 인사의 고견을 청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검찰 수사 형식이 뭐가 됐든 당사자가 빨리 들어와서, 특검이 시간이 걸린다면 지금 하고 있는 검찰 수사를 포함해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실천해달라는 건의를 드리고 왔다"고 거듭 말했다.
이 대표는 본인의 할 말만 마친 후 질문이 쏟아짐에도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박 대통령의 '녹화 사과'처럼 '질문 없는 기자회견'이었던 셈이다. 이 대표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말 안해"라고 말하는 등 답변을 거부하다가 "대통령은 주로 말을 듣는 편이셨고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늦었다. 대통령의 사과 이후 여당 대표와 만나는데 3일이 걸렸다. 대통령의 사과 자체가 논란이 된 후 새누리당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미 사태 수습의 골든타임을 넘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이미 청와대와 박 대통령에게 사과 후속 조치를 수차례 건의했다. 여기에 '이 대표의 인적 쇄신 건의, 박 대통령의 고심'이라는 모양새를 뒤늦게 보탠 정도다.
이 대표는 현재 당 안팎에서 사퇴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박 대통령 '비서 출신'으로 집권 여당 대표를 맡아 정국을 이끌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질 부재론'까지 나온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나도 연설문 고칠 때 친구 의견 묻는다'는 발언을 한 이 대표에 대해 "그런 인식을 가진 분들이 대통령을 보좌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하며 지도부 사퇴를 요구했다. 정 의원은 "이정현 대표 사퇴 후 비대위가 아니라 비비대위라도 꾸려서라도 이 국면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극복해야 한다"고도 했다.
청와대는 입을 다물고 있다. 심지어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을 만난다는 사실 조차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이날 박 대통령은 예정된 오찬 일정을 취소했다. 오찬 일정이 취소되면서 "대통령의 추가 사과라든가 하는 다른 일정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 나왔지만 정연국 대변인은 오찬 취소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 채 "알려드릴 일이 있으면 알리겠다"고 말했었다. 청와대의 이같은 '불통'이 갖은 억측을 낳게 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최순실 씨 귀국 등을 앞두고 청와대와 여당이 '말 맞추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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