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강양구의 親book] <빼앗긴 숨>

여러분,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기억하시죠?

'안방의 세월호'로 불렸습니다. 21세기 한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 보건 재해입니다. 옥시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의 제품이 인체에 치명적으로 유해한 성분을 지닌 채 유통됐습니다. 자녀 건강을 생각하고 기업의 윤리를 믿은 여러 국민이 가습기 청소를 위해 이 제품을 사용하다 큰 화를 입었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현재까지 중증 폐 질환 등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자가 25일 현재 4893명에 달합니다. 사망자는 1000명을 넘어섰습니다(1012명). 그저 가족을 위했던 순진한 사람들이 부도덕한 기업의 무책임함에 무참히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절대 잊어선 안 될 참사입니다.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생활용품으로 인한 환경 보건 사건이고, 기업의 부도덕성이 너무나도 심각했으며, 정부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엔은 이 참사를 영구히 기억하기 위해 관련 기념물을 만들 것도 권고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이 큰 환경 참사이기 때문입니다.

'강양구의 친북'은 이 사건의 처음부터 현재까지를 정리한 <빼앗긴 숨>(안종주 지음, 한울 펴냄)을 통해 이 사건을 재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적잖은 분이 이 사건을 그저 지나간 일 정도로 여기시겠지만, 아직도 이 참사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24일 마포구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빼앗긴 숨>의 저자 안종주 박사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의 강찬호 대표와 함께 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 <빼앗긴 숨>을 쓴 안종주 박사(왼쪽)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강찬호 대표(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아이 위한 부모들 짓밟은 가습기 살균제

강양구 : 가습기 살균제 참사, 모두 알고 계시죠? 늦게나마 여러분의 노력으로 국회 국정 조사도 하고, 청문회도 열리고, 해당 기업 관계자 재판도 진행 중입니다. 이제 많은 분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어느 정도 일단락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진행형입니다. 오늘 강양구의 친북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오랫동안 추적해온 안종주 박사가 최근에 펴낸 <빼앗긴 숨>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전히 고통 받는 피해자의 현재를 재조명하고, 남은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자리에 안종주 박사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가피모)의 강찬호 대표를 모셨습니다. 안종주 박사께서 이 책을 서둘러 내셨죠?

안종주 : 아직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2011년 5월경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 <프레시안>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도 썼고요. 올해(2016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관한 시민의 관심이 많아졌죠.

그런데 정작 이 참사의 전말을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백서가 지난해 나오긴 했지만, 보통 사람이 읽을 만한 책은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균>(소재원 지음, 새잎 펴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만, 이 참사의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추적한 논픽션은 없었어요.

그래서 6월 초부터 일반 시민이 읽을 만한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두 달 가까이 집중적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강양구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식이 매년 8월 31일에 열립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죠?

안종주 : 2011년 5월에 특히 산모와 어린아이가 호흡기 중증 질환으로 이유 없이 죽었습니다. 의사들은 처음에는 바이러스 질병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죠. 결국 질병관리본부가 역학 조사에 나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조사 결과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는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환경성 질환일 수 있다고 본 거죠.

학자들이 일일이 피해 입은 가정을 찾아다니며 조사했습니다. 살균제를 사용한 집의 산모나 유아 사망률이 사용하지 않은 집의 50배 정도 된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가 같은 해 8월 31일 ‘원인 미상의 중증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역학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추모식이 이날 열리는 이유죠.

강양구 : 강찬호 대표께서도 이 문제로 고통 받으셨죠?

강찬호 :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기가 꺼려집니다만, 이 책의 발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2011년 6월 15일, 아이를 입원시켰습니다. 당시 아이가 다섯 살이었죠. 피해자들의 경험을 보면 처음은 대개 동일합니다. 병원 입원 전에는 감기 증세 때문에 동네 병원을 계속 찾아갑니다. 나중에 원인을 알고 나서 이런 일도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고 후회하죠. 가습기 살균제에 더해서 도움이 전혀 안 되는 많은 약물에도 아이를 노출시켰으니까요.

결국 제 아이도 증상이 심해져서 한 달 정도 입원했어요. 운 좋게 호전했습니다. 물론 '회복했다'는 말이 완쾌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 나빠지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죠. 간호사였던 아내가 2년을 휴직하고 아이 돌보는 데만 전념했습니다. 상태를 완화하고자 고농도 스테로이드제를 계속 사용했는데, 퇴원 이후에는 그 후유증을 완화하느라 고생했고요.

어쨌든 아이가 살아남아서 저희는 지금도 가족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우리가 쉽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지만,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이 다 다릅니다. 방금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그 가운데서도 굉장히 운이 좋은 편입니다.

강양구 :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아셨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강찬호 : 사실 지금도 실감나지 않아요. 이 문제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가해자 기업과 싸우고 있지만요.

차라리 몰랐으면 괜찮았을 텐데, 알고 나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화학 물질을 애초 기피하는 편에 가까웠어요. 귀한 딸이라고 아이가 어려서부터 비싸도 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유기농 먹을거리만 사서 먹였어요. 아내도 신중해서 웬만한 제품은 시중에서 구입해 쓰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는 '세퓨'예요. 덴마크에서 원료를 수입해 인터넷을 통해서 젊은 엄마를 타깃으로 판매하는 제품이었어요. 이것도 처음에는 못 미더워서 안 썼어요. 그런데 동네 친환경 상품 매장에서 이 제품을 판매한다고 해서, 성분도 친환경 물질이겠거니 생각한 거죠. 이 제품이 가장 독성이 강한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판명됐죠.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올해 본격적으로 여론화하기 전까지 아내와 이 얘기를 안 했습니다. 지난 4년 6개월 동안 우리 가족에게 이 문제는 금기였죠. 그런데 올해 우연한 계기로 아내가 이 제품을 산 과정을 이야기하는 걸 들어서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따지고 따졌는데도 결국 참사를 피해가지 못했죠.

▲ 독성 물질인 메틸이소티아졸리논, 폴리헥사메틸린구아니딘, 염화에톡시구아니딘이 들어간 살균 제품. ⓒ프레시안

5년 지나도록 피해자 실태 파악도 완료 못한 정부

강양구 : 이 사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보면 될까요?

안종주 : 2011년 이 문제가 터지고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해결로 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더딥니다. 피해자 가족뿐만 아니라, 전문가나 환경 단체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대통령 가족이나 장관 가족 가운데 피해자가 나왔더라도 이렇게 사건 해결 속도가 느리겠느냐는 생각마저 들어요. 사실 지난 5년간 이 문제를 방치하다시피 했거든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판정된 사람이 5000명이 넘습니다. 그 중 사망 신고자만 1000명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가 빙산의 일각입니다. 제가 아는 여러분 가운데 중증 피해를 입지 않아 신고하지 않았다는 분이 여럿입니다. 그러니 알든 모르든 실제 피해자 수는 훨씬 많을 겁니다.

일단 피해 신고를 하면, 판정을 받는데 시간이 많이 듭니다. 건강 검진도 받아야 하고, CT 촬영도 해야 하고, 관련 기록도 다 검토해야 합니다. 중증이 아닌 경우에는 지난 시간 사이에 몸이 회복됐으니 이런 과정 자체가 모두 귀찮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은 보상금 같은 것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러면 지금까지 신고한 피해자는 제대로 파악이 되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아직 정부가 (신고한) 전체 피해자의 3분의 1도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2020년이 되어도 피해자 조사가 안 끝납니다. 다행히 국회 국정 조사도 이뤄지고, 언론도 관심을 가지면서 정부가 시간을 조금 당기기로 했어요. 그래봐야 1, 2년 정도 당긴 수준입니다.

강양구 : 맞습니다. 정부가 사후 처리를 제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을 읽으면서 답답했습니다.

안종주 : 처음부터 잘못되었죠.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면,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 했어요.

강양구 : 공영 방송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해당 시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시민 가운데 이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 분은 신고하라'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찾았어야죠. 신고한 피해자가 있다면, 그들이 입은 피해가 과연 가습기 살균제 때문인지도 정부가 나서서 입증하고요.

안종주 : 맞습니다. 지금은 피해자가 본인이 받은 피해를 자신이 입증하고, 이를 또 개인적으로 기업에 소송하라는 식입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피해자들이 정부에도 민·형사상 책임을 물었어요. 1심에서는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2심, 3심이 남았습니다.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져야 합니다. 이 정도로 독성이 강한 제품이 시중에 나왔다면, 정부가 사전에 제품 안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거죠. 사전에 꼼꼼한 제도를 만들지 않은 것 역시 정부의 책임이고요.

일본의 경우, 석면 사태나 미나마타병 사태에서 정부의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났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이라도, 정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어요.

'가습기 살균제 병'으로 불러야

강양구 :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수사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관심이 옥시레킷벤키저사에 집중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옥시 제품 피해자가 가장 많습니다만, 이 때문인지 SK케미칼이나 롯데마트, 이마트, 애경과 같은 국내 대기업의 책임에는 주의가 집중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종주 :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면 "한 놈만 팬다"는 말이 나오잖아요? 아무래도 거론되는 타깃이 많으면 초점이 흐려져서인지 옥시에 집중된 면이 있습니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 제품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게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세퓨를 비롯해 SK케미칼, 롯데마트, 신세계(이마트)와 같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다 얽혀 있습니다. 이들 국내 대기업은 사실상 옥시 뒤로 숨어버렸죠. SK케미칼을 찾아가 시위도 하고, 국정 감사에서도 집중했습니다만, 이미 국민에게 옥시가 각인된 마당이라 조금 어렵습니다.

강양구 : 그래서 이 사건도 '옥시 사태'로 이야기될 정도인데, 이건 잘못됐죠. '가습기 살균제 사태' 혹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같은 이름이 맞죠.

안종주 : 가습기 살균제의 부작용을 언급할 때도 주의가 필요해요. 가습기 살균제가 일으킨 치명적인 병은 폐 질환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폐 질환'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의 부작용은 폐 질환만이 아닙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간 화학물질은 크게 이소티아졸린 계열과 구나이딘 계열입니다. 두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작용이 각기 다릅니다.

각각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가 필요해요. 실제로 과학자가 연구를 진행 중이고요. 지금은 거의 모든 전문가가 가습기 살균제가 폐뿐만 아니라 피부에도 영향을 주고 천식, 비염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미나마타병처럼 이번 사태도 '가습기 살균제 병'으로 부르는 게 맞다고 봅니다.

강양구 :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강찬호 : 피해자 각각의 이해관계가 복잡합니다. 사용한 제품도 다양하고, 판매사도 다양하고, 정부가 피해 등급까지 나눴기에 피해자 유형이 아주 많죠. 현재는 민간 차원에서 (중증인) 1, 2단계 피해자 배상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수는 옥시에 배상 신청만 해놓고 대기 중인 상황입니다.

저는 피해 등급에 구분 없이 처음부터 피해자 전체 차원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1, 2단계 피해자 문제뿐만 아니라, 여전히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3, 4단계 피해자의 배상 문제도 중요합니다. 이들이 전체 피해자의 60% 이상입니다. 많이 다쳤든 적게 다쳤든,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실은 똑같으니까요.

이번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피해 등급의 구분 없이 전체적인 피해 보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재 상황이 그렇지 못합니다.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초기에 가해 기업이 옥시 뒤에 숨어버린 것처럼, 지금은 가해자 전체가 정부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정부가 피해 1, 2단계만 인정해주니 기업들은 신나죠.

정부의 대응이 마음에 안 드는 이유입니다. 지난 5년에 걸쳐 정부가 피해자 보상한다면서 언급한 내용이 사실은 1, 2단계 피해자의 장례비, 의료비 일부 지원 정도였습니다. 올해 들어 다시 여론화되니 정부가 추가로 지원하겠다며 발표한 게 요양비 보조 정도입니다. 당연히 줘야하는 걸 홍보한 정도에 불과해요.

그런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얼마나 말 못할 피해가 많겠어요? 저희만 해도 아이를 보살피느라 아내가 2년간 직업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피해는 어떻게 보상을 받나요?

강양구 : 피해자나 가족 모두 많이 답답하시겠네요.

강찬호 : 피해 보상을 신청한 분들이 "이 문제가 도대체 언제 해결되느냐"며 저한테 물어보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주 힘듭니다. 대답을 해드릴 게 없으니까요. 우리가 피해자 단체라고 합니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많이 답답해요.

▲ 지난 8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 규명과 피해 구제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 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옥시 측 관계자들이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기업 부도덕성도 처벌해야

강양구 : <빼앗긴 숨>을 읽던 때가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 7 리콜 사태가 한창일 때였어요. 언론이 집중 조명하고, 전 세계적으로 리콜이 진행됐습니다. 일련의 상황이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졌습니다. 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이처럼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종주 : 위기를 맞았을 때 이를 잘 극복하고 기회로 삼는 국가나 기업이 있는 반면, 재난을 오히려 키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982년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사태 대처를 들 만합니다. 아시다시피 타이레놀이 세계적으로 큰 매출을 올리는 의약품입니다. 이 약에 누군가가 청산가리를 집어넣었어요. 이 때문에 미국에서 5명이 사망했습니다. 사건을 확인하고 이 회사가 미국 전체에 뿌려진 타이레놀을 리콜했습니다. 요즘 돈으로는 1조 원 어치 정도 되는 분량입니다.

실제로 리콜 후에 수거한 약을 전수 조사하니, 이 가운데도 청산가리가 포함된 약이 나왔습니다. 이 기업이 순간의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지 않았다면 일이 더 커질 수 있었겠죠. 그렇다면, 이 기업은 감당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존슨앤존슨은 즉시 리콜하고, CEO가 사과하면서 훌륭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기에 다시 소비자의 신뢰를 얻었죠.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경우 이와 정반대죠. 대표 기업 옥시레킷벤키저를 보면, 사건 발생 5년이 지나서야 신문에 사과 광고를 냈습니다. 우리 정부는 아직도 국민에게 이 문제에 관해 일절 자신의 잘못을 언급하지 않고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는 데는 이런 태도 차이도 있습니다.

강양구 : 2011년 8월 31일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 원인임이 밝혀진 후에도, 한동안 시중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됐습니다. 황당한 일이죠. 해당 뉴스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보통 사람이라면 가습기 살균제의 부작용이 알려지고 나서도 피해를 입었을 수 있잖아요.

안종주 : 많지는 않습니다만, 실제로 2011년 8월 31일 이후에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가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습니다.

강찬호 : 그 경우는 정부에 별도로 손해 배상 청구를 해야겠네요.

안종주 : 미국에는 흔히 말하는 징벌적 배상제가 있습니다. 기업이 충분히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 했을 경우에 큰 배상금을 물립니다. 이렇게 해야만 제2의, 제3의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이런 제도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옥시레킷벤키저를 보십시오. 정부가 나서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임을 밝혀냈음에도, 그 뒤 재판에서 김앤장을 통해 자사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나왔죠. 나중에는 소비자들이 알려준 용량을 지키지 않고 제품을 잘못 썼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죠.

자칫하면 기업에 큰 타격을 입으리라는 생각에 국내외 다양한 연구소에 제품 실험을 의뢰했습니다. 실험해 보니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가 위험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러니 해당 자료를 다 숨겼죠. 문제없다는 결과가 나온 일부 실험 결과만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미국이었다면 심각한 범죄로 처벌받고 기업이 망했겠죠.

의료 신고 체계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강양구 : <빼앗긴 숨>을 올해 여름 탈고하면서 이 사건을 복기하셨어요. 특히 안타까운 순간은 언제였나요?

안종주 : 2006년입니다. 2006년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 등 몇몇 병원에서 어린이들이 갑자기 호흡 곤란으로 병원을 찾은 후, 죽거나 장기 투병하는 사례가 집중 보고됐습니다. 물론 더 찾아보니 1990년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만, 2006년 들어 집중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의 소아과 의사 몇몇이 이런 증상을 잘 확인했어요. 이 의사들이 원인 모를 병의 원인을 밝히려 하셨죠. 하지만 원인 파악에 실패했어요. 이분들은 계속 바이러스 가능성만 고려했습니다. 2008년에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에 분석 요청을 했는데, 이때도 바이러스 분석만 요청했습니다.

이분들이 초기에 아이들의 상태에 공통된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건 참 잘 하셨는데, 이후에 이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신 대목이 아쉽습니다. 이때 언론에 알리거나, 정부에 원인 파악을 위해 역학 조사 신청을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랬다면 그 당시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겠죠.

강양구 : 그러게요. 그때 의사들이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원인 모를 괴질이 있다는 점이 공론화만 됐더라도 좋았을 텐데요.

안종주 : 맞습니다. 이때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2011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산모들이 서울아산병원 호흡기 내과에 연이어 입원했습니다. 워낙 환자 상태가 중하니 산부인과가 아니라 중환자실에서 분만하고, 산모는 사망하는 사태도 일어났습니다.

호흡기 내과 교수들이 덜컥 겁이 났죠. 바이러스면 정말 큰일이거든요. 그래서 2011년 4월에 이 병원 의사가 전화로 질병관리본부에 연락해 괴질 원인 파악을 요청했습니다. 제가 1980년 초부터 질병관리본부를 출입했습니다. 이런 일(병원이 질병관리본부에 원인 파악을 요청한 일)은 정말로 드문 사례입니다.

강양구 : 당시 담당 의사가 '이례적으로' 질병관리본부에 즉각 연락하지 않았다면, 2011년에도 이 문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요.

안종주 : 최소 1, 2년은 더 늦춰졌겠죠. 그랬다면 피해자는 지금보다 훨씬 늘어났을 겁니다.

미나마타병이 일본에서 1950년대에 생겼습니다. 이 병을 일으킨 신일본질소비료공장이 소유한 병원의 병원장이 이상한 질환이 한 마을에만 집중되는 데다, 특히 어린이에게 집중되니 보통 일이 아니라 여깁니다. 집단 식중독이 아닐까 겁나서 바로 보건소에 신고하고 역학조사를 의뢰했죠.

이에 따라 결국 민관이 협력해 원인을 밝혀냈습니다. 그만큼 이른 신고와 신속한 대처가 중요합니다. 내 힘으로 해결 안 되는 일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 함께 해결해야죠.

강찬호 : 저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의사가 괴질을 조사했는데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를 정부 기관 같은 곳에 당연히 알려야지, 그대로 덮어버리다니요. 이런 상황에 관한 매뉴얼이 없나요?

안종주 : 감염병은 1군, 2군, 3군으로 분류해 신고 체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일단 감염병이 아니잖아요. 저도 이 부분이 궁금해서 의사들에게 여러 차례 물어봤습니다.

이유가 있더군요. 일단 신고를 하면 보건소나 정부에서 나와서 여러 가지를 조사한답니다. 진료 시간을 뺏기고 병원 이미지도 나빠지니, 잘 하지 않으려는 거예요. 지난 메르스 사태 때도 우리가 이런 일을 이미 봤죠. 이제는 우리 의료계가 신고 관련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이 없다

강양구 : 강찬호 대표께서는 지난 수년간 피해자 모임 대표로 활동하시면서 특히 답답하다고 생각하신 일이 있나요?

강찬호 : 최근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꼭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도 우리 사회의 병폐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점이 슬프죠.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보면 우리 사회가 정말로 엉성합니다. 후진국형 사고잖아요.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 한국에서 자꾸 벌어지니 기가 막혀요.

강양구 :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두고 '안방의 세월호'라고들 하죠.

강찬호 : 네. 여전히 한국 사회에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그런데 굴지의 대기업이나 정부를 만나면 거대한 벽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거든요. 문제 해결을 할 능력이 없으면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같은 약자에게만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여요.

예전에 덴마크 대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태도를 정말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합니다. 세퓨라는 제품을 수출한 덴마크 현지 회사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덴마크 정부가 폐업하도록 했거든요. 그런데도 피해자가 현지에 가서 소송을 원한다면 대사가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라도 소개해서 도움을 주겠다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완전히 피해자 입장에서 저희를 대했죠.

적어도 공무원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잖아요. 산 넘어 산이죠. 큰 비극이 닥쳤을 때 피해자나, 해당 사태를 지켜본 많은 분이 무심해서, 끈질기지 않아서 그런 일을 잊는 게 아닙니다. 거대한 벽을 느끼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답답합니다.

강양구 : 그런데 정말로 피해자 편이 되어주는 공무원을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습니까?

강찬호 : 없습니다. 공무원도, 언론인도 없어요. 이 사태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응원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강양구 :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안종주 : 공무원이든 언론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만, 현장을 잘 알면 피해자와 함께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현장을 모르면 그렇지 않죠.

제가 2011년부터 이 문제를 지켜봤습니다만, 정말 깊이 발 담은 건 2013년부터입니다. 이때 두 달간 전국의 피해 가정을 직접 다니면서 피해자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이때 백 수십 명을 만났죠. 그들의 고통을 곁에서 들으면서 같이 울기도 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이들과 함께 할 이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다음부터 피해자와 시위에도 참석하고, 국정 조사에도 참여하고, 책까지 내게 됐죠. 언론인도, 공무원도 피해자를 많이 만났다면 태도가 달라졌을 텐데요.

강양구 : 안종주 박사는 존경하는 언론계 선배이기도 하시죠. 예전에는 전문가 정체성이 강한 분이셨어요.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접하면서 활동가 정체성이 강해지셨어요. <빼앗긴 숨>을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안종주 : 맞습니다. 피해자와 함께하면서 저도 그렇게 변했습니다.

강찬호 : 이 사건이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이슈가 참 많습니다. 피해자 문제만 하더라도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점검하는 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안종주 : 가습기 살균제의 주된 피해자가 어린이와 산모입니다. 더러는 가족 여러 명이 동시에 죽는 식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피해자 어린이는 평생 이 후유증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 사태는 1, 2년 만에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도 관심을 가져야 할 사태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 위한 특별법 제정해야

▲ <빼앗긴 숨>(안종주 지음, 한울 펴냄). ⓒ프레시안
강양구 : 일본에는 '미나마타학'이 있다고 하더군요. 미나마타병과 관련한 여러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죠.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가습기 살균제학'이 생길 만큼 한국 사회가 깊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인데,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안종주 : 강찬호 대표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만, 정부와 기업의 구제가 전체 피해자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피해자 전체를 보듬을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현재는 정부가 폐 질환만 가습기 살균제 후유증으로 인정하는데, 인정 기준을 이른 시일 내에 변경해 한 명이라도 억울한 이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강찬호 : 지금도 피해자들이 국회와 새누리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합니다. 저희가 20대 국회 시작 전 각 당 원내대표를 만나 기업과 정부의 사과, 그리고 가습기 문제 해결책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특별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국정 조사는 3개월로 종료돼버렸습니다.

특위를 연장해서라도 재발 방지 문제나 피해자 대책을 담은 피해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새누리당이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정 감사가 끝났기에 저희가 이번 주에 다시금 원내대표단 면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위 연장 요구를 정치권이 받아들여 이 문제 해결책을 제도화하는 게 저희에겐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강양구 : 오늘 강양구의 친북은 안종주 박사의 <빼앗긴 숨>을 통해서 아직 끝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집중적으로 다뤄봤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한국이 살만한 나라인지, 희망이 없는 나라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양구의 친북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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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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