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사라지자, 사람이 죽기 시작했다!

[독서통] <슬픈 미나마타>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진행하는 '독서통'이 한 달의 휴지기를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독서통은 매주 화요일 방송되는 '지식공방'의 한 순서로 진행됩니다. 지식공방은 매주 시사 이슈와 관련된 특정 주제를 선정해, 해당 주제를 다룬 책을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키워가는 자리입니다. 이에 따라 독서통은 신간을 주로 소개했던 예전과 달리, 신간과 구간을 가리지 않고 좋은 책을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이번에 독서통이 주목한 시사 이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입니다. 기업의 탐욕이 원인을 제공하고, 국가가 자기 역할을 못했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와도 겹칩니다. 사실상 각자도생해야 했던 1년 전 메르스 사태의 경험도 떠오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이 문제를 짚어보고자 이번에 같이 읽어볼 책은 바로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달팽이 펴냄)입니다.

이시무레 미치코의 <슬픈 미나마타>는 이타이이타이(いたいいたい)병과 함께 일본 현대사의 대표적인 공해병으로,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미나마타병을 다룬 걸작입니다. 국내에서는 10년 전인 2007년 출간되었습니다. 눈 밝은 일부 독자를 제외하고 사람들에게 잊힌 책이죠. 독서통이 이 걸작을 다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미나마타병은 1956년 구마모토(熊本)현 미나마타 시 주민 상당수가 유기수은 중독으로 사망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피해로 고통을 겪은 재해입니다. 바다에 방류된 유기수은을 체내에 축적한 어패류를 먹은 주민 상당수가 중추신경계 피해를 입어 사지 마비, 운동 장애, 언어 장애 등의 후유증을 앓았고, 많은 이가 사망했습니다.

미나마타의 평범한 주민이었던 이시무레 미치코는 피해자의 고통과 미나미타병이 일어난 구조를 추적해 이 책으로 참혹한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서양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이 있다면 동양에 이시무레 미치코의 <슬픈 미나마타>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시무레 미치코는 미나마타병을 통해서 근대의 병폐를 지적하죠.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 기자 출신으로 <프레시안>에도 여러 차례 좋은 글을 실은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이 23일 서울 마포구 시사통 스튜디오에 나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래는 전문입니다.


▲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프레시안(김봉규)

평범한 주부의 역작 <슬픈 미나마타>

김종배 : 한 권의 책을 골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서통 시간입니다.

강양구 : 독서통이 새 단장을 하면서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예전에 독서통은 신간 중심으로 책을 골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신간과 구간을 가리지 않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 가운데 정말 좋은 책, 지금 상황에서 꼭 읽어봐야 할 책을 선정해서 소개할 생각입니다.

김종배 : 정말 엄선하고 엄선한 책이란 말이죠? 그럼, 개편 첫 독서통이 다룰 책은 무엇이죠?

강양구 : 10년 전인 지난 2007년에 나온 책입니다. 사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찾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어요. 대형 서점 몇 곳을 돌아다녔는데 그렇고 그런 신간만 가득하고, 정작 이렇게 좋은 책의 재고는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출판사 사장님께 문의를 드렸더니, 그나마 온라인 서점에서는 아직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책이 소수의 눈 밝은 독자를 제외한 대다수에게 외면을 받았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우리가 같이 읽고 얘기할 책은 <슬픈 미나마타>입니다.

김종배 : 여러분 미나마타병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교과서에 나오죠. 이타이이타이병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 공해병으로 꼽힙니다.

강양구 : 이 책의 원제는 '고해정토(苦海淨土)'입니다. '고난의 바다에서 극락을 찾다'는 뜻이죠. 저는 '슬픈 미나마타'라는 제목도 좋습니다만, 이 책이 처음 나올 때는 원제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셨던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슬픈 미나마타>를 읽을 때, 원제인 고해정토의 의미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김종배 : 오늘 이 책을 함께 이야기할 초대 손님도 소개해 주시죠.

강양구 : 안종주 박사(사회안전소통센터장)께서 스튜디오에 나오셨습니다. 아마도 보건복지 이슈에 관심이 많은 독자께서는 <한겨레>의 '보건복지 전문기자 안종주'를 떠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 네, 바로 그분입니다.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대표적 직업병 스캔들인 원진레이온 사태를 특종 보도하셨죠.

현업을 떠나신 뒤에도 보건학 박사로서 석면 추방 운동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큰 논란이 되는데, 안종주 박사께서는 일찍부터 이 사건의 피해 상황을 추적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해오셨어요. <프레시안> 등을 통해서 수십 편의 글로 이번 사건을 고발하셨고요.

이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보건복지부에서 펴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백서>의 총괄편집인도 지내셨습니다. 책도 한 권 있으시죠?

안종주 : 제가 <프레시안>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비롯해 석면 사태, 삼성 백혈병 사태, 의료 사고 등을 연재했습니다. (☞관련 기사 : 안종주의 위험 사회) 이 내용을 바탕으로 <위험 증폭 사회>(궁리 펴냄, 2012년)라는 책을 냈습니다. 한국은 위험 사회로도 모자란, 위험을 키우는 사회라는 의미를 담았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대표적 예입니다. 우리 사회가 조기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수많은 피해자가 큰 고통을 받진 않았을 겁니다.

김종배 : 이제 <슬픈 미나마타>에 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죠. 일본에서는 1969년에 나왔죠?

강양구 :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서양에 <침묵의 봄>이 있다면, 동양에는 <슬픈 미나마타>가 있다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동아시아출판인회의 지음, 한길사 펴냄, 2010년)이라는 책이 있어요. 동아시아 출판인들이 한국, 중국, 타이완, 홍콩, 일본 등에서 출간된 책 가운데 지금 동아시아를 움직이는 책 100권을 선정한 기록물입니다. <슬픈 미나마타>가 100권 가운데 한 권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100권 중에 저자가 여성인 책이 딱 세 권인데, <슬픈 미나마타>가 역시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전체 저자 가운데 대학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대학 교수도 아닌 저자의 책이 딱 두 권입니다. 하나는 <백범일지>의 백범 김구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슬픈 미나마타>의 이시무레 미치코입니다.

김종배 :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저자 소개를 더해 주시죠.

강양구 : <슬픈 미나마타>의 저자 이시무레 미치코는 미나마타병이 발병한 195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미나마타에서 돼지를 치는 20대 후반의 가정주부였어요. 이 책에서도 그는 '새댁'으로 불리곤 합니다. 옹색한 살림을 꾸려가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시를 썼죠. 그는 그저 고향에서 일어난 끔찍한 실상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슬픈 미나마타>라는 걸작입니다.

필생의 취재가 낳은 소설?

김종배 : 애초 <슬픈 미나마타>의 초고를 연재한 잡지 편집자가 이 책 뒤에 실린 해설에서 "이 책은 취재 기록이 아니라 사소설"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무릎을 쳤어요.

강양구 : 책을 읽은 분은 아시겠지만, 미나마타병에 걸리면 중추신경계가 마비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저자가 피해자의 증언을 듣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책에 보면 희생자의 이야기가 규슈(九州) 남부 지방의 구수한 사투리로 생생히 묘사됩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내면 감정까지도 직접 들여다본 것처럼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오죽하면 책이 나오고 나서 이시무레 미치코는 작가가 아니라 무당이라는 소문까지 돌았겠어요. 철저한 취재뿐만 아니라 대담한 해석과 문학적 상상력이 덧붙여진 결과입니다. 이 책을 통상의 르포르타주로 규정하기 어려운 점이죠. 사소설이라는 언급은 그래서 나왔습니다.

김종배 : 작가가 지어냈다는 거잖아요? 르포르타주는 최대한 건조하게 사실 중심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슬픈 미나마타>는 아닙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안종주 : 저자가 피해자와 한 마음이 되어서, 피해자의 경험을 독자가 최대한 생생히 느끼도록 한다면 그런 접근도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이 책에 소개된 피해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저자가 상상으로 지어낸 허구가 아니라, 저자가 오랜 기간 취재해 얻은 사실을 자연스럽게 풀어낸 내용이기도 하니까요. 오히려 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취지로 이 책을 보면 어떨까요?

강양구 : <슬픈 미나마타>가 나오고 나서 여러 논평이 나왔습니다. 흔히 우리는 소설이나 시가 아닌 문학 작품을 논픽션으로 분류하죠.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얘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어떤가요? 어떤 작가가 허구적 장치를 동원해서 실제로 있었던 사태의 진실을 훨씬 더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면, 그 작품의 장르는 뭘까요?

이런 사정 탓에 이 책은 문학사에서도 기념비적 작품의 하나로 꼽힙니다.

김종배 : 기록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나서 판단하시면 더 좋겠습니다. 이 책은 시민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감시 주체가 되고, 기록하는 지금 시대에 더 큰 의미를 가지리라 봅니다. 1인 저널리즘, 1인 미디어 시대에 '기록자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중요한 질문에 이 책이 한 본보기를 보여주거든요.

강양구 : 반복됩니다만, 두 가지만 첨언하고 싶습니다. 만약 저자가 미나마타병에 관심이 있어서 도쿄에서 온 기자나 작가였다면 이런 기록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으리라고 봅니다. 저자가 미나마타에 뿌리를 박은 사람이었기에, 또 피해자와 평생 함께 산 이웃이었기에 이처럼 과감한 묘사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이 책만 내고 사건에서 빠진 게 아니에요. 이 책을 내서 유명해진 다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나마타병 피해자를 대변하는 활동을 합니다. 또 이 책에 이어서 <신들의 마을>(서은혜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하늘 물고기> 등의 책도 펴냈죠. 이 책들의 개정판이 2004년에 최종 완성되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 20대 후반이었던 저자가 7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된 시점이었죠. 그러니까 무려 50년에 걸쳐서 미나마타병을 추적하신 거예요. 저자의 노고에 새삼 머리가 숙여지죠.

▲ 미나마타병에 걸린 자녀를 안은 주민. ⓒmagnumphotos.com

쥐떼가 점령한 마을

김종배 : 이제 책 내용으로 들어가 봅시다. 일단 미나마타병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죠.

안종주 : 올해가 미나마타병 발발 60주년입니다. 미나마타병이 발병한 미나마타 시가 어딘지 궁금하죠? 얼마 전, 일본 규슈 남부 지역인 구마모토 지방에서 대형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미나마타병이 바로 구마모토 현 미나마타 시에서 발생했습니다.

미나마타병은 대규모 유기수은 중독으로 인해 발생한 공해병입니다. 일본에서 대규모 유기수은 중독 사태가 두 번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1956년에 공식적으로 환자가 발생한 미나마타 시 사례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가 재빠르게 원인을 밝히고,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어요.

이 때문에 1965년 혼슈 동해안 니가타 현 나가노 강 유역에서 다시 수백 명의 수은 중독 사태가 발생합니다. 미나마타 시 미나마타병으로 인정된 환자만 2265명이에요. 실제로는 수만 명에 이를 거라는 게 전문가의 생각이에요. 이 중 절반은 죽었고, 나머지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엄마 배속에서 중독된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는 이제 50대가 되었죠.

미나마타병은 수은의 생물 농축, 생물 축적(bioaccumulation)으로 발생합니다. 신일본질소비료공장이 1951년 생산 공법을 바꾸면서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라는 화학 물질을 대량 생산하죠. 이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을 대규모로 인근 강과 바다에 방류했습니다. 그 부산물의 주요 물질이 바로 유기수은이었어요.

그래서 지역의 수자원이 유기수은에 오염되죠. 유기수은은 생태계를 따라 대규모로 농축되었죠. 지역 사람이 오염된 어패류를 먹으면서 유기수은이 최종적으로 사람 몸에 축적됐어요. 중독으로 인해 수많은 지역 사람이 손발이 말을 듣지 않거나, 앞이 보이지 않거나, 정신이 혼미해지는 등 심각한 증세를 보였습니다. 생선을 먹는 동물도 마찬가지 피해를 입었고요.

강양구 :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전, 미나마타 고양이들이 먼저 죽어나갑니다. 처음에는 비틀거리면서 걷고, 코를 땅에 박고 물구나무를 서는 등 이상 행동을 하다가 죽죠. 결국 미나마타 고양이가 전멸합니다. 고양이가 죽고 나서는 사람이 쓰러져 죽거나, 고양이처럼 지체 장애, 정신 장애, 언어 장애를 일으키죠.

상상해 보세요. 고양이가 사라지고, 사람은 거동을 못합니다. 쥐만 활개치는 끔찍한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되죠. 이런 장면이 <슬픈 미나마타>에 생생히 묘사됩니다.

김종배 : 신일본질소비료라는 회사가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함흥시 일대에 흥남 비료 공장을 세운 그 기업입니다.

강양구 : 흥남 비료 공장은 당시로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답니다. 공장을 지으면서 지역 마을 몇 개를 강제로 소개했죠. 그리고 직원 수만 약 5만 명에 달하는 동양 최대 비료 공장을 세웠습니다. 해방 후에 이 비료 공장 시설과 인력이 일본 전역으로 이전했는데, 미나마타 시도 그 중 한 곳이었죠. (미나마타 시에는 그 전에도 비료 공장이 있었다.)

김종배 : 이 악덕 업체가 공장에 쌓아둔 유기수은 100톤을 한국에 수출하려고 했었죠?

강양구 : 일본 정부가 처음에는 미나마타병에 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니가타 현에서 1965년에 또 사건이 발생하니 그때서야 유기수은 배출을 중단시킵니다. 그러자 회사 입장에서는 여태 만든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잖아요? 이 유기수은 폐기물을 당시 한국에 수출하려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여론이 악화돼 못했죠.

김종배 : 그래도 걸리지 않고 우리나라에 넘어온 사례도 있지 않겠습니까?

안종주 : 우리나라 직업병 역사에서 이런 사례가 많습니다. 석면 사태, 원진레이온 사태, 온산병 사태 등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일본의 사례를 한국이 뒤늦게 알고 직업병, 공해병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죠. 1985년 <한국일보>가 "한국에도 이타이이타이병이 생겼다"는 타이틀로 온산병 피해 사례를 보도한 게 대표적입니다.

한국과 미나마타병의 인연을 이어줄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슬픈 미나마타>의 뒷부분에 해설을 쓰기도 했고, '태아성 미나마타병'을 밝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하라다 마사즈미 구마모토 대학교 교수가 1985년 내한해 온산병 피해 현장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두환 군사 독재 정부였었죠. 하라다 교수가 군부에 의해 한국에서 쫓겨나다시피 출국 당했습니다.

출국할 때 거의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할 정도였죠. 온산병 피해 현장을 둘러보면서 취득한 자료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가 공론화하는 걸 군부가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슬픈 미나마타>와 미나마타병, 또 그것을 공론화하는 데 노력한 일본의 지식인, 활동가의 노력이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성장을 위해 희생한 약자들

김종배 : 이제 미나마타병에 관한 당시 일본 정부의 태도를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1956년 일본 의원 조사단이 현지를 방문했는데, 미나마타병 피해자가 "의원 아버지", "의원 어머니"라고 부르며 매달립니다. 1968년 일본 정부가 미나마타병을 공해병으로 공식 인정하기 한해 전(1967년)에 후생성 장관이 병원을 찾는데, 피해자 중 한 명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칩니다. 어떤 여성 피해자는 기미가요를 부르고요. 저는 이 부분이 매우 가슴 아팠습니다. 정부가 책임 있는 것으로 보이는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정부와 권력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한국 피해자의 모습과 겹치지 않습니까?

당시 일본 정부에 관한 일본인의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뒤집어 보면, 일본 정부는 문제 발생 12년이 지난 1968년에서야 이 문제의 원인을 공식 발표하는데도 말이죠. 이러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을 겪은 우리에게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안종주 : 일본 정부가 문제를 일찍 인정했다면 기업이 곤란해졌겠죠. 전후 일본에서 공업이 크게 일어나면서, 전국 곳곳에서 공해 물질을 배출합니다. 당시 일본 정부의 논리가 '너무 강한 규제를 하면 우리가 경쟁력을 갖지 못 한다'는 식이었어요. 그러니 규제를 대충했습니다. 한참 뒤인 1995년 12월에야 일단 정부가 미나마타병에 관한 공식 책임을 인정합니다.

김종배 : 1968년 일본 정부의 발표는 '병의 원인이 유기수은에 있다'는 정도였고, 이에 관해 관리 감독 책임이 있으니 공식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인정한 건 1995년이군요.

안종주 : 그렇습니다.

▲ 미나마타병에 걸린 이는 손발이 마비된다. ⓒwikipedia.org
강양구 :
이 사태와 관련해 답답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이시무레 미치코가 <슬픈 미나마타>에 이어 <신들의 마을>이라는 책을 펴냅니다. 이 책에 "인신공양"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미나마타병 사태는 일본의 성장을 원하는 국가와 그것을 지지하는 다수 국민이 미나마타 주민을 공양으로 바친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일본 정부가 그처럼 떳떳하게 책임을 회피한 동력이 무엇일까요? 바로 '국가 발전을 위해 일부 국민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죠? 그리고 미나마타 주민의 희생을 딛고서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는 대부분의 국민이 거기에 동조했고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입니다.

김종배 : <슬픈 미나마타>에도 관련 내용이 생생히 묘사되죠. 미나마타 어민은 생선을 팔 수 없으니 생존 기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책임을 물으니 어민이 아닌 다수의 미나마타 주민이 '지역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비판을 받죠. 심지어 미나마타 어민조차도 상당 기간 이 회사를 미나마타의 자랑으로 여겼고요.

안종주 : 공해병이 터지면 항상 이런 문제가 반복됩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공장 노동자와 지역 주민 사이가 벌어지죠. 또 지역 주민 사이도 이해관계에 따라 틈이 생기고요. 기업은 이를 교묘하게 조종해 이익을 얻습니다. 또 언론은 '돈 때문에 저런다'는 식으로 주민에게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가하죠.

김종배 : 당장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런 전형적인 모습을 우리가 겪었죠. 답답한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건 국가의 속성이라고 봐야 합니까?

안종주 : 국가가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속성 혹은 본질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슬프죠. 그렇다면 우리가 국가에 공동체를 의탁할 이유가 없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나아졌습니다만, 여전히 기업 친화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가운데는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 일부 노동자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분이 많습니다. 학자 가운데도 이런 경향을 지닌 분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런 학자 가운데 일부는 최근 문제가 된 '청부 연구'에 집중하는 '청부 과학자'가 되기도 하고요.

김종배 : 미나마타병을 연구할 때 일본 학계에도 이른바 청부 연구하는 양상이 있었나요?

안종주 : 그 대목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1956년 4월 말, 5살 아이가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해 신일본질소비료 공장 부속 병원을 찾아옵니다. 이 아이를 시작으로 무려 8명이 비슷한 증세로 병원을 한꺼번에 찾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조사하던 해당 의사가 환자들이 집단적으로 유기수은 중독 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됩니다.

그런데 회사가 의사에게 연구 중단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절대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는 겁니다. 그는 진단 결과를 즉시 지역 보건소에 신고합니다. 처음에는 전염병으로 의심했기 때문이죠. 덕분에 그나마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미나마타병 피해를 일찍 막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집단적으로 생긴 게 2006년입니다. 이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진료한 현장의 의료진이 곧바로 정부에 역학 조사를 요청했다면 이 문제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밝혀지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듭니다.

강양구 : 저도 책을 읽으면서 이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공장 부속 병원의 의사가 호소카와 하지메 박사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논평합니다.

"미나마타병의 발생과 그 진행 과정에 대해, 의사이면서 학자로서 호소카와 박사가 그 고결하고 박력 있는 인격으로 탁월한 조사 연구를 지속했던 것과, 부속 병원의 본가라고 할 수 있는 신일본질소비료 미나마타공장이 보여준 모든 태도의 엄청난 대비는, 지금에 와서는 저마다 고전적인 의미마저 갖는다." (79~80쪽)

비록 일본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전문가 공동체가 반세기 전에 비해서 오히려 지금 더 타락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어요. <슬픈 미나마타>를 보면, 호소카와 박사 같은 회사 소속 의사뿐 아니라 구마모토 대학교 의사도 헌신적으로 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오거든요.

가습기 살균제 사태, 미나마타병의 반복

김종배 : 미나마타병이 유기수은 중독으로 인해 생겼다는 걸 전문가들이 알았고,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의 대응에 관해서는 다른 할 말이 없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관해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2013년에 "제조업자가 제조물을 공급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을 알 수 없었을 경우 책임이 면책되는 조항이 있다"며 "현대 과학기술로도 알 수 없는데 그걸 어떻게 막느냐"고 말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알 수 없었는데, 왜 관리·감독을 못했다고 질책을 하느냐는 건데요.

안종주 : 윤성규 장관만 몰랐던 겁니다. (웃음) 정부, 특히 환경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윤성규 장관은 환경부가 유해 물질의 위험을 사전에 포착하고 예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함을 고백한 거예요.

강양구 : 책에도 재밌는 대목이 있어서 소개할게요. 미나마타병 발견 당시 일본의 모습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진 일과 똑같습니다. 92쪽을 보면 미나마타 시의원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부 부처 이곳저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후생성, 우리나라로 따지면 보건복지부에 갔더니 "독성에 오염된 생선을 먹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것은 우리 일이지만, 앞으로의 생선 판매는 농림성 관할"이라고 해요.

그래서 공장에서 폐수를 흘려보내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하니 "그것은 통산성 관할"이라고 답하죠. 미나마타병 연구비에 관해 물으면 "문부성에 가보라"고 합니다. 연구비를 받으러 문부성으로 가면 "대장성으로 가라"고 해요. 결국 그가 이렇게 토로하죠. "멋모르는 시골 사람이 다섯 개나 되는 기관을 빙빙 돌기나 했던" 거라고.

▲ 우리는 미나마타병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걸 배웠을까? ⓒ프레시안(서어리)

안종주 :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공무원의 속성 가운데 하나죠. 2011년 8월 30일 가습기 살균제가 치명적인 폐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를 발표한 곳은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입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처음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뛰어들 때는 감염병(전염병)을 의심해서예요.

그런데 우리가 보유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어느 것하고도 달랐죠. 그래서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위원회에서 "전염병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질병관리본부 고위 간부는 이걸 환경부에 넘기려고 했어요. 전염병은 아니니까, 즉 우리 소관이 아니니 환경성 질환을 담당하는 환경부로 공을 넘기자는 거였죠.

다행히 당시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이 "환경부에는 의사도 없고, 질병 원인을 밝혀낸 경험도 없으니 우리가 밝혀야 한다"고 밀어붙였습니다. 덕분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원인을 밝힐 수 있었죠. 만일 질병관리본부가 이걸 환경부에 떠넘겼다면 과연 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 원인을 밝힐 수 있었을까 하고 혼자 가정을 해보기도 합니다.

강양구 : 참, 재작년 일본에서 석면 관련해 유의미한 판결이 나왔잖아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도 법원에서 승소할 수 있을까요?

안종주 : 일본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일터 가운데 하나가 석면 방직 공장이에요. 1900년대부터 방직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태평양 전쟁 직전에 오사카(大阪) 옆 센난(泉南)에서 대규모로 석면 방직 산업이 일어났어요. 센난 시에 재일동포가 많이 삽니다. 재일동포 출신이 이 산업에 대거 유입됐죠.

거의 대다수가 석면에 오염되어서 악성중피종, 석면폐증에 걸려 죽거나, 죽어갔습니다. 이에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죠. 오사카 법원에서 대법원까지 갔는데, 결국 2014년 대법원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재일동포가 포함된 재판에서 국가가 최종 책임을 인정한 겁니다.

1930년대에 석면폐증, 1960년대 악성중피종이나 폐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석면이라는 게 세계 곳곳에서 논문으로 발표됐습니다. 그 이후에는 정부가 석면 방직 공장에 배기 장치 등을 만들도록 법적, 제도적 보완을 했어야 마땅하죠. 그런데 일본 기업은 1970년대 중반까지도 손을 놓고 있었어요.

따라서 일본 대법원은 1970년대 중반 이전에 석면 피해를 입은 사람은 기업과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고 판결합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 석면 피해를 입은 사람은 국가가 아니라 기업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런 논리라면, 가습기 살균제 문제도 충분히 법원에서 국가 책임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권리는 없다

김종배 : 미나마타병이 일본에서 과거 큰 문제를 낳았고, 한국에도 가습기 살균제니, 메르스 사태니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국가의 책임 방기가 일본이나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본질적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안종주 : 기업은 결국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고, 정부도 기업을 두둔하는 정책을 폅니다. 일부 수긍 가는 논리도 있죠. 그러나 어떤 부도 국민의 생명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100년 전, 50년 전과는 다르고, 한국도 높은 수준에 오른 국가가 됐습니다. 과거의 논리가 지금도 통용된다는 건 매우 슬픈 일입니다.

김종배 : 박근혜 정부는 전 정부를 탓하죠. 그런 건 어떻게 봐야 합니까?

▲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달팽이 펴냄). ⓒ달팽이
안종주 :
그렇게 따지면 한이 없죠.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피해자와 한 몸이 되어서 열심히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자연스럽게 "과거 정부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올 텐데, 거꾸로 "이건 우리 정부 책임이 아니고 과거 정부 책임"이라는 식으로 해버리면 오히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죠.

강양구 : 전 <슬픈 미나마타>를 읽으면서 답답하고 슬펐어요. 지금 한국 사람이 가진 문제 가운데 하나가 타인, 이웃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 때문에 국가나 기업이 막가는 행태를 하고요. <슬픈 미나마타>는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있는 타인에 대한, 이웃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공감 능력을 되살리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먼저 미나마타 사람에게 감정 이입을 해보세요. 그리고 지금 우리 옆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 또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국가나 기업도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종배 : 개편 후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찾아뵙는 지식공방의 독서통은 재해, 재난에 관해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주제로 <슬픈 미나마타>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귀한 말씀 해주신 안종주 박사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안종주 : 네, 고맙습니다.

독서통 녹음 후 현장에서 참관한 독자와 안종주 박사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다음은 질의응답 내용 요약이다.

- 원진레이온이 일본 동양레이온의 기계를 들여와 설립한 공장인데,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니 이 기계를 또 중국에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서도 문제를 일으킨다고 들었고요. 왜 경제가 발전한 나라가 자기네 문제를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일본에서 폐기물을 우리나라에 떠넘기려 했다는 이야기에 우리가 분개했는데,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종주 : 좋은 지적입니다. 한국은 미국, 일본의 공해 산업을 들여와 발전했고, 어느 정도 발전한 후에는 이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하고 있죠.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입니다. 원진레이온에서 발생한 이황화탄소 중독은 1960년대~1970년대에 일본에서도 많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일본 학자들과 토론했는데, 일본에서는 아주 많은 곳에서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다만, 그 수가 30명~50명 수준으로 적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000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생겼거든요. 일본 학자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중국은 교류가 잘 안 돼서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국에서처럼 공장을 운영했다면 분명 그곳에서도 피해자가 생겼을 겁니다. 이런 부분은 국제적인 시민의 연대로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석면의 경우, 석면 방직 공장이 부산, 마산, 김해 등에 많았습니다. 대부분 재일동포가 투자해 설립한 공장이죠. 따라서 한국에서도 1980~1990년대에 석면 피해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문제가 커지니, 석면 공장 기계는 1990년대에 인도네시아로 넘어갑니다. 우리나라 석면추방네트워크에서 몇 차례 인도네시아 현지 조사를 하고, 그곳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렸습니다.

- 국가가 생명과 재산 중, 재산을 보호하는 데 더 기울어진 것 같습니다. 국가가 생명 쪽으로 더 기울도록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안종주 : 복지 국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만, 국민의 생명을 더 존중하느냐 마느냐가 앞으로 선진 국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명은 모든 가치보다 위에 있습니다. 앞으로 정말 사람을 중시하고, 사람의 생명을 중시하는 기업은 수백 년 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오래 가지 못할 겁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