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건물주 '갑질'에 관대할까?

[젠트리를 말하다 ④] 이기웅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 연구교수

젠트리피케이션. 홍대, 성수동, 경리단길, 연남동 등 소위 동네가 뜨면서 기존에 그곳에 있던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미약한 법에 불과하다. '핫플레이스'에서 건물주와 세입자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 보니 도심 한복판에서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게 강제 집행이다.

이런 가운데 <프레시안>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얼마만큼 심각한 수준인지, 해외에서는 어떤지, 지금의 문제를 보완할 방법은 없는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앞서 이태원 경리단길, 강남 가로수길 등 '핫플레이스' 지역을 연구한 허자연 도시공학 박사(지방공기업평가원 전문연구원), 해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연구한 맹다미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서울연구원 연구위원), 김경민 부동산 및 도시계획 박사(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푸른숲 펴냄)의 공동저자 이기웅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 연구교수(사회학 박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교수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바라보는 일부 대중의 차가운 시선, 그리고 그 차가운 시선의 사회학적 의미를 짚어보았다.

▲ 대학로에 붙은 대형 현수막. ⓒ프레시안(최형락)

"뜨는 동네, 젊은 세대의 독특한 감수성이 작용"

프레시안 :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가 최근 불거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기웅 : 젠트리피케이션은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영업자가 늘어났다. 그러면서 상가 건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됐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창조 경제라고 해서 자영업이 더욱 늘어나다 보니 상가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가 임대료가 더욱 올라가게 됐다. 여러 가지 요인(2008 세계 금융 위기, 뉴타운 정책의 실패로 인한 아파트 경기의 퇴조 등)이 겹치는 듯하다.

프레시안 : 결국 수요(즉 실업), 그리고 정부의 정책으로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인가.

이기웅 : 젠트리 현상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로 보면 된다. 또 하나는 창업에 나선 사람들 중 젊은 세대, 특히 30대 여성들이 소위 말하는 뜨는 동네의 주체 세력을 이루고 있다.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도 그렇고 소비자들도 그렇다. 30대 여성을 주축으로 아래위 세대들을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문화적 감수성, 미학적 성향을 구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뜨는 동네의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프레시안 : 지금은 뭐랄까. 자기만의 공간을 프라이빗하게 꾸며서, 예술가와는 다른 개념인 듯하다.

이기웅 : 사실 예술가들이 그런 곳에 있기는 하지만, 예술가들이 젠트리파이어(젠트리를 발생시키는 선구자, gentrifier)라는 것은 국내 상황에서는 조금 과대평가되는 것 같다. 감각 좋은 자영업자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주인공들이다.

프레시안 :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꼽히는 홍대는 어떤가. 거기는 예술가들이 처음 들어와서 사람들이 오는 곳으로 만들었으나 이후 상권이 형성되면서 쫓겨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기웅 : 홍대에서 1990년대에 활동한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인 건 아니었다. 홍대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 2002년 월드컵 △ 클럽데이 △걷고 싶은 거리. 이들의 조합으로 상권이 뜨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고 보는 게 맞다.

프레시안 : 그렇게 해서 지금의 홍대를 보면서 홍대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기웅 : 홍대가 죽었다는 건 좀 세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홍대가 죽었다는 건 과거의 홍대를 기억하는 사람들, 즉 자기가 좋아하던 클럽이나 카페 같은 장소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이들이 하는 말이다. 자기네들이 좋아하던 곳이 사라져가면서 홍대에 애착이 떨어지면서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들도 물리적으로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심정적으로 쫓겨난 게 됐다.

정작 홍대는 젠트리피케이션 이후 상권은 더욱 커졌다. 홍대는 공간의 특성상, 원형을 그리면서 팽창하고 있다. 어디까지 팽창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동쪽으로는 상수동, 당인리발전소까지, 서쪽으로는 연희동, 남쪽으로는 성산동, 망원동까지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핫플레이스 더는 생겨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 :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다른 지역은 어떤가.

이기웅 : 젠트리 현상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지역, 상황, 조건 등에 따라 다르게 일어나고 결과도 다르다. 예를 들어 상수동, 연남동은 지형적 특성으로 홍대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로가 좁고 주차 문제도 심각하다. 대형 프렌차이즈가 들어온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새롭게 젠트리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 상당히 많다. 그들 지역은 어떤가.

이기웅 : 내가 볼 때는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더는 생겨나지 않고 있다. 재작년쯤 경리단길이 핫플레이스로 뜨니 그 옆에 해방촌과 성수동이 떴다. 그러고 나서 이후부터는 생각만큼 후발 핫플레이스가 뜨지 못했다. 경의선길도 핫하다고는 하지만 핫플레이스로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해방촌 이후 핫플레이스의 부상은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프레시안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미 그곳은 임대료도 오르고 지가도 올랐다. 기대감이 크다.

이기웅 : 일종의 핫플레이스에 대한 피로감이라고 표현하겠다. 처음에는 '이 카페가 예쁘다'며 자주 이용하지만, 이후부터는 어디를 가나 똑같이 예쁜 카페를 맞닥뜨린다. 독특한 인테리어의 가게가 복제되고 있는 셈이다. 분위기도 비슷하다. 각각의 동네가 가진 특성이 '뜨는 동네'의 트렌드가 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에 대한 식상함이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에게 관심도가 낮아지는 식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핫플레이스가 생겨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전문가들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이례적이라고 한다. 해외의 경우와도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이기웅 : 과거 영미권에서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과 다르다. 거기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과는 맥락이 다르다. 하지만 최근 유럽에서도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는 듯하다.

프레시안 :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이기웅 : 이전까지 '상업 시설 젠트리피케이션' 관련해서는 논문 등 자료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최근 이런 제목의 자료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부터인 듯하다. 유럽에는 공공 소유의 퍼블릭한 건물이 많다. 그래서 임대료도 낮고 계약 기간도 길게 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이 마련돼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즉 금융위기 이후, 유럽의 공유 공간이 민영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간에 팔아버리든가, 아니면 비싸게 임대를 하는 식이다. 그것이 최근에 문제가 되는 듯하다.

▲ 강제 집행이 된 강남 가로수길 우장창창. 매일 저녁 이곳에서는 선전전, 음악 공연 등이 진행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한국만 젠트리 현상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프레시안 : 한국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최근 들어 무척 논란이다. 법적으로 보면, 임대차보호법이 2013년 개정되면서 보호 기간이 2년에서 5년으로 늘었다. 법규상으로는 최근 더욱 강화된 것인데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기웅 : 나는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지금의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만 해도 상가 젠트리피케이션은 법이 없어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가 건물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았고, 자본이 상가보다는 아파트에 집중된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달라졌다. 정리 해고된 봉급 생활자들이 자영업자로 전환됐고,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자가 대다수를 이루게 됐다.

그러다 2008년 금융 위기를 전환점으로 아파트가 경기가 빠지면서 유휴 자본이 건물로 가고 있는 식이다. 아파트에 투자하던 방식으로 건물을 투자하는 식이다. 즉, 과거처럼 자기 건물 하나로 평생 먹고 사는 게 아니라 2~3년 지나 가격이 오르면 되팔아 시세 차익을 얻는 식이다.

프레시안 :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이기웅 : 우리나라와 같은 사례는 보기 드물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토지에 대한 공공성, 즉 공개념 전통이 있다. 그것이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니 우리 같은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

프레시안 : 우리와 가까운 일본은 어떤가.

이기웅 : 겉보기에 일본의 상황은 우리와 무척 비슷하다. 1990년대부터 청년들이 취직이 안 되면서 조그마하게 가게를 차리거나 사회적 기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런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프레시안 : 그것까지는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사회와 매우 비슷한 듯하다.

이기웅 : 그런데 우리와의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도시 공간 내에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젊은이들이 밀려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가 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왜 그런가.

이기웅 : 건물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게 그 나라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임대차보호법인 차지차가법은 그런 비즈니스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외에도 사회 통념상 토지 공개념이 확립돼 있다. 한 마디로, 건물주가 마음대로 갑질하는 그런 상황이 존재하지 않기에 젊은이들이 밀려나지 않고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프레시안 : 왜 한국에서만 부동산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된 것인가.

이기웅 : 다른 나라에서도 부동산 비즈니스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것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부동산이 가장 확실한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만 투자하면 엄청난 대박을 칠 수도 있다. 사회 안전망이 극히 부실하고, 고용 안정성과 소득 안정성이 나날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목돈을 거머쥘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하지만 부동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최근에는 아는 듯하다. 지금 보면 젊은이들은 그냥 좌절이고, 조금 나이도 있고 돈벌이도 하는 이들은 부동산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듯하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하면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는다"

프레시안 : 한국 사회 대부분이 자영업자다. 통계상 600만 명이다. 그런데도 요즘 '건물주-세입자' 논란에서 여론을 보면 세입자보다는 건물주 편을 든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세입자가 장사를 하는 식이다. 권리금 문제, 치솟는 월세, 건물주의 갑질을 막을 방법이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분쟁이 일어나면 세입자보다 건물주 편을 드는 게 현실이다. 왜 그렇게 된 건가.

이기웅 : 그것은 고전적인 문제 제기인 듯하다. 이렇게 물어보겠다. '왜 서민들이 새누리당을 찍을까'. 그것과 비슷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자, 그리고 그 집단을 옹호하는 건 자기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 아닌가. 세입자를 비난하고 건물주를 옹호하는 것은 언젠가는 자기도 건물주가 되리라는 믿음 때문인가.

이기웅 :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 세입자에 가해지는 비난은 혐오에 가깝다. 혐오에는 좌우가 없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현되는 약자에 대한 혐오가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프레시안 : 신분 상승의 수단인 사다리가 사라진 뒤, 혐오만 남았다는 이야기인가.

이기웅 : 젊은이들은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러고 나니 남은 것은 혐오뿐이다. '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올라간 자들을 이길 가능성도,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존감은 남아있다. 그들이 자기가 그나마 자존감을 지키고 살기 위해서는 있는 자 편에 서는 것이다. 그래야 가지지 못한 자들보다 낫다는 자존감을 유지한다. 그게 혐오라고 생각한다. 그런 혐오가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장 논리에 의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기웅 : 맞는 말일지 모르나, 사람 사는 세상이 시장 논리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을 간과한 이야기다. 시장 논리, 즉 자본주의가 공공성 개념과 완전히 상치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공성이 발휘돼야 한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소유권은 자기 소유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원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세입자의 경우, 그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형성된 가게 브랜드, 단골 손님, 영업권, 그리고 자기 돈을 들여서 설치한 인테리어 등 다양한 유‧무형의 것들을 소유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유‧무형의 자산들에 대한 세입자의 소유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건물주의 소유권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면서 뭐가 문제냐고 한다.

프레시안 : 한국은 돈이 승리한 사회라고 표현했는데, 이걸 깨트릴 방법은 없겠나. '돈이 승리한 사회'라는 프레임이 깨지지 않으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

이기웅 :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서서히 깨고 꾸준히 조금씩 바꿔야 한다. 어떤 전통이라도 확립되면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젠트리피케이션 관련해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리라 예상하는가.

이길웅 : 이대로 가면 희망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준비된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어떻게 피할까, 극복할까'. 그러한 다양한 모색을 한다. 실제로 서울의 도처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다양한 싸움과 대안 모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안은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 현재 관건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적극적으로 해나감으로써 성공의 경험을 얻고 모범을 창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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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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