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욕은 '도시 재생' vs. 서울은 '이익 독점'

[젠트리를 말하다 ②] 해외 사례 연구한 맹다미 박사

젠트리피케이션. 홍대, 성수동, 경리단길, 연남동 등 소위 동네가 뜨면서 기존에 그곳에 있던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세입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미약한 법에 불과하다. ‘핫플레이스’에서 건물주와 세입자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 보니 도심 한복판에서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강제집행이다.

이런 가운데 <프레시안>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얼마만큼 심각한 수준인지, 해외에서는 어떤지, 지금의 문제를 보완할 방법은 없는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태원 경리단길, 강남 가로수길 등 '핫플레이스' 지역을 연구한 허자연 도시공학 박사(지방공기업평가원 전문연구원)와의 인터뷰에 이어 두 번째로 맹다미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서울연구원 연구위원)과의 인터뷰를 싣는다.

(관련기사 ☞ : [젠트리를 말하다 ①] 가로수길 프랜차이즈 7년 새 30개→225개)

맹 박사와의 인터뷰는 해외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어떤지, 해외와 비교해 한국의 상황은 어떤지 등을 비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주차장길 일대. 서교365번지의 가게들이 위태롭게 버티는 가운데, 이곳은 월세 1000만 원이 넘어가는 최고급 상권으로 변했다. 이제 서교동 일대의 가게 임대료는 신촌을 넘어섰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의 젠트리, 해외 사례와 다르다"

프레시안 : 해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조사한 보고서 '해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사례와 시사점'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창 젠트리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우리와 해외사례를 비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맹다미 : 그런 평이 조금 부담스럽다. 해외 사례를 조사하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와 해외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해외 사례는 맥락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서울에서 일어나는 똑같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라고 해도 서촌의 젠트리와 성수의 젠트리는 다르다. 젠트리 현상의 원인과 대안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지역마다 특성이 다르고, 일어나는 현상이 다르고, 해법도 다르다.

프레시안 : 왜 그렇게 생각하나.

맹다미 :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의 경우에는 도시화 과정이 상당히 길다. 산업혁명 이후 대규모 공업도시가 등장했다. 19세기 초다. 그때부터 200여 년간 도시는 성장, 교외화, 쇠퇴, 재생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면서 여러 현상이 발생했다. 도시화 과정에서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교외화 생겨났다.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지가가 높은 도심 중심에 머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도시 중심부는 쇠퇴했다.

미국 북동부 지역의 경우, 이런 과정에서 쇠퇴한 도심을 살리기 위해 공공에서 적극 개입해 도시재생 사업을 펼쳤다. 그러한 재생과정에서 발생한 게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공공부분은 쇠퇴한 도심을 물리적으로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기존 거주민을 내몰고 새로운 거주민으로 대체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즉, 도시의 성장과 쇠퇴 과정에서 도시재생, 즉 젠트리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그게 1970년대에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젠트리 현상이 발생했다.

프레시안 : 그렇게 생각하면 서울의 역사는 해외 도시와 비교해 매우 짧은 듯하다.

맹다미 : 사실 서울은 아직도 성장하는 중이다. 누구도 서울 중심부가 쇠퇴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성장 내지는 안정기로 분류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해외와 비교해서 서울 곳곳에서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맹다미 : 서구에 비교해서 서울의 경우는 쇠퇴라는 게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핫플레이스', 즉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지역인 홍대, 서촌,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젠트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즉, 쇠퇴하면서 젠트리가 발생한 해외 사례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결국, 서구와는 정책과 공간 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른 상태에서 젠트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조금 우려스럽다. 여러 전문가들과 서울시 관계자들은 지금의 젠트리 현상이 △ 매우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과다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 △ 이런 현상의 최종 이익이 특정인들에게만 몰린다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젠트리 현상은 상권이 뜨고 자본이 유입되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맹다미 : 맞다. 젠트리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기본 전제다. 이게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우려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역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데 기여했던 사람들이 쫓겨난 이후 자본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이익이 몰리는 문제 등은 정책적으로 개입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 쇼디치 상점 모습. ⓒ맹다미

"젠트리가 일어난 쇼디치, 지금도 다양한 문화 공생"

프레시안 : 해외에서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 중에서 긍정적인 사례가 있는가.

맹다미 : 영국 런던시 북부 해크니(Hackney) 내에 있는 쇼디치(Shoredith)는 16세기 말에 유럽 내 극장 지구로 명성을 떨친 지역이다.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이 연극을 상연한 곳이다. 이후 런던 중심지와 템스 강과의 지리적 이점으로 무역업자, 공장주 등 부유층이 이주했지만, 17세기부터는 범죄와 성매매율이 증가하면서 지역이 슬럼화됐다. 그리고 17세기 이후에는 프랑스 신교도들이, 20세기 들어서는 유대인들과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이주해오면서 다문화 지역이 됐다.

프레시안 : 한마디로 다양한 인종이 모인 빈민촌이 된 듯하다.

맹다미 : 그렇다. 하지만 그런 지역을 1980년대 말부터 유입된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변두리 공장지대였던 쇼디치가 지닌 장점인 도심 저근성, 편리한 교통, 저렴한 임대료로 직업공간을 구하던 예술가들에게 이곳은 안성맞춤이었다. 그 뒤 이 지역은 문화예술지역으로 발전했다.

프레시안 : 그 뒤의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결국, 예술가들과 원주민들은 올라간 임대료 등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다.

맹다미 : 그렇다. 일부 기존 이민자들은 이를 감당할 수 없어 외부지역으로 떠났다. 하지만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쇼디치 지역 사회 조합이 결성되고 쇼디치 지역 고유한 문화와 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프레시안 : 결과는 어떤가.

맹다미 : 이 지역은 아직 젊은이들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지역이다.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장사를 하는 '카레 골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 골목을 유지하기 위해 상인들과, 소유주들이 서로 노력했다. 이 지역이 조명을 받으며 새롭게 유입된 신생 벤처 회사들도 자치구에서 관련 지원대책을 마련, 기존 원주민들과 공존하게 됐다.

프레시안 : 기존 원주민과 지자체, 그리고 새로 유입되는 자본 등이 서로 대화를 통해 해결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맹다미 : 내가 알기로는 이들이 함께 하면서 다양한 문화들이 공생하게 됐다. 그러면서 현재 런던 문화예술 및 정보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여기에는 쇼디치 지역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 활동하는 협동조합 등의 역할이 큰 거로 알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쇼디치 상점 모습. ⓒ맹다미

"서구에서는 무조건 젠트리를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미국 뉴욕 할렘가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맹다미 : 할렘가 하면 무슨 단어가 떠오르나.

프레시안 : 흑인, 범죄, 슬럼... 이런 게 떠오른다.

맹다미 : 그것이 전형적인 서구 도시 도심의 슬럼화 된 모습이다. 과거에는 여기도 본연의 역할을 다했다. 예전에는 나름 괜찮은 주거지였다. 하지만 점차 도시기능들이 빠져나가면서 슬럼화 됐다. 그러면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계층도 달라진 케이스다. 도시기능이 빠져나가면서 덩달아 기존 살던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흑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 그랬던 할렘가가 어떻게 변하게 됐나.

맹다미 : 1990년대부터 중앙정부는 이곳에다 대규모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뉴욕 할렘가만 그런 지원을 한 게 아니라 게 아니라 엔터프라이즈 존(Enterprise Zone)을 지정, 쇠퇴한 도시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시재생의 불씨를 만들었다.

프레시안 : 그런 식의 젠트리피케이션이라면 우리와는 양상이 상당히 다른 듯하다. 이미 죽은 지역을 살리기 위한 도시재생사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맹다미 : 서구에서는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조건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할렘가 개발 과정에서 쫓겨나는 원주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할렘가는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곳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지역 활성화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고 지역 활성화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한국의 젠트리, 많은 시간과 대화 필요하다"

프레시안 : 프랑스 파리의 경우, 공공이 적극 개입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약화했다고 이야기 들었다. 파리 도심은 과거 낙후된 곳이었지만 이후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이 어떻게 개입했는지가 궁금하다.

맹다미 : 파리시는 쇠퇴한 도심을 재생하기 위해 1970년~1980대까지 도심 내 대형 상업건물이 입지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도시계획차원에서 대규모 상업기능 장려 정책을 펼쳤다. 이후 대규모 상업시설이 입점했고 상업가로에는 고급 부티크, 체인점 레스토랑 등이 늘어났다. 그와 반대로 시민을 위한 소규모 식료품점, 서점, 전통 카페나 식당 등은 현저히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프레시안 : 공공이 개입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 우리가 겪는 현상과 매우 비슷한 듯하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 파리 거리에는 소규모 식료품들이나 전통 카페 등이 적정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맹다미 : 2000년대에 프랑스 도시계획법이 바뀌었다. 우리로 따지면 도시재생법이 제정되면서 전반적으로 도시 정책이 선회했다. 기존 대형 개발보다는 지역 중심의 소규모 재생 사업으로 도시 개발 정책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개발 중심 정책에서 소규모 재생 사업으로 선회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서울의 경우도 뉴타운 재개발 이후 소규모 재생사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어떻게 개발 중심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나.

맹다미 : 파리시민들이 여러 문제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파리시도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우려를 그 당시 했다. 상업에는 무엇보다 다양성이 중요한데, 그런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프레시안 : 우리 사회에서 지금 겪는 문제, 즉,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과 기존 원주민이 밀려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것인가.

맹다미 :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다. 파리는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 중 하나다. 파리만의 독특함에 존재하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런데 대형 상업화로 파리만이 가진 독특함, 즉 가로 경관들이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한 마디로 관광 산업이 잘못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긴 것이다.

그런 의식이 패러다임을 바꿨다. 이후 2006년 파리 도시계획에서 진행한 '보호 상업가로' 지정 등도 마찬가지다. 시민과 정책입안자들 간 공감대가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그런 공감대가 없었다면 정책입안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가능하지 않는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 아닌가.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정책적으로 파리시에 도움이 되는 게 궁극적으로는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파리 시민들은 인식한 것이다.

(파리시는 2006년 소매업과 수공업 보호를 위해 도시기본계획인 파리도시계획을 수립하면서 보호조치가 필요한 특정 가로를 ‘보호 상업가로’로 지정했다. 보호 상업가로로 지정되면 건물 1층에 입점한 기존 소매상업과 수공업 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양적 규제와 더불어 상업시설의 다양성 보존을 위해 '비탈 카르티에' 사업과 같은 지원책이 함께 실행됐다.)

프레시안 : 서울은 파리와 같은 관광도시가 아니라서 그러는 걸까. 여전히 동네마다 가로길 특색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은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책이 입안된 뒤, 효과가 발생하면서 대중의 인식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 공공의 정책, 즉 규제가 젠트리피케이션에서도 필요한 게 아닌가.

맹다미 : 일방적으로 공공에서 정책적으로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는 식은 아니라고 본다. 각 이해당사자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내놓는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과도기적인 상황이다. 서구도 이런 과정을 거친 뒤, 싸우기도 하고 논의하기도 하면서 지금의 성과를 만들었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일단, 기본적으로 지금의 문제에 대해 논의가, 즉 시간을 들여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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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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