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박근혜 퇴임 후'를 말합니다

[기자의 눈] 미르·K 논란, '레임덕'은 가을바람처럼 와 있다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를 이야기하고 있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관련 이슈다. 사람들은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 퇴임할 때가 됐구나."

두 재단의 석연치 않은 설립 과정 등 기술적인 문제 제기를 차치하면, 야당이 두 재단을 문제 삼는 이유는 딱 하나다. 두 재단이 박 대통령 퇴임 후 활동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의심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2017년 12월 있을 대선 기준으로 이제 1년 2개월가량 남았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생소한 '등장인물'이 난무하는 미르·K재단 논란이지만, 이 논란이 상기시키는 것은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간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5년의 선출직 대통령을 수행하고 법적으로 '전직 대통령'이 된 후 발생할 수 있는 것들이 도마에 올랐다. 임기 후에 그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전 국민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은 어느 날 가을바람처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기업 팔 비틀기 모금, 무리한 설립, 비선 실세의 움직임 의혹 등이 매일 사람들의 인식 속에 들어오고 있다. 청와대가 관련 의혹에 대해 "질문해도 답하지 않겠다"고 강력한 차단막을 친 것은, 해당 의혹이 박 대통령의 '임기 종료'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점 때문이다. 강력 대응한다고 해도 딱히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니, 이미 '민간의 문제'로 규정해 버렸기 때문에, 청와대가 강력 대응할 여지 자체가 없어졌다.

최근 불거진 '박 대통령 퇴임 후 사저 조성' 의혹도 그렇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국정원 직원이 박근혜 대통령 사저 물색 작업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물론 보안 등의 문제로 국정원이 사저 문제와 관련해 유관부처와 협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은 그의 퇴임 후 사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은 사저 의혹과 함께 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조성 예산이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가장 많은 67억6700만 원을 예산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 '사저 논란'이 이번에도 재현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청와대 제공)

미르·K 재단을 박 대통령 '퇴임 후'와 연결짓는 이유들

박 대통령은 과연 미르·K재단과 연관성이 있는가? 알 수는 없다. 청와대는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상징적인 신호, 혹은 우연의 일치로 보이는 현상 등이 있다. 시작은 TV조선의 보도였다. 지난 7월 27일 이 매체는 미르재단과 대기업 관계자 등의 증언을 모아 미르재단이 설립 두 달 만에 500억 원을 모았고,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 개입설, 비선 조직 존재설, 박 대통령 '노후 보장용'이라는 등의 의혹이 세간에 알려진 계기다.

먼저, 미르재단 설립 과정은 매우 이례적이고 독특하다. 미르재단은 2015년 10월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각 기업에 협조 공문을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설립이 시작됐다. 다음날인 26일 오전 10시 18개 대기업 임직원이 서울팔래스호텔에 모였고, 오후 5시에 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이 등록 서류를 수령했다. 그리고 27일 오전 10시 5분에 대법원에 법인 등기 신고를 했다. 그날 오후 2시에는 현판식이 있었고, 법원 등기 절차는 오후 4시 30분경에 완료됐다.

왜 10월 27일에 설립이 완료돼야 했을까? 10월 26일이 어떤 날인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개연성 없는 의혹 제기는 자제하는 게 맞다. 확실한 것은 사전에 정교하게 기획된 재단이 아니라, '급조된 재단'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싫다는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서(박병원 경총 회장)"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두 번째, 박 대통령의 영애 시절 인연을 맺었던 고 최태민 목사의 그림자가 대를 이어 어른거린다는 점도 의혹에 불을 지핀다. 최순실 씨 개입 논란은 두 재단이 박 대통령과 직결된다는 의심을 낳았다.

그런데도 최 씨가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은 의아하다. 새누리당이 최 씨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사생결단으로 막고 있긴 하지만, 대통령에 누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최 씨는 입을 열고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에서 '최순실' 이름 석자는 금기어다.

세 번째, 국회의원과 대통령직을 제외하면, 박 대통령의 사회생활 경험은 모두 재단과 연관이 돼 있다. 박 대통령은 1982년부터 1991년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 이사 및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 이전 박정희 정권 시절 박 대통령이 총재를 맡았던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도 운영 측면에서 재단법인과 비슷한 형태인 사단법인 형태였다.

육영재단은 박 대통령의 모친 육영수 여사가 설립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제가 됐던 정수장학회 재단 역시 박정희 정권에서 강제 헌납된 부일재단이 모태가 됐다. 육 여사나 박 전 대통령 모두 '재단'에 관심이 많았던 셈이다. 재단은 박 대통령에게 매우 익숙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평생 사회생활의 바탕이 됐던 형태의 조직이 바로 '재단'인 셈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박 대통령의 임기 말이 됐고, 어김없이 '대통령 재단 논란'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대통령의 이름을 따거나 대통령이 관여한 재단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임기 말 현상, 기업 불만은 넘쳐나고 대통령 신변 정보는 새고

논란이 커지자 검찰이 나섰다. 검찰은 미르·K재단 관련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검사 한웅재)에 배당하고 오는 11일 고발인 조사를 시작으로 미르·K재단 모금 의혹 등 관련 불법 여부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많은 정치권 인사들은 해당 수사가 면죄부 주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데에 입을 모은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이 하나 둘 '혐의 없음'으로 귀결되고 있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검찰이 재단에 '문제없음' 판정을 내려주면 해당 의혹은 정치권 논란 차원에서만 다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청와대는 '전가의 보도'를 꺼낼 것이다. "누군가 이익을 본 게 없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사실 팔을 비틀어 수백억 원을 출연했든, 자발적으로 수백억 원을 출연했든, 재단이 불법적으로 설립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물론 기술적인 불법, 탈법 여부는 가려내야 할 것이다.

다만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미르·K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 루트다. 전경련 등 기업 내부에서 나온 제보들이 이 이슈를 끌어오고 있다. 심지어 박병원 경총 회장은 "재단법인을 '미르'라는 것을 만들어서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서 이미 450억~460억 원을 내는 것으로 해서 이미 굴러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성을 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4년 동안 국가에 봉사해오던 우직한 기업들의 불만이 공개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는 상시적 '기업 사정 정국' 속에 있었다. 틈만 나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으르렁거렸고, 뚜렷한 성과 없는 대기업 수사들이 상시로 진행됐다. 심지어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성과 없는 '사정'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기업들의 불만은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이고,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 넘쳐흘렀을 것이다. 하나 더, 대통령 사저에 국정원이 관계됐다는 정보가 어떻게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흘러들어 갔을까? 이 역시 의문이다. 어디에선가 정보가 새고 있다. 기업도, 공무원도 이제 그의 '퇴임 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르·K재단 논란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떠오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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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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