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목숨, 대통령을 살리고 국회를 걷어찼다

초유의 집권 여당 단식 파동이 남긴 것, 그리고 남길 것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고 4일부터 국정감사에 복귀하기로 하면서 여야 대치는 2라운드를 맞게 됐다.

집권 여당 대표의 '단식 파동'은 이번 정기국회가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 대표의 단식으로 얻은 것은 없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과도, 이른바 '정세균 방지법' 처리 약속도 얻어내지 못하고 단식을 접었다. 오히려 당 지지율은 야당과 함께 동반하락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나 정기국회 시작과 동시에 소수 여당은 두 차례 실력행사를 통해 보수층을 단단히 붙들어 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연합 세력'에 국회를 파행시키면서라도 강력히 맞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만천하에 과시했다. 이번 '죽음의 단식'이 집권 여당의 '국회 파행 예고편'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제기된 미르·K재단 관련 의혹을 물타기하는 데에도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으로도 평가된다.

다만 향후 여당 주도의 국정 운영은 완전히 불가능해 졌다. 단적인 예로 새누리당은 캐스팅보트인 국민의당을 끌어들여 정국 운영을 하는 '정치학의 교과서'를 사실상 걷어 찼다.

지난 4.13총선 이후 국민의당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캐스팅보트 정국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국민의당을 끌어들여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폐기시키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국민의당에 최소한의 명분도 주지 않았다. 황주홍 의원 등 '해임 건의안 반대파'의 협조를 얻어놓고 이를 스스로 반납했다. 북한 핵실험의 DJ 책임론이 여권에서 제기됐고, 미르·K재단 의혹 제기에 "김대중 재단도 조사하자"는 식의 말들이 난무했다. 결과는 야당 공조를 통한 김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였다.

새누리당은 국회를 뛰쳐 나갔다.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진행하면서 "야당이 대통령을 쓰러뜨리려 한다"는 말을 자주 한 것은, 국회를 파행시킨 진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가늠케 한다.

'단식 파동'은 내년 대선 기준 임기 1년 3개월도 남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결사 옹호'의 목적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비서 출신인 이 대표 리더십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앞으로 야당이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이같은 사태가 또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보위를 위해 당 조직 전체를 마비시키는 것도 불사할 것이다.

집권 여당 대표의 단식 파동은, 여당이 마지막으로 일할 수 있는 정기 국회를 포기하는 상징적 행위로 받아들여질 전망이다. 예산안 심사 정국에서도 새누리당은 제 3야당과의 협치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법, 의료법 등의 처리도 사실상 요원해졌다. 새누리당이 그토록 바랐던 '일 할 기회'는, 별다른 이변 없이, 이렇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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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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