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서쪽 질주해 도달한 곳은 헬조선"

[백년포럼] 식민 지배와 분단 100년 반복하지 않으려면

한반도는 식민지와 분단을 겪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풀이할까? 아니면 지난 100년과는 다른 100년을 만들 수 있을까?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인 역사학자 이병한 박사는 최신 문물과 결합된 '신(新) 동학'을 유라시아 연결망을 통해 전파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9월 29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국민 TV 카페에서 '다른 백 년인가, 다시 백 년인가-역사의 귀환과 유라시아의 복원'을 주제로 제8회 백년포럼 강연이 열렸다. 강연에서 발표를 맡은 이병한 박사는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서 공동체의 복원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포함해, 인도에서는 동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네시아까지 잇는 인도양 공동체를 복원하겠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는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추진하고 있고 동남아에서는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제도적으로 갖춰져 있으며, 칼리프를 통한 이슬람 세계의 복원 움직임도 있다. 유라시아를 통합해 나가는 흐름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이 서구와 이슬람 사이에서만 보자면 정말 그런 것 같아 보이지만, 유라시아 내에서 연결망이 겹겹이 복원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과 인도, 이슬람권 간에는 충돌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적인 흐름이 보인다"

이렇게 지역별로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유라시아에서 한국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이 박사는 <송학의 서천>(宋学の西遷)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이가와 요시지가 집필한 <송학의 서천>에서는 자유 시장, 관료제, 신분제 사회 해체 등 소위 근대적인 요소들이 서구가 아니라 중국의 송나라에서 시작됐다고 기술한다. 송나라 전에 당나라 때 남쪽에서는 불교, 서쪽에서는 이슬람교가 들어왔다. 이들을 본래의 유학과 통합해서 만든 것이 '송학'인데, 그 다음에 들어선 원나라는 유라시아의 거대한 대륙을 통합해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송학의 서천>은 바로 이 네트워크를 통해 송학이 어떻게 전파됐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중국의 사서삼경을 비롯한 고전들은 이후 원나라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구로 들어갔고, 이 책들은 그 지역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중국어에서 페르시아어로, 페르시아어에서 라틴어로, 그리고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책들이 프랑스로 전해진 뒤에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 대혁명은 왕의 목을 친 사건이다. 그런데 이것은 2000년 전 맹자가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왕이 왕답지 않으면 목을 치라고 하지 않았나? 맹자의 이 말이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되면서 서유럽 대륙의 끝인 프랑스까지 도달했고 결국 프랑스 왕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이렇게 1000년 단위를 조망한 책을 접하고 나서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유라시아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동학이었다"

▲ 역사학자 이병한 ⓒ프레시안(최형락)

이 박사는 한국 정도의 규모를 가진 국가가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수준의 연결망을 구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신 중국이나 인도, 아세안, 이슬람이 구축한 연결망을 통해 한국의 사상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중국이 유럽까지 철도와 도로, 인터넷망을 다 연결할 것이다. 일종의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셈이다. 그런데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다. 학문이나 사상적인 측면에서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만개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들이 깔아 놓은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인 운영 체제, 사상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후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헌일 수 있다.

'문명'(文明)을 글자 그대로 풀면 문(文)으로 밝힌다는 뜻인데, 우리가 지난 100년 동안 배워왔던 문명의 핵심은 사실 군사적인 것이었다. 무인들의 전성기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시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가 문으로 덕(德)을 밝히는 작업을 한다면, 즉 <송학의 서천>에서 알 수 있듯이 송학이 지난 1000년 근대화의 기원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다른 100년 동안 유라시아 연결망에 올릴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보내는 작업을 한다면 이것이 이후 다른 1000년의 기초를 닦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박사가 유라시아 연결망을 통해 전달하려는 동학의 핵심은 무엇일까? 120년 전 당시의 동학을 되살리는 것일까? 그는 '신(新)동학'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일대일로'에 '새로운 동학'을 유통시켜야


이 박사는 120년 전 동학이 등장했을 때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개화파가 있었지만, 이들이 진(眞) 개화파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동학 운동이 일어났을 때 몇 가지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가장 큰 흐름은 과격한 오랑캐 놈들과 함께할 수 없다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전통을 고수하며 유학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위정척사파였다. 한쪽에서는 유학을 공부했지만 당시 조선의 시스템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특정 세력을 끌어들이면 자신들의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얼치기' 개화파가 있었다. 상당수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어왔던 주역들은 이러한 '얕은' 개화파였다.

물론 이러한 개화파들과 다른 생각을 가졌던 인물도 있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헛 개화'와 '진 개화'를 분류했다. 그는 개화라는 것은 끝나지 않은 과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서유럽 문명이 개화의 종착역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즉 서양을 따라가는 것이 진짜 개화는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유길준은 개화의 방안으로 조선 문명의 전면적 실현을 강조했다. 전 국민이 군자처럼 살고 그 도를 실현해야 한다면서 '국민개사론'을 이야기했다. 안창호 선생이 이를 계승했는데 어느 순간 없어져 버렸다.

물론 국학이라는 것으로 조선의 문명과 문화를 강조한 흐름도 있었다. 그런데 국학은 한반도 혹은 조선이 예를 들면 '터널'과 같은 곳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이야기 한다. 여기에는 동아시아 문명이 배제돼있다"

그렇다면 120년 전 동학이 부르짖었던 슬로건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끌고 들어오면 되는 것일까? 이 박사는 송학이 당시 중국이 가지고 있던 유학에 불교와 이슬람교가 합해진 것처럼, 현대의 동학 역시 이러한 융합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송학의 서천>을 보면 당 나라 때 중국으로 유입됐던 불교와 이슬람교가 기존의 유교 도교와 합해서 나온 것이 송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신유학'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제가 말하는 동학 역시 '신 동학'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000년 동안 가지고 있던 문명에 지난 100~200년 동안 우리가 죽도록 배웠던 최신의 서학을 결합해 융합시키자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동아시아만큼 서양 문명을 열심히 배웠던 곳이 없다. 하지만 유럽은 유교나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외부 문명을 우리처럼 열심히 배우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이나 서구에서는 융합이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 전통과 서학을 잘 융합시킬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작업이 잘 이뤄진다면 앞으로 1000년을 가는 문명화의 싹을 틔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학이 서학과 융합해 서구로 나아가는 것이 자칫 연구자의 관념론적인 측면에서만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현실 세계에서 추동력을 갖기 위해서는 국제정치 여건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이미 국제정치적인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학이 서진하려면 네트워크, 즉 온‧오프라인의 연결망이 잘 맺어져야된다. 그런데 이걸 잘 알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고, 이러한 연결망을 곳곳에서 끊어두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향후 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잘 먹혀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지난해 필리핀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필리핀에서는 연결망을 복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속국의 민주화'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변화의 속도가 제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동남아에서 미국에 가장 가까웠던 동맹국인 필리핀에서 미국과 군사 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100년의 역전, 100년의 반전이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고 있다.

▲ 지난 9월 27일(현지 시각) 필리핀 해군을 상대로 연설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그는 다음날인 9월 28일(현지 시각)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에 이스탄불에 머물렀는데, 터키 역시 중동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다. 그런데 최근 터키와 미국의 관계가 삐걱대고 있다.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미국보다 오히려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11~12월 정도에 방문할 예정인 이스라엘도 예전과는 좀 다르다. 최근 2년 동안 이스라엘 총리가 가장 많이 만났던 해외 지도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미국만 믿어서는 앞으로 이스라엘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 셈이다"

국제정치적인 흐름을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현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박사가 말하는 신동학이 유라시아 공동체망의 복원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여지는 있어 보인다. 그런데 120년 동안 동학은 왜 한국 사회의 공론장에서 주요 담론으로 오르내리지 못한 것일까?

민주화 이후 30년, '헛 개화'였다?

2017년이면 1987년 민주 항쟁 30년을 맞이한다. 그런데 민주화 30년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지옥이라는 뜻의 '헬'(Hell)이라는 단어와 '조선'을 합한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길래 2016년의 한국 사회는 '지옥'이 돼버렸을까? 이 박사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모두 서구의 근대화를 추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산업화, 민주화의 시기가 지났지만 지금 한국은 '헬조선'이라고 불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전속력으로 질주해 오면서 산업화‧민주화 세력, 진보‧보수가 다퉈왔지만 사실 이들은 서구적인 근대를 추구했던 세력이다. 한쪽은 오른쪽에서, 한쪽은 왼쪽에서 이를 추구했던 것이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상준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는 "산업화나 민주화나 모두 서학을 해왔다는 지적인데, 민주화든 산업화든 한국 사회의 변화에는 동학을 지우려고 했던 반대 흐름으로써의 서학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어떤 사물이 변할 때 보면 A가 계속 커지면서 B가 사멸해가는 밀고 당기는 과정이 있다"면서 "동서의 전환이든 좌우든 고금이든 한 쪽이 한 쪽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의 것들을 그 안에 내포하면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의 근대 민주화 과정도 그렇게 복합적이고 역동적으로 가야 한다"면서 "역사 과정은 층위를 이루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이렇게 반대 흐름도 함께 포함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 왼쪽부터 김상준 경희대학교 교수, 이병한 역사학자,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와 관련해 이 박사는 "민주화 과정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역사적으로 이론화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산업화를 한 때 유교 자본주의로 설명했는데, 저는 이것이 개발 독재를 합리화했던 사이비 이론 성격이 아주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착상‧착안은 그럴 듯 하다고 본다"면서 “한국이 이 정도까지 오는데 지난 500년, 길게는 1000년의 문명적 유산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 박사는 "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은 이런 접근을 하지 못할까? 민주화 운동을 추구했던 그 강력한 밑바탕을 생각해보면, 신진사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진 문인세력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면서 근대화 이전에 가졌던 문명이 근대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은 대단히 수준이 높은 문인 국가였다. 그런데 식민지 이후 근 100년 동안 군인들이 지배하는 국가로 바뀌어 버렸다. 그걸 역전시킨 것이 민주화 세력이다. 이것은 진보, 보수의 다툼이었다기 보다는 문인과 무인의 다툼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전국시대를 보더라도 당시 힘이 센 세력들끼리 싸움을 반복했지만 결국 태평천하를 이룬 것은 문인이었다. 이런 것이 20세기에 한국 사회에서 압축적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도 하고 집권도 하고 대학에 포스트를 구축하고 논객 활동을 했던 분들이 본인들의 삶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스스로가 남을 따라 했다는 것만을 강조한다. 레닌을, 마오를 읽고 서구 문물을 접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동력 자체는 어디서 나왔던 것인가? 저는 '주경야독'과 같은 생활 양식, 사고 방식에서 나왔다고 본다. '사람이라면 책을 읽어야지'라는 문화 속에서 나왔다고 본다"

이 박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현대사의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절이 아닌,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한국의 근대와 현대, 미래를 조망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제가 동학을 강조하는 것도 그 흐름이 식민지 시대에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보고, 전쟁과 분단 이후에도 완전히 망각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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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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