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세대', 백남기 부검 논란에 "이 나라는..."

[취재수첩] 백남기 부검 영장, 강자에게만 가까운 법

현장 취재를 다니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기자에게 '기레기'라며 삿대질을 하는 이부터, 고생이 많다며 악수를 청하는 이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현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다. 특히 큰 사건 현장의 경우는 이런 다양성은 더욱 커진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씨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20대 여성도 그런 '다양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자신을 공부방에서 가출청소년 대상으로 '멘토' 역할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일하는 데 누가 말을 걸면 귀찮다. 그도 이런 기자의 마음을 알았을까. 노트북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하는 기자에게 겨우 말을 걸었다고 했다. 궁금한 게 많은데 자기 주변에는 관련해서 답변을 해줄 사람이 없단다.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그의 말을 듣고도 일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 조용히 노트북을 닫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곳에 와본다고 했다. 세상은 법만 지키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변화하게 된 계가는 제작년 4월이었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공부방에 갔는데, 이미 와있는 자신의 '멘티'들이 모두 울고 있었단다.

자초지종을 물었다. 울면서 아이들은 자기네 친구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그가 활동하던 공부방은 안산. 그의 '멘티'들은 그날 세월호를 타고 여행을 갔다가 바다로 사라진 아이들의 친구들이었다. 슬픔에 빠진 아이들을 달래면서 자기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청와대, 정부, 해경, 그리고 경찰 등이 세월호 참사 이후 보여준 행동들은 하나같이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이었단다. 아이들이 바다에 가라앉게 된 원인, 그리고 세월호를 둘러싼 의혹들을 조사하기는커녕, 이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재갈 물리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는 듯했다. 그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다.

그런 그가 고 백남기 씨 사안에 관심을 두고 장례식장까지 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고인의 시신을 왜 부검하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미 사인은 명확하잖아요. 게다가 유가족이 반대한다면서요? 그런데 왜 부검을 한다는 건가요? 더구나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돌아가신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분의 시신을 경찰이 부검한다니요? 이해가 안 돼요. 결국, 자기네들이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으니 그러는 거 아닌가요? 세월호 처럼."

흥분한 목소리로 질문하는 그에게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답을 해줘야 했다.

"현행법상으로는 그렇게 돼 있어요. 조사 중인 사건의 경우,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아도 부검을 할 수 있어요."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이 기자의 얼굴을 낯 뜨겁게 했다.

"법이라는 게 시민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 아닌가요? 경찰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그런 법이, 그리고 그런 법으로 경찰이 시민을 압박하고, 괴롭힌다면 그 법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요?"

할 말이 없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였다면 백남기 씨는 지금처럼 차디찬 냉장고에 있는 게 아니라 일찌감치 고향인 전남 보성으로 내려갔으리라.


강자에게 이토록 가까운 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상식적이지 않은 법, 그리고 경찰 때문에 여럿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고인의 사인을 '병사'라고 표기해 부검의 빌미를 마련한 서울대병원 측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진단서 작성에 책임이 있는 서창석 서울대학교 병원장과 백선하 서울대학교 병원 신경외과 교수를 오는 1014일 예정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병원장은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직을 사임하고 서울대학교 병원장에 응모했고, 지난 5월 병원장으로 임명됐다.

전대미문의 전제조건을 붙인 부검영장을 발부한 법원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조건부 영장을 발부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경찰은 오직 '마이웨이'. 종로경찰서는 104일까지 유족 측의 대표를 선정하고 부검 관련하여 협의 일시 및 장소를 정하여 경찰에 알려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백남기 유가족에게 보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국회 안행위 야당 의원들의 사과 및 조문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직에 몸담고 있고 소송에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불가할 것 같다. 양해바란다"고 조문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에는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경찰 조직이 검찰과 법원을 움직이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서울대병원장이 대통령 주치의였다는 점도 여기에 무게를 싣는다.

문제는 너무도 교묘히 법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약자에게는 너무나 멀기만 한 법이 강자에게는 이토록 가까운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2016년은 대체 어떤 '세상'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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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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