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는 26일(이하 현지 시각) 성명을 통해 랴오닝훙샹그룹의 핵심 자회사인 단둥훙샹실업발전과, 최대주주 마샤오훙 등 이 회사 수뇌부 중국인 4명을 제재 리스트에 공식 등재했다고 발표했다. 함께 제재 리스트에 오른 이들 중국인은 단둥훙샹의 제너럴 매니저인 저우젠수, 부(副) 제너럴 매니저인 훙진화와 재무책임자 뤄촨쉬다.
미 재무부가 북한의 핵무기·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해 중국 기업을 직접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치에 따라 단둥훙샹과 중국인 4명이 미국 내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동결된다.
또 재무부는 단둥훙샹과 그 관계회사 소유의 중국 시중은행 계좌 25개에 예치돼 있는 자금의 압류를 신청했다.
재무부는 단둥훙샹과 이들 중국인 4명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대상인 북한 조선광선은행을 대리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주체를 위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제재 근거를 설명했다.
이들 제재 대상 기업과 개인이 조선광선은행을 위한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위장기업과 금융거래 대행업자, 무역 대리인 등으로 구성된 불법 연계망을 만들어 제재에 따른 감시망을 피해 왔다는 게 미 재무부의 설명이다.
조선광선은행은 지난 3월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통해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된 기관으로 지정됨으로써 제재 대상이 됐다. 2009년 조선광선은행에 독자 제재를 가했던 미 재무부는 조선광선은행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718호에도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미 법무부도 이날 별도의 성명을 통해 단둥훙샹실업발전과 제재 대상 중국인 4명을 국가비상경제권법(IEEPA) 위반과 미국 상대 사기, 그리고 금융기관들을 활용한 돈세탁 모의 혐의로 지난 8월 3일 형사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1997년 발효된 국제비상경제권법에는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특정 국가, 회사, 개인 등에 대한 제재와 제재 유지 및 해제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단둥훙샹실업발전은 2009년 8월부터 지난해 9월 사이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세이셸군도, 홍콩 등지에 설립한 위장 회사들을 동원해 중국 시중은행에 계좌를 연 다음 북한으로 물품을 수출할 때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법무부는 단둥훙샹실업발전이 대북거래 과정에서 제재 대상인 조선광선은행에게서 금융지원 또는 지불보증을 받았으면서도 조선광선은행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위장회사를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법무부는 연방수사국(FBI)도 이번 제재 준비 과정에 참여했고 앞으로의 수사 과정에도 힘을 보탤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재무부와 법무부의 이번 조치는 북한이 지난 9일 5차 핵실험을 감행한 뒤 북한 정권은 물론 북한을 돕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단체도 직접 제재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중국에서는 최근 랴오닝훙샹그룹의 주요 자회사는 물론 단둥 지역에서 활동하던 다른 무역회사들의 대표들이 '중대 경제범죄' 혐의로 당국에 체포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지난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법무부 소속 검사들이 지난달 중국 베이징을 두 차례 방문해 중국 당국에 단둥훙샹실업발전과 마샤오훙의 북한 관련 범죄행위를 통지했고 중국 공안이 이에 따라 해당 기업과 마 대표 등의 자산 일부를 동결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20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가 뉴욕에서 만나 북한의 5차 핵실험을 규탄하고 양국 간 '사법 채널을 통한 협력 활성화'를 논의했다고 미 백악관이 발표했다. 이는 대북제재에 대한 미·중 양국 간 공조 논의의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의 안보 분야 연구기관 C4ADS는 지난 19일 발표한 대북제재 공동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대북제재 회피의 사례로 단둥훙샹실업발전을 비롯한 랴오닝훙샹그룹의 사례를 들었다.
고순도 알루미늄과 텅스텐의 최종 가공품인 암모늄 파라텅스테이트(APT) 같이 미사일이나 우라늄 원심분리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원자재들이 단둥훙샹실업발전의 대북거래를 통해 북한으로 유입됐다고 이들 두 연구기관은 밝혔다.
미국 재무부와 법무부의 이번 제재는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즉 제재 대상국과 거래하는 제3국의 정부나 기업, 기관에 대한 제재의 첫 사례인지와 관련해서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조치로 미국 행정부에 2차 제재 재량권을 부여했다.
워싱턴DC의 외교안보 소식통들은 중국 기업이지만 불법행위에 직접 가담했다는 점에서 이번 단둥훙샹실업발전에 대한 제재가 2차 제재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지원한다면 국적을 불문하고 추적, 차단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는 점과 중국 당국의 대북제재 동참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점에서 이번 제재는 2차 제재로서 규정될 수 있는지와 무관하게 대북제재 강화를 위한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소식통들은 풀이했다.
애덤 수빈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대행은 이번 제재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도왔던 핵심 불법 거래망을 폭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미국 금융제도가 악용되는 일을 막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위한 거래망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재무부는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슬리 콜드웰 미 법무부 형사담당 차관은 제재 대상들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부과된 국제사회의 제재를 어겼다"고 적시하며 "금융제재 회피를 시도하는 이들에게는 법의 심판이 따른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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