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밥 먹여야"…새누리, 각종 표결 훼방 작전

김재수 해임건의안 표결 막진 못할 듯…정국 경색 전망

1%대 초저금리 대출과 부동산 특혜 의혹이 제기됐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야당의 해임 건의안이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본회의 재적 인원 중 과반수가 찬성하면 가결되는 이 건의안은, 표결 결과가 어떻게 되건 여야 간 관계를 심각한 경색 국면으로 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은 해임 건의안에 대한 당론을 따로 정하지 않고, 각 의원 자율 투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내부 기류는 '찬성'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해임 건의안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며 공개 반대 입장을 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표결 참여와 찬성 쪽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분명한 것은 우리당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면서 이 같은 기류 변화를 시사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앞서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당에서 25표를 확보해준다고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與, '국무위원 필리퍼스터' 이어 "장관 밥 먹게 해달라"며 회의 방해

새누리당은 표결 처리를 지연하기 위해 각종 편법 의사 방해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날 오전에는 의원 총회를 2시간 반 이상 진행해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대정부 질문을 오후 2시 시작으로 미룬 데 이어, '국무위원 답변 오래 하기'라는 편법으로 대정부 질문 자체를 길게 늘이고 있다. (☞ 관련 기사 : "김재수를 구하라? 초유의 장관 필리버스터")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은 이날 진행 중인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을 마친 후 본회의에 상정된다.

또 해임 건의안은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동 폐기가 된다. 이런 점을 이용해 의도적인 시간 끌기를 하는 모습이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이날 오후 7시 50분께부터는 아예 의장석 앞으로 나아가 "국무위원에게 밥 먹을 시간을 주라"고 정세균 의장에게 고성으로 항의하며 원활한 회의 진행을 방해한 끝에 '30분 국무위원 저녁 시간'을 얻어내기도 했다.

13명의 대정부 질문 질의 의원 중 9번째인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 질의가 끝나자마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연단 쪽으로 걸어나가 고성 항의를 시작했다.

정 원내대표는 "종일 (국무위원들이) 힘들 거 아니냐"면서 "의장님은 식사하고 오시지 않았냐. 국무위원들을 종일 굶기고. 국회에 오점을 남기지 말라. 양심이 있어야죠"라고 항의했다.

이에 정세균 의장은 처음에는 "일정상 어쩔 수 없다", "저도 여러분처럼 국무위원을 걱정한다"며 차분한 말투로 대응하다, 고성과 항의가 계속되자 결국 "내가 (밥 먹으러) 밖에 나갔다 온 거 봤느냐.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되받아쳤다.

정 의장은 "여러분(새누리당) 의총 하시느라 2시간 반 없앴죠. 또 국무위원들이 길게 답변하셨죠. 어떻게 합니까. 의장은 오늘 주어진 의사일정을 잘 처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며 정 원내대표를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는 "(국무위원이) 답변 길게 하면 안 되는 거냐. 정책 사안에 대해서 답변 길게 하면 고마워해야지, 그걸 의장이 문제 삼는 건가"라면서 "내가 집권 여당의 원내 사령탑이다. 16대부터 국회의원이었다. 이러시면 안 되죠"라고 거친 항의를 이어갔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국무위원 저녁 식사 필요성을 명분 삼아 40분에 걸친 '육탄전'으로 의사일정을 방해해서 얻어낸 것은 정회 시간 '34분'이다.

국민의당 19명 찬성하면 '가결'…정국 얼어붙을 듯

이처럼 새누리당이 각종 '변종 방해'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합법적인 의사 일정 지연 방법인 '필리버스터'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터라 해임 건의안 표결 자체를 물리적으로 막아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새누리당은 앞서 필리버스터도 검토했으나, 지난 2013년 새누리당 출신 강창희 당시 국회의장이 "인사에 대한 토론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황창현 감사원장 인준안에 대한 야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을 거부한 선례를 찾아낸 후 포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대화를 위해 주었던 돈이 북한의 핵 개발 자금이 되었다"고 말하며 김대중 전 정부를 정조준한 것도 이날 새누리당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대중 전 정부의 햇볕 정책을 정면 비난함으로써 국민의당의에 해임 건의안 표결에 불참할 명분을 주지 않았고, 이에 따라 '소수 여당' 처지인 새누리당으로선 해임 건의안 처리 저지를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진 상황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121석, 정의당은 6석,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은 5석이다. 국민의당 의원 38명 중 19명이 찬성표를 던지면 해임 건의안은 가결된다.

새누리당은 마지막까지 쓸 수 있는 지연 전략을 모두 쓴 후, 끝내 해임 건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표결에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임 건의안이 가결되더라도 김 장관을 유임시킬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아울러 새누리당은 이후 의사 일정을 보이콧하는 등 국회를 파행시키며 야당과 '강 대 강'으로 붙는 국면을 만들 우려가 제기된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우병우 민정수석 거취 논란, 대우조선해양 자금 투입 논란 등 주요 증인을 불러 다뤄야 할 현안에 대한 국정 감사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 할 가능성이 크다. 국정 감사는 당장 오는 26일부터 시작된다.

이 경우 농림부 고위직 재직 당시 피감독 기관인 농협에서 평균 대출 금리 8%보다 한참 낮은 1~2%대 금리로 대출을 받는 등 특혜 의혹이 불거졌던 김재수 장관과 청와대를 보위하기 위해 의사 일정을 파행으로 몰았다는 비판이 정부-여당에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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