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장소 1위는 자택…이유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가정 호스피스제 확대하자

작년(2015년) 11월 아버지가 집에서 돌아가셨다. 만성 질환으로 와병한 지 오래되신 아버지는 평소의 소망대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 아버지의 주보호자와 돌봄 제공자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평소 아버지의 뜻을 글로, 이야기로 전해 받은지라 열이 나는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지 않고 집에서 돌보셨다. 가족들과 손주들이 집에 다녀가면서 아버지와 인사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열이 나기 시작하고 돌아가시기까지 대략 9일 정도가 소요되었다. 열이 나면서 의식이 있다가 없다가 했고, 한동안 가래를 심하게 뱉고, 무언가 잡으려는 듯 휘휘 손을 저으시기도 했고, 맥박도 빨리 뛰다가 점차 잦아들었다. 어머니와 삼남매는 주변에서 몸을 씻어 드리고 가래를 닦아드리느라 번갈아 잠을 자야했다. 고열은 5~6일 정도 지나 잦아들었고 3일후 고요한 저녁에 가만히 가셨다. 어머니와 내가 숨죽이며 지켜봤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시켜 주신 아버지의 용기와 가르침에 머리 숙여졌다. 그 순간은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보다는 한 사람의 역사가 마무리 되는 순간에 대한 겸허한 기도의 시간과 같았다. 돌아가신 후 경찰과 함께 온 검안의는 사인을 폐렴으로 진단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죽을 권리

집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지키는 과정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족 간에는 병원에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언쟁도 있었고, 그대로 집에 두는 것에 대한 불안도 엄습했다. 나는 수시로 임종 과정을 기록한 간호학 정보를 찾아보며 아버지 상태와 대입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 가족의 경험같이 병원에서 어떤 처치도 받지 않고 죽음을 오롯하게 가족이 대응하고 처치하는 과정은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에게는 낯선 일이다.

연구자들은 현대 한국인의 죽음은 의료화되고 타자화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임종기에 닥친 환자는 의사에게 맡겨져 통증을 관리하거나 처치하며 완화 치료(paliative care) 과정을 겪게 된다. 임종의 과정이 타자화되면서 집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맞이하는 죽음은 그만큼 드문 일이 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의 72%가 병원에서 숨진다고 한다. 자택에서 숨진 경우는 17.7%에 그쳤다. 반면, 호스피스 완화 의료에 대한 국민 인식도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죽음을 맞기 원하는 장소로 57.2%가 가정(자택)을 선택했다. 이어 호스피스 완화 의료 기관(19.5%), 병원(16.3%), 요양원(5.2%) 산이나 바다 등 자연(0.5%), 조용하거나 편안한 곳(0.3%), 아무도 없는 곳 등이었다.

타자나 전문가에게 맡기는 죽음이 아니라 가정에서 죽음을 경험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죽을 권리를 위한 개인의 노력과 그를 위한 사회적 지원 제도에 대해 검토할 때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013년 폐원시키기 전 진주의료원 호스피스 완화 센터의 한 일반 병실. 진주의료원은 6인실 가격으로 환자들에게 4인실을 제공했다. 말기 암 환자들은 이곳에서 전문 의료진의 돌봄을 받으며 임종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죽으려고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는데 살 것 같다."

국내 최초의 호스피스 병원, 강릉 갈바리 의원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들려주는 이 말은 호스피스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와 가족들이 하는 말로 유명하다. 수십 가지 주사 바늘로 연명하는 환자가 최소한의 통증 치료와 의료적 도움으로 편안한 죽음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 케어는 환자를 평안하게 하고 가족도 안심하게 돕는다.

이제 호스피스 케어가 제도화되었다. 웰다잉의 필요성과 병원 사망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의 문제 등에 대한 제도적 대응으로 연명 의료법이 올해 초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병원 호스피스 치료뿐만 아니라 가정 호스피스 제도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올해 3월부터 시범 사업으로 시작한 말기 암 가정 호스피스 시범 사업이 그것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0년 국민건강보험 사망자 20만9004명을 대상으로 2014년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망 전 1인당 1년간 총 의료비는 1346만 원이었다. 사망자 중 장기 요양 수급자의 1년간 총 의료비는 864만 원으로 비수급자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전 1년간 1인당 평균 총 급여 비용은 국민건강보험+시설 요양 이용군이 1720만 원으로 가장 많이 지출하고 있으며 전체의 29.3%를 차지했다.

여기서 확인되듯이, 심각한 병의 발생으로 입원, 수술과 치료, 퇴원, 요양 병원(요양 시설), 병원에서 사망의 과정을 겪으면 그만큼 의료비가 많이 들고, 이는 개별 가정과 국민건강보험 재정 지출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정부의 가정 호스피스 제도의 도입은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른 장기 질환자의 증대와 의료비 지출 부담에 대한 대안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번에 실시한 시범 사업의 내용에 따르면, 가정 호스피스 시범 사업을 이용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자부담 기준)은 의사 방문 시 초진 5120원, 재진 3580원, 간호사 3260원, 사회복지사 2060원이며 가정에서 임종 시 방문료 30%가 가산된다. 환자들은 1회 방문당 5000원~1만3000원의 비용을 지출한다. 서비스 내용도 환자에 대한 증상 관리, 상담뿐만 아니라 사별 가족 상담까지 진행할 수 있다. 2017년 8월에 호스피스 완화 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보건복지부는 말기 암뿐만 아니라 에이즈(AIDS), 만성 간경화,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등에서도 호스피스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보완하면서 충족시켜야 할 내용이 많다. <이코노미스트> 연구진에 의해서 개발된 죽음의 질 지표의 하위 5개 영역은 다음과 같다. 완화 치료(호스피스)의 실시 여부, 그를 수행하는 인력 자원, 돌봄 서비스 가격, 돌봄의 질, 지역 사회의 참여(자원 봉사 등) 수준이다. 이제 완화 치료를 위한 제도적 시도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에 맞는 제반 환경이 마련되기 위해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가정 호스피스제 활성화해야

2015년 현재 호스피스 완화 의료 기관은 지정 기관수 56개소 병상 수 939개에 불과하다(국립암센터 호스피스 완화 의료 사업과 제공 자료). 의료 기관을 중심으로 관련 전문 의료진이 포진해 있지만, 그 수도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가정 완화 의료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은 전문 간호사와 전문 사회복지사가 필요하지만, 교육을 받은 전문가의 수에 대한 통계도 보고되어있지 못하다. 완화 의료를 위한 의료진과 사회복지사를 교육하는 공인된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미국와 영국의 호스피스 완화 의료 서비스는 암 환자뿐만이 아니라 임종기를 겪는 모든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집에서의 임종을 선택한 개인과 가족이 상담을 통해 정서적 지지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가정 내 임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완화 의료 대상 확대와 함께 개별 서비스당 수가가 아닌 포괄 급여로 운영되는 지정 기관의 호스피스 상담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제도적 한계 속에서 시작되는 사업이 적극적으로 보완되기 바라마지 않는다. 하지만 예산과 인프라 마련에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민 사회의 역할도 필요하다. 제도적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호스피스 활동에 대한 모금과 자원 봉사 활동이 요청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자원 봉사 단체, 기업의 사회 공헌, 모금 단체들의 참여 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때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교육과 서비스 운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 활동도 기대할 만하다. 존엄한 죽음의 권리는 행복한 생에 대한 권리와도 같기 때문이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내만복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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