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이 대량해고 됐다면 이렇게 조용할까"

[토론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왜 구조조정 되고 있나

"지금 하청 노동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들이 불쌍하고 측은한 대상이라서 고민하기 보다는 우리 사회 구성으로서, 조선소를 이끌고 가고 생산을 담당하는 그런 노동자로서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사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가 10만 명이 넘는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 저지 대책위원회 위원장

2015년에 2만여 명의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2016년에는 3만여 명 이상이 쫓겨날 것으로 예측된다. 구조조정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대량해고다. 이러한 대량해고는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하청업체를 폐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의 조선업종 하청노동자 관련 문제와 대책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6일 민주노총,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무소속 등 7명의 국회의원 주최로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구조조정 실태조사 결과 분석 및 대안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정기훈

"하청 노동자, 이젠 갈 곳이 없다"

이날 발제를 맡은 하창민 지회장은 하청 노동자는 구조조정을 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업체폐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청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가게 한다는 것. 문제는 앞으로다. 당장 9월이 지나면 남아있는 해양플랜트 물량이 동이 난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진다는 것.

"9월 말 정도 되면 해양 플랜트 공사가 마무리된다. 그러면 조선 빅3 각각에서 1만 명 이상의 대량 해고가 발생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고된 이들에게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현대중공업 물량이 적어 하청 노동자가 해고돼도 문제될 게 없었다. 다른 조선소, 즉 대우조선해양 등으로 취업을 하면 됐다. 그때는 하청 노동자들이 울산, 거제 등을 오가면서 일했다. 하지만 이제는 갈 곳이 사라졌다."

더 큰 문제는 빈털터리로 쫓겨나다시피 공장 밖으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하청 노동자와 달리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선택의 폭이 넓다. 희망퇴직을 할지, 아니면 계속 일을 할지... 희망퇴직을 선택하면 몇 년 치 임금을 당겨 받고 공장을 나간다. 퇴직금도 받는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는 선택의 폭이 좁다. 업체가 폐업돼서 쫓겨나거나 남거나 둘 중 하나다. 떠나는 노동자들은 위로금은 고사하고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실업급여도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받지 못한다.

업체가 폐업되지 않아 살아남은 사람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며 임금 삭감, 무급순환휴직 등에 서명한다. 그래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노동조합 언저리에 있으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결국, 살아남아도 최소한의 생계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하 지회장은 "지금의 문제를 두고 원청은 하청업체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아무런 독립성도 없이, 오직 원청에서 지시한 인력 공급만 해온 하청에서 노동자의 임금과 퇴직금, 그리고 안전을 책임지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 지회장은 "지금의 노동탄압, 임금체불, 안전 문제 등 이 모든 것은 하청 중심의 생산구조에 있기에 이걸 깨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도 "현 구조조정은 이런 구조를 깨는 게 아닌 더욱 견고히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업체를 폐업시키고 물량팀을 더욱 늘리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것.

"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됐다면 나라가 들썩였을 것“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정치권과 노동계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현재 일어나는 하청 노동자의 대량해고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의 하청 노동자들처럼 대량 해고 됐다면 지금처럼 조용히 지나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지금 울산, 거제, 목포 등에서 일어나는 대량해고는 규모와 내용면에서 일찍이 볼 수 없던 상황이다. 수 만 명이 해고되고 있지만 해당 당사자를 빼고는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한가한 이야기만 하고 있고 고용노동부, 기업들은 노조 없는, 힘 없는 하청 노동자들은 잘라도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양 위원장은 "아마 노조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수 만 명 해고당했거나 해고당할 위기에 처했다면 나라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였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국진보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총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서울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업종 하청 노동자의 대량해고를 막기 위한 ‘조선하청대책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9월 29일 울산 비정규 노동자 대회, 10월 29일 거제, 통영, 고성 조선소 하청 노동자 대회에 대책위 이름으로 참석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조선소 앞에서 종교행사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상황은?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재 하청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인지를 조사한 내용이 발표됐다. 금속노조는 지난 5월~6월 동안 전국 조선업종 비정규직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결과를 보면 최근 1년간 업체를 옮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213명(42.76%)이었다. 응답자들이 업체를 옮긴 이유로는 업체 폐업이 107명(39.78%)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임금 인상 목적이 66명(24.54%)이었다. 감원, 또는 구조조정의 사유로 업체를 옮긴 노동자도 36명(13.38%)이나 되었다. 조선업종 위기상황으로 인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이직이 빈번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조선업종 비정규직 노동자 중 40%의 노동자가 임금 및 근로조건의 저하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질소득이 줄었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216명(55.4%)이었고, 감소한 금액은 평균 22%로 조사됐다. 특히 물량팀 노동자의 경우 '임금이 줄었다'와 '실질소득이 줄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60%를 넘는 상황이었다.

고용형태별 고용불안정성에 대해 응답한 내용을 보면 물량팀 노동자의 경우 '매우 불안'이 34.09%로 가장 높았다. 하청 본공 노동자들의 경우 '불안하다'가 34.02%, '매우 불안하다'가 25.44%로 응답했다. 조선업종의 구조조정의 1순위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이 물량팀 노동자이고 다음 하청 본공 노동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임금 체불을 경험한 경우 또한 물량팀 노동자는 51.77%가 임금체불을 경험한 것으로 응답했고 300만 원 이상 체불을 경험한 경우가 30%로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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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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