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돈벌이가 가장 쉬웠어요"

[프레시안 뷰] 통제 없는 독점 기업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더니 다른 나라로 공간 이동을 한 기분이 든 지난 주였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유난했던 올여름의 퇴장은 '극적'이었다. 이러고 보면 기상예보 실패로 '구라청'이라는 탐탁히 않을 별명이 생긴 '기상청'의 오보가 왠지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전기 스위치 켜지고 꺼지듯 변하는 계절의 흐름을 맞춘다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올여름 더위를 겪으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1994년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지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했다. 마치 금의 품질을 판단하기 위한 '시금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적어도 2016년 여름은 1994년 여름 폭염에 가깝긴 했지만 넘지는 못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여름은 '전기요금 누진제' 관련 대중의 반발이 본격화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전기요금을 '전기세'로 부른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시작은 '한국전력주식회사'이다. 1961년 당시 한반도 남단에서 전기 관련 사업을 하던 3개 회사를 합쳐서 시작됐다. 박정희의 군사 반란이 있던 해이기도 하다.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사장을 임명한 적도 있으니 완벽한 사기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긴 했지만, 주주총회가 있는 사기업적 성격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주식회사 체제는 해산되고 '한국전력공사'로 전환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5월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세계 2000대 기업을 발표했다. 한전은 종합순위 97위에 자리 잡았다. 전 세계 전력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100위 안에 들어선 회사이다.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이 들어 있을 뿐이다. 2013년 2천억 흑자 전환 이후 2015년에는 당기 순이익이 10.2조 원, 영업이익은 4.4조 원을 자랑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주식시장은 이를 정확히 반영했다. 2003년 1만8000원 정도였던 주가는 2016년 5월 6만2000원을 찍었다. 이쯤에서 슬슬 머리가 복잡하다. 공기업의 경영구조 개선이 나의 삶을 개선해 주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고민되기 시작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요금'이 아니라 '세금'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아직 많은 상황이다 보니 더 그렇다.


한전은 매우 많은 법적 특혜를 받는다.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이하 전촉법)'이라는 것이 있다. 법령 제정 목적은 국가 전력수급 안정화를 위해 전원설비 관련 용지 확보 및 공사의 효율적 진행을 지원하기 위해서이다. 전촉법은 1979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법이다. 이 법은 무려 22개 개별법이 관여하는 38개 인허가 사항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한 번이라도 내 집을 지으려고 했던 분이 있다면, 단 한 번 만이라도 내 땅으로 이어지는 길 하나를 내어보려고 했던 분이라면 아실 거다. 정말 성질 뻗쳐서 집 안 짓는다는 분 여럿 봤다. '자연공원법', '농지법', '산지관리법' 등 일반인들에겐 저 법이 뭐지 하겠지만 딱 내 상황이 되고 나면 허가 하나 받기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법이다.

전촉법은 남의 땅에 맘대로 출입할 수 있게 해준다. 남의 땅에 있던 나무를 맘대로 잘라도 된다. 그 땅을 일시적으로 사용해도 된다. 심지어 그 땅을 가진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전촉법이 '전원개발사업구역'으로 포함시켜버리는 순간 팔지 못한다. 이건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자. 여러분에게 강이 보이고 뒤로는 산이 보이는 곳에 땅이 있다. 시원한 바람이 휘 불어오는 그런 땅이 있다. 생각만 해도 좋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가 당신 땅을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 좀 써야겠다고 한다. 그 순간 그 땅은 이름만 여러분의 것이 되는 거다. 거기에 아무리 보기 흉한 탑을 쌓고, 도로를 만들고, 심지어 내가 못 들어가게 담장을 쳐도 막으면 안 된다. 막는 순간 여러분은 범죄자 신분이 된다.

경상남도 밀양에 올라간 송전탑이 그렇게 세워진 것이다. 노인 분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반발을 했던 것은 사실 상식을 지키고자 함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사람들은 보상을 해줬는데 뭘 그러냐고 하고, 공익을 위해서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올여름 여러분과 나는 납량영화 못잖은 공포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전기요금 '누진제'가 무서워 멀쩡한 에어컨 놔두고 강변으로 짐 싸 들고 나가고, 카페로 피신했다. 한전은 그사이에 세계 1위의 기업이 됐고, 2조 원을 주주 배당했다.

한전이 보유한 자산 규모는 2016년 현재 208조 원에 이른다. 국내 기업집단 가운데 3위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부동산으로 이뤄졌다.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전촉법을 무기 삼아 한전은 무소불위의 특혜를 받으며 성장한 회사이다. 단일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그 기반이 되는 자산은 물론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시민의 통제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기이한 회사이다.

지난 4월 감사원 기관운영 감사 결과를 보면 한전은 무능하고 부실한 집단이다. 발전소 주변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기요금의 3.7퍼센트를 모아 만든 것이다. 지자체가 이렇게 지원받은 금액 가운데 2160억 원을 집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묻지 마 신청'과 '묻지 마 지원'이 만든 결과다. 이것만이 아니다. 3급 이상 고위직 간부들의 일자리 보장을 위해 정원외 인력 관리 금액 279억 원을 사용했고, 그 금액만큼 신규인력 채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봉 5000만 원을 준다고 하더라도 558명을 새로 뽑을 수 있는 금액이다. 퇴직자 모임이 출자한 단체에 수의 계약을 통해 일감을 몰아준 것도 52건 적발됐다.

이렇게 운영하고도 13조4000억 원의 당기순이익(2015년 연결 기준)을 본다는 것은 한전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얼마나 쉬운 장사를 하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지난 여름 더웠던 게 갑자기 억울해지지 않으신가?

공기업이 적자를 보면 적자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산골에 사는 사람에게 동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적자를 감수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 공기업의 영역이다. 같은 이유로 공기업이 흑자를 봤을 때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그 흑자의 원천은 언제나 그래왔듯 나와 여러분의 지갑일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거듭 말하지만, 한전은 공기업도 아니다.

바람이 시원하다. 몸이 시원해지고 살만해지니 누진제에 대한 분노 강도도 시들해질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2017년 여름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거 알고는 계셨으면 한다. 이번 해 생각해 보니 4월부터 더웠다. 내년에는 누진제 때문에 아이 가진 집에서 에어컨 벌벌 떨며 트는 일은 없었음 한다. 물론 우리가 모두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존한 에너지 소비를 넘어 대안 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도시'로 가는 것만이 산업시대의 유산인 한전의 '무소불위'를 꺾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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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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