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중국을 싫어하나?

[최성흠의 문화로 읽는 중국 정치] 공자학원과 중국의 소프트 파워

미국 신보수주의를 대표하는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에 '역사의 종언'이라는 논문을 통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하는 이데올로기의 역사는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인류 역사에서 이상주의는 사라지고, 시장 경제 체제에서 경제적 이익, 소비자의 욕구 충족, 기술과 환경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만을 고민하는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논문이 발표된 해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2년 후에는 구소련이 해체됐으며 중국은 이미 개방의 길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 경제는 시장의 규칙에 따라 통합되었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규칙을 수호하는 세계의 경찰을 자처했다. 그러나 스스로 경제 행위자이기도 한 미국이 규칙을 공정하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그들이 보유한 막강한 군사력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았다. 위협이 사라진 후에 남아있는 보호자가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의 외교 자문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하버드 대학교 교수는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창안하여 미국의 군사 대국 이미지를 완화할 것을 권고했었다. 소프트 파워란 매력적인 문화, 보편적 가치, 외교 정책의 이상 등을 선전하여 타국의 호감과 지지를 얻는 것이다. 군사력이나 정치, 경제적 능력 같은 하드 파워(hard power)를 이용하여 상대국에게 강압적인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 오히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1990년. 조지프 나이가 자신의 논문에서 처음 소프트 파워의 개념을 제시했던 때는 미국이 절대강국의 위상을 정립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2004년 <소프트 파워>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을 때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이라크를 침공한 다음 해였다.

애초에 대량 살상 무기 제거라는 명분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미국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경계심이 국제 사회에 확산됐었다. 그러자 미국은 2004년부터 전쟁의 구호를 '이라크 국민의 해방'이라는 보편적 이상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인식은 '역사의 종언' 이전 시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소프트 파워란 개념이 등장한 이유는 그렇게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 500여 곳에 세워진 공자학원


공자학원(孔子學院)이 세계에서 최초로 '공자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세워진 때가 2004년 11월이다. 미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그때, 중국은 소프트 파워 강화에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공자학원은 세계 각국의 학생과 일반인에게 중국어를 보급하고 중국 문화를 홍보하는 소프트 파워 전파의 첨병이다. 이후 그 첨병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서 지금은 전 세계에 공자학원이 500여 개로 늘었으며 규모가 작은 공자학당 1000여 개를 포함하면 세계 곳곳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도 22개의 공자학원과 4개의 공자학당이 있다.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 같은 기관이 중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독일문화원이라고 부르는 곳의 원래 명칭을 공자학원처럼 부른다면 괴테학원(Goethe Institut)이고, 스페인문화원은 세르반테스학원(Instituto Cervantes)이다. 프랑스문화원(Alliance Francaise),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등도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괴테나 세르반테스 같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공자라는 인물을 내세워 자신들의 문화를 홍보하는 것은 훌륭한 전략이다. 공자는 도덕의 상징이고, 찬란했던 황하 문명의 정신적 지주 아니던가. 각국의 대중들에게,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독재 국가라는 거부감을 불식시키기에 공자보다 더 좋은 이미지는 없을 것 같다. 중국 내에서도 공자학원의 설립을 소프트 파워 강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고 있다.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가장 막강했던 시절은 공자의 사상을 진리라고 믿었을 때였다. 그때 중국인들은 유교 문명을 그들이 알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그리고 진정한 문명이라고 생각했다. 유교 문화를 지키는 것이 국가의 권력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는 의미로 워싱턴 대학교의 교수였던 제임스 타운젠드(James Townsend)는 이를 중국의 문화주의(culturalism)라고 개념화하기도 했다.

한(漢)나라 이후로 내려온 유교적 제도와 문화를 따르기만 하면 몽골족도 만주족도 중국을 통치하는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공, 책봉 관계도 그래서 가능했고, 사대주의도 당연하게 여겼다. 공자의 가르침이 행해지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경계선이 되었으며 조선(朝鮮)이 스스로 그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게 할 정도로 소프트 파워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공자학원이라는 명칭에는 그 시절의 향수가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공자학원을 운영하는 본부를 '국가한판(國家漢辦)'이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국가한어국제추광영도소조판공실(國家漢語國際推廣領導小組辦公室)'로서 교육부 직속으로 되어 있다. 명칭을 좀 풀어서 얘기하면 '중국어의 국제적 확산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사무실'쯤 된다. 이 기관이 각국의 학교와 공자학원 설립에 대한 협정을 맺고, 교육 과정을 결정하며 중국어 교사를 선발하여 파견한다. 게다가 중국 유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주기도 하는 등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소프트 파워가 군사력, 정치경제적 능력 이외의 호감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그리 소프트하지 않아 보인다.

▲ 국가한판의 주임인 쉬린과 영국의 뱅고어 대학 부총장인 존 휴즈가 뱅고어 대학 내 공자학원 설립에 서명하고 있다. ⓒwikimedia.org

소프트 파워, 국가가 만들어 내는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공자학원이 상대국의 대학 내에 설립되어 교육 과정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데 중국 당국의 직접적 관리를 받는다는 것이다. 공자학원 교사의 선발 규정에는 중국 정부가 금지하고 있는 어떤 조직에 가입되어 있거나 관련이 있는 자는 교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데, 2013년에 캐나다 대학 교수 협의회(The Canadian Association of University Teacher)에서는 이 규정을 문제 삼아 캐나다의 모든 대학에서 공자학원을 설립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학문의 자유, 투명성, 언론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2014년에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공자학원이 폐쇄됐고, 2015년에는 스톡홀름 대학교에서도 폐쇄됐다. 모두 캐나다와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국가가 주도하는 소프트 파워 강화의 한계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프트 파워는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 나오는 것이다. 매력적인 문화와 보편적 가치는 시민들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과 언론은 아직 미국 사회가 건전하다는 신호를 국제 사회에 보냄으로써 소프트 파워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가의 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중국에서 고대 문화를 선전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해서 소프트 파워가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국제 사회에 어떤 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어가 많이 보급되어 중국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늘었다 해도, 과연 중국의 국영 CCTV에서 하는 보도와 영국의 BBC나 미국의 CNN의 보도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을 더 신뢰할 것인가. 적어도 CCTV가 1순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소프트 파워를 강화한다는 것이 선전을 통해 국가의 이미지를 세탁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보가 만연해 있는 지금 시대에 그런 선전에 경도될 사람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소프트 파워는 문화와 가치 그리고 이상이 진정성을 갖출 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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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륙연구소, 북방권교류협의회, 한림대학교 학술원 등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중국의 관료 체제에 관한 연구로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연구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권으로 읽는 유교> 등의 번역서와 <중국 인민의 근대성 비판>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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