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몽, 복수를 꿈꾼다면 곤란해!

[최성흠의 문화로 읽는 중국 정치] 중국의 꿈(中國夢)과 중국적 근대성(modernity)

흔히 중국인의 역사관은 요순 시대를 그리워하는 복고주의로 묘사되곤 한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들이 오로지 과거로 회귀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나라 전반기에 동중서(董仲舒)를 중심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춘추공양학파는 역사의 발전을 주장했다. 그들이 근거로 삼은 것은 <춘추 공양전(公羊傳)>인데 이는 공자가 노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春秋)>의 주석서이다. 메모 형식에 가까운 짧은 문장으로 씌어진 <춘추>를 공양고(公羊高)가 소전문세(所傳聞世), 소문세(所聞世), 소견세(所見世)의 3단계로 시기를 구분하여 해석을 한 것이다.

동한의 하휴(何休)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는 거란세(據亂世), 승평세(升平世), 태평세(太平世)의 3단계가 발전적으로 순환한다는 삼세설을 제기했다. 다시 말해 공자가 전해들은 할아버지 이전의 세상은 어지러운 세상이었고, 아버지 대에서 경험한 시대는 태평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으며, 직접 경험한 세상은 태평성대였다는 것이다.

사실 하휴의 삼세설은 노나라의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춘추 말기는 더 혼란스러웠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국 시대로 넘어가지 않았겠는가. 아마도 현실의 혼란을 극복하고 미래의 태평성대를 열겠다는 이상주의가 역사관에 반영된 것 같다.

한나라 때 공양학파가 주류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국강병을 꿈꾸던 한 무제와 능동적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자 했던 공양학파의 발전론적 역사관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가가 자리를 잡고 나자 역설적으로 공양학파는 서서히 세력을 잃어갔으며 한나라 이후에는 역사 인식에 있어서 복고주의가 중국을 지배했다.

중국 근대 지식인들이 꿈꾸었던 중국적 근대

공양학이 중국의 역사에 다시 등장한 때는 근대화의 충격이 중국을 강타한 무렵이었다. 아편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유봉록(劉逢祿)과 공자진(龔自珍) 등 몇몇 학자들이 <춘추 공양전>을 재조명했고, 아편 전쟁 이후에 강유위(康有爲)가 삼세설과 사회 진화론을 결합하여 개혁적 정치 사상을 설파하자 양계초(梁啓超)를 위시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이 그의 사상에 동조하여 유신파(維新派)를 이루었다.

인류 역사는 군주제, 입헌 군주제, 민주 공화제의 순서로 진화한다는 것이 유신파의 주장이었다. 강유위가 저술한 <대동서(大同書)>에 등장하는 '삼세진화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특히 그가 그리고 있는 태평세는 남녀를 비롯해 모든 인류가 평등하며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가 임기 동안 통치하는 사회로서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들은 <춘추>라는 공자의 권위를 빌어 근대화를 추진한 만큼 중체(中體)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반드시 삼세진화의 단계를 밟아야 하므로 시종일관 입헌 군주제를 주장했으며 승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태평의 단계로 진입하려는 신해혁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추진했던 변법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신해혁명 후에 벌인 황제 복위 운동은 두고두고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근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방향을 제시한 그들의 이상은 중국 근대화에 초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의 규모와 무기의 성능, 그리고 그것들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이 대외 관계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비단 근대화 시대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늘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서양의 기술을 빌어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것이 근대화는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자각하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인류의 정신적 성장이 근대화의 본질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 경제와 산업화, 사회적으로는 시민 사회 등 왕조 시대와는 다른 구조적 변혁을 이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근대화에의 개념이 경제 분야에만 치우쳐진 담론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가끔 등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식민지의 식민에게 민주주의나 시민 사회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었을 리 만무하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적용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러한 가치를 꿈꾸는 것조차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식민지에 근대화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중국인은 요즘 '중국의 꿈(中國夢)'을 이야기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중국의 꿈과 관련된 공익 광고가 쉴 새 없이 나오고, 길거리 곳곳에서 중국의 꿈을 선전하는 광고판을 쉽게 볼 수 있다. 강국의 꿈, 강군의 꿈, 체육 강국의 꿈, 나아가 허난(河南)의 꿈, 쓰촨(四川)의 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야와 지역에서 그들의 꿈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나의 꿈이 곧 중국의 꿈이라는 구호도 들려온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시진핑 주석이다. 2012년 11월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개최한 '부흥의 길'이라는 전시회를 참관한 자리에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은 근대 이후 가장 위대한 중화 민족의 꿈이다"라며 중국의 꿈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2021년)에 전면적인 소강(小康) 사회를 이룩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00주년이 되는 해(2049년)에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화되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 중국의 길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중국의 꿈' 선전 표어. ⓒwikimedia.org

중국의 꿈에 대한 기대와 우려

소강(小康)이란 말은 <예기>에 나오는 비교적 안정된 사회를 뜻하는 것이고, 2049년에 실현할 사회주의현대화 국가는 <예기>의 표현을 빌리면 대동(大同) 사회를 의미한다. 이를 삼세설의 관점으로 설명하면, 2021년에는 승평세를 달성하고 2049년에는 태평세에 진입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인문학자들은 중국의 꿈을 강유위의 대동서(大同書)에 등장하는 삼세진화표와 비교하면서 구체적이며 과학적이라는 칭송을 하고 있다. 암암리에 공자의 권위를 빌어 시진핑의 통치이념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중국의 꿈을 꾸는 것은 그들의 자유지만 우려스러운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꿈은 궁극적으로 위대한 중화 민족의 부흥이므로 그 기저에는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가 깔려 있다. 시진핑은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의 길을 가야하고, 중국의 정신을 발양해야 하며 중국의 역량을 응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모든 인민에게 부여하여 일사불란하게 사회주의 현대화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근대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배웠지만 근대 민족 국가의 악행도 경험했다. 진화론적 우월감과 우생학적 편견이 만들어 낸 제국주의자들의 만행과 민족주의적 배타성이 일으킨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근대 민족 국가의 대표적인 악행이다. 그 악행의 피해자였던 중국인들이 꾸는 부흥의 꿈이 '복수'의 꿈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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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륙연구소, 북방권교류협의회, 한림대학교 학술원 등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중국의 관료 체제에 관한 연구로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연구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권으로 읽는 유교> 등의 번역서와 <중국 인민의 근대성 비판>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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