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한민국, 터널에서 살아남기"

[프레시안 뷰] "우린 보호받고 있을까"

록볼트라는 공사 자재가 있다. 터널 굴착 공사를 할 때 굴착면을 따라 수직으로 착재하여 암반을 지탱하는 길이 3미터 정도의 쇠막대기다. 이 자재 하나의 가격이 6만 원에 이르는데, 암반 자체에 박아 넣는 것이다보니 공사가 끝난 다음에 설치 유무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 자재를 빼돌리는 비리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지난 2월 17일 KBS 뉴스 보도리포트를 보자.

"지난해 개통한 울산 - 포항 간 고속도로 오천 2터널입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지반 붕괴를 막아주는 '록볼트'가 수천 개나 빠진 채 시공된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곳 외에도 진전과 갈평 터널 등 모두 7곳에서 설계 수량인 10만7000여 개 가운데 30퍼센트인 3만4000여 개의 록볼트가 누락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빼돌린 공사비가 20억 원이 넘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참 많은 사고를 겪었다. 나는 1994년 성수대교 사고가 생각이 난다. 텔레비젼 화면에 칼로 잘린 듯 떨어져 나와 강위에 떠 있는 교각. 그 위에 버스 하나가 거짓말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이 사고로 무학여자중학교 학생 1명과 무학여자고등학교 학생 8명이 시내버스 안에서 목숨을 빼았겼다. 그들은 그날 아침 언제나처럼 잠자리를 벗어나면서 5분만 더 누워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엄마의 채근을 받으며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처럼 집을 나왔을 것이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 오프닝 멘트는 이러했다.

"그렇게 걱정들했는데도 기어이 오늘 성수대교 붕괴참사는 예고된 인재였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성수대교는 2004년 완전 개통 됐다. 이전과 다른 구조와 자재의 사용으로 안전해졌고, 지진에도 대비할 수 있는 다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할 수 없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렇게 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4조 6항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201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보호받고 있을까. 굳이 세월호 참사를 또 불러내지 않더라도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자력 본부'는 우리 나라 전체를 일순간에 회복불가능할 정도의 상황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있다. 1978년 최초의 원자로가 상업가동을 한 이곳에는 지난 2007년 설계 수명이 끝난 1호기가 있다. 검증 결과 10년 더 수명이 연장되어 가동 중인 1호기는 2011년 4월 갑작스레 운전이 중단됐었다. 사고의 원인은 부품 결함이었다.

2013년 신고리 3호, 4호기에 사용된 불량 부품들의 납품 과정에 검증기관과 승인기관까지 조직적으로 관련됐음이 드러났다. 언제나 되풀이되는 '인재'였다. 내부 비리까지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신뢰하기 어려운 원전 23기가 전국에서 가동 중이다. 이 숫자는 2029년이 되면 36기로 늘어날 예정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예상에 따르면, 고리 1호기를 해체하는데 발생하는 비용은 1조 원에 이른다. 발전소 해체에 걸리는 시간만 14년이고, 지역의 토양 복원 등을 감안한다면 2045년 정도가 돼야 비로소 해체가 완료된다. 물론 방사성 폐기물 관리는 별개이다.

2011년 신동아 5월호에는 미국 국방부 컴퓨터 모델로 한국 원전사고 피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가 보도된 바 있다. 그 중 고리1호기의 경우는 주변에 인구 밀집 지역인 부산, 우산, 김해 등이 있어서 인명 피해 숫자가 엄청났다. 10년 이내 사망하는 숫자는 4만여 명에 이르고, 방사능에 노출돼 피해를 보는 사람의 총 인원은 159만 명이라고 예상했다.

언젠가부터 기업의 발목을 잡는 제도를 조정해준다는 미명으로 기준 자체를 낮추거나 관리를 유연하게 해주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절대로 나지 않는 사고는 '절대로' 없다. 그러기에 그 사고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안전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제도규제 개선은 권력을 지닌 자들이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필요 없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 것에 방점이 찍혀야지,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 기준을 낮추는 것이 돼선 안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터널>은 국가 시스템이 보여줄 수 있는 무력함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일상을 살던 시민이 부실 시공 터널 붕괴 사고에 갇히고, 정부 관계자들은 안일하고 무능하다. 언론들은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만 혈안이 돼 있고, 터널 안에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구출된 주인공 정수(하정우 연기)는 장관이 방문할 때 까지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말을 듣고서 한 마디를 한다.

"꺼져, 이 개**들아!"

사람이 사람 대접 받으면서 사람처럼 산다는 것이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다. 우리를 이렇게 지치게 만드는 권력 쥔 자들에게 나도 외치고 싶다.

"정신차려, 이 개**들아!"

▲ 영화 <터널> 속 주인공 정수(하정우 연기)ⓒ<터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신지예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