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박근혜, 중국을 적으로 돌리나

[기자의 눈] 최근 대통령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찰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과 대결 구도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최근 사드 배치로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국내외적으로 많이 나오고 있어서 우려스럽습니다. 누차 밝힌 바 있듯이 사드는 북한의 점증하는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내린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북한은 올해만도 스커드와 무수단, 노동 미사일 등을 수십 발 발사했고, 지난 3일에도 노동 미사일 2발을 발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은 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하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자위권적 조치인 것입니다.

이렇게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는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가치관과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사드 배치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이런 북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황당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는가 하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이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을 한다면서 중국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지금 정부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고, 외교적으로도 북한의 핵 포기와 우리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을 방문해서 얽힌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하고, 정부를 신뢰하고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국내 정치적으로 정부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내부 분열을 가중시키지 않고,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국민을 대신해서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일같이 거친 항의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저를 대통령으로 선택해 준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부디 정치권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일에는 함께 협조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세 가지 키워드다. 첫째, "누차 밝힌 바 있듯이 사드는 북한의 점증하는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내린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 둘째,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이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을 한다면서 중국을 방문"한 행위에 대한 비판,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권 일부에서 사드 배치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이런 북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황당한 주장"에 대한 비판이다.

"중국 입장"을 사실상 배격하라는 박 대통령중국과 '대결주의' 간다는 건가

박 대통령의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발언은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특히 그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야당 의원들의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사실상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이를 불허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고, 풀어서 설명하면 사드 배치 관련 중국의 입장을 전적으로 배격하겠다는 의미로 읽히게 된다. 외교적 유연성 균형 감각을 버리고 결국 중국과 대결 구도로 가겠다는 전략을 말 틈 속에서 내비친 셈이다.

마침 한 언론이 중국 입장을 자세히 소개하는 기사를 냈다. 9일자 <중앙일보>는 1면 톱기사로 "중국, 둥펑3 추적당할까봐 사드 반대"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기사를 작성한 인사는 최근까지 국방부 대변인을 지냈던 김민석 기자다.

▲ <중앙일보> 9일자 1면.

이 기사는 중국이 왜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는지, 중국의 입장을 충실히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이 지린성 퉁화, 랴오닝성 덩사허 및 산둥성 라이우 등에 배치한 탄도 미사일은 각각 둥펑3, 둥펑21, 둥펑15인데, 사정거리로 봤을 때 타격 대상은 각각 괌의 미군 부대(둥펑3), 오키나와의 주일 미군(둥펑21), 한국군과 주한 미군(둥펑15)이다. 미국과 일본, 한국을 사정 거리로 둔 미사일이 미군의 사드 배치로, 사드 레이더에 의한 탐지 대상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과 한국은 북한 미사일 방어 여부는 물론, 결국 중국의 미사일 견제용으로 사드를 배치하는 게 된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누차 밝힌 바 있듯이 사드는 북한의 점증하는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내린 불가피한 조치"라는 발언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사드 레이더의 탐지 거리가 중국의 미사일 기지까지 미친다는 객관적 사실을 서술한 것이니까.

그렇다면, 이 기사는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기사인가? 아니면, 한-미-일 3국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부각시키는 목적의 기사인가? 확실한 것은 둘 다 사드 배치가 한반도 방어 목적을 넘어서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한 기사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는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가치관과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야당 의원들이 방중 후 이같은 내용을 언급하며 사드 배치가 한중 대결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국민 앞에서 브리핑한다면, 박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중국에 동조했다며 비판을 쏟아낼까? 박 대통령이 언급한 "중국의 입장에 동조"라는 발언은, 가치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동조로, 어떤 측면에서는 이해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부쩍 '판관'을 자처하기에 하는 말인데, 내친 김에 <중앙일보> 기사가 중국에 동조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 멀리 나갔다. 중국 입장을 배격하겠다고 시사한 것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 만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자극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아직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을 방문해서 얽힌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라고 지적한 것 역시 중국과 '대결 구도'를 택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박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측근 정치인 출신인 김장수 주중 한국 대사를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에게 보내 "중국은 사드를 문제삼기 전에 북한의 핵, 미사일에 대해 더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연일 의아함을 자아내고 있는데, 주지하다시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오히려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국 역할론'은 올 초부터 정부가 계속 주장한 내용이 아닌가.

시계를 7개월 전으로 돌려보자.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지난 1월 핵 실험을 한 이후 중국과 대북 제재를 위한 공조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자화자찬을 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박 대통령의 '망루 외교'가 일몫을 했다는 말도 나왔었다. 그런데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박근혜 정부는 급변침을 했다. 지난달 17일 외교부 당국자는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이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일-중-러 5개 국가의 공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기본 방향에 대해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모든 국가들이 흔들림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드 배치로 인해) 당연히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는 모순된 상황 진단을 내놓았다. 관료들이 혼란에 빠진 셈이다.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도대체 대통령의 속내는 무엇일까?

우리 정부는 그간 "중국과 공조" 입장이었는데, 갑자기 "대중국 압박"으로 읽히는 전략을 편다. 대통령의 언급한 "그동안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지금 정부는 중국과 공조하는 것인가, 아니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먼저 내는 것이 우선 순위다.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박근혜 정부 대중국 외교의 어지러운 단면(斷面)이다.

▲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오히려 중국에 '한국 지도자가 흔들린다'는 잘못된 신호 준 것은 아닌가?

박 대통령은 중국과 '대결주의'를 드러내면서 입지를 스스로 좁혀버렸다. 관련해 "저는 매일같이 거친 항의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저를 대통령으로 선택해 준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힌 부분도 주목된다.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에 대한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지점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노출했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높았던 지역인 성주에서 4만5000 군민들이 한 목소리로 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해가 간다. 이같은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1일 박 대통령은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저항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고 했었다.

국내에 정치적 저항에 부딛힌 상황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것인데, 이는 역으로 박 대통령이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드러내 준다. 실제 사드 배치 예상 시기는 내년 말이다. 2017년 대선 즈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국제 정세는 급변할 것이다. 올해 말 미국 유권자는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내년 초 미중 관계는 재조정을 겪게 된다. '신냉전'을 이어갈지 '해빙무드'로 들어설지 여부와 별개로, 재조정 자체는 필연적이다.

박 대통령은 이 시기에 집권 5년차를 바라본다. 급격히 힘이 빠지게 된다. 차기 대권 주자에게 힘이 쏠리는 시기다. 임기 1년도 채 안 남은 박 대통령을 중국은 어떻게 생각할까? 중국은 1당 독재 체제다. 정권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일보>는 이날자 "靑 직접 나서 반격中, 회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기사에서 정부의 한 관계자를 인용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중국이 사드 배치 결정 번복까지 기대해 보지 않겠냐"며 "사태가 점점 꼬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태도가 오히려 중국에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만 준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지점이다.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심리, 그리고 주변 상황을 둘러보았다. 세 번째, 키워드다. 야당에 대한 '갈라치기'다. 박 대통령이 야당 초선 의원들을 겨냥, "정치권 일부에서 사드 배치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이런 북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황당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했다는 비판은, 현재 박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해 준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정치권 일부"는 더불어민주당 초선인 김한정 의원의 발언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김 의원 발언의 앞뒤 맥락을 잘랐다는 것이다. 김 의원의 원래 발언은 이렇다.

"이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의 목을 졸라서 항복을 받아서 미사일도 막고 핵을 포기시키겠다라는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해왔지 않았습니까? 시진핑 주석을 작년에 만나서 협조 요청을 해왔는데 지금 갑자기 중국도 필요 없다는 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북한은 오늘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했습니다. 이 문제는 북한으로 하여금 추가 도발을 해도 우리가 할 말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즉 중국과 대북 공조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를 표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발언의 앞뒤 맥락을 자르고 "북한에 동조한다"는 식으로 규정한 후, 사실상 '색깔론'을 덧씌웠다. 그간 수세에 몰려 있던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에 처음 입성한 초선 의원을 '북한 동조 세력'으로 꾸며 위기를 탈출하려 하고 있다. 격도 맞지 않는다. "중국 입장에 동조"하는 6인의 더민주 초선의원들에 대한 비난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목적을 마저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적극 나서줘야 한다. 더민주 초선의원들의 입장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들을 '매국' 세력으로 비판할 빌미가 생긴다. "중국 입장에 동조"하는 것을 배격하는 박 대통령의 발언 의도 역시 단순해진다. '사드 배치=애국', '사드 배치 반대=매국'의 프레임을 짜기 위한 목적 외에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의외로, 중국의 대처는 상당히 침착하다. 더민주 의원 6명의 중국 입국장에 중국 매체 기자들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매체가 대부분 관영이고, 민영을 표방해도 사실상 관의 입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떠올리면, 중국 측의 이같은 반응은 예측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중국 언론에 더민주 초선 의원들이 이용될 것"이라는 '매국의 예언'이 실현되길 원했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녹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치용 추가 공세가 차단됐다. 보수 결집을 노리는 여권 입장에서는 맥이 빠지는 일일 것이다.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도 부쩍 대응 수위를 낮추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여유롭다. 사실 조급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중국과 관계는 지금,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야당은 북한에 동조하는 적으로 돌렸다. 남남갈등은 물론, 한중 갈등은 누가 만들어내고 있는가? 주변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연이은 도발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앞에서, 박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이제 무엇인가?

폭 넓게 움직일 수 있는 외교적 공간과 정치적 공간을 팽개친 후 스스로를 계속 고립시킴으로서, 오직 "고난"만을 "벗"으로 삼은 박 대통령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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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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