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돌에는 '금'이 들어 있습니다!"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사라진 스푼>

요즘은 일회용 용기에 담긴 커피를 플라스틱 스틱으로 저어 먹는 일이 흔하다. 원래는 찻잔에 담긴 커피를 티스푼으로 젓는 것이 맞다. 만약 당신이 금속으로 된 스푼을 뜨거운 커피에 넣었는데 스푼이 녹아 사라진다면 어떨까? 오늘 소개할 책의 제목 <사라진 스푼>(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은 바로 이런 상황을 묘사한 거다.

'갈륨(Ga)'이라는 금속은 녹는점이 29.8도이다. 요즘 같이 낮 기온 30도가 넘는 더위라면 녹아서 액체가 되겠지만, 대개는 고체 상태로 존재한다. 갈륨으로 만든 스푼을 뜨거운 커피에 넣으면 녹아내릴 것이고, 옆에서는 화학자가 낄낄 거리고 있을 거다.

이 책은 원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자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말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다. "세상은 무엇으로 되어 있나?"하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의 답이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원자는 92개이지만, 인공으로 만든 것까지 고려하면 원자의 종류는 118개에 이른다. 핵물리학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이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원자는 원자 번호로 구분된다. 원자 번호를 원자의 주민등록번호라고 봐도 무방하다. 갈륨의 원자번호는 31이다. 이 숫자는 원자핵에 존재하는 양성자의 수를 나타내지만, 이런 걸 몰라도 앞으로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아무 문제없다. 사실 원자의 이름 따위는 필요 없다. 원자 번호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름을 쓰는 것은 순전히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초기에는 원자 번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24651'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장발장'이라고 부르는 게 인간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원자들을 원자 번호 순서로 "적당히" 배치하면 주기율표가 된다. '적당히'가 뭔지 궁금한 사람은 인터넷에서 '주기율표'를 찾아보면 된다. 학창시절 "수헤 리베부신오프네 나마알시프스염아…"라고 원자 이름을 외우던 기억이 난다. 적당히 배치된 주기율표의 세로줄에 위치한 원자는 화학적으로 비슷한 성질을 갖는다.

화학자의 주기율표는 지리학자의 세계 지도와 같다. 주기율표에서는 위치가 곧 원자의 성질을 결정하니까 지도는 은유가 아니라 직유다. 화학자라면 눈 감고 주기율표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눈 감고 서울 지도를 떠올리며 상상 여행을 할 수 있듯이 말이다.

▲ <사라진 스푼>(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해나무
주기율표의 동쪽 끝에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들이 있다. '불활성 기체'가 사는 세상으로, 이들은 다른 원자와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헬륨(He), 네온(Ne), 아르곤(Ar) 등이 여기 속한다. 이들은 원자 단독으로 기체가 되어 돌아다닌다. '나홀로 족'이라 할만하다.

불활성 기체 바로 서쪽 이웃에는 '할로겐족'이라는 호전적인 기체 원자들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북쪽 끝에 최강 전투력을 가진 '불소(F)'가 있다. 2012년 구미에서 누출된 불산이 바로 불소와 수소의 화합물이다. 연구실에는 각종 사고에 대한 행동 지침이 있다. 불산에 대한 지침은 간단하다. 그냥 도망가라는 거다.

불소 남쪽 이웃은 '염소(Cl)'다. 제1차 세계 대전 가운데 독일군이 독가스로 사용한 기체다. 온갖 생명체를 죽이는데 뛰어나기 때문에 세제나, 표백제에 사용된다.

주기율표의 서쪽 끝에도 '알칼리 금속'이라는 호전적인 원자들이 산다. 할로겐과 알칼리, 가장 사나운 두 집단이 동서 양단에서 주기율표 평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형국이다. 나트륨(Na), 칼륨(K) 같은 알칼리 금속은 순수한 상태로 고체를 만들면 물만 닿아도 폭발한다.

하지만 이들이 전자를 하나 잃고 이온이 되면 인체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된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동안 뇌세포를 통해 전달되는 전기 신호가 바로 나트륨과 칼륨 이온의 이동으로 만들어진다.

동서의 호전적인 두 원자가 만나면 안정한 화합물을 형성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염소와 나트륨의 화합물인 염화나트륨으로, 흔히 '소금'이라 불리는 물질이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모든 존재는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으려 한다고 했는데, 소금이 좋은 예다.

주기율표의 중앙 평원에는 전이 금속이 산다. 사실 주기율표 세상에는 금속이 75%다. 이들은 반짝거리는 차가운 고체다. 전이 금속은 (이런 짧은 글에서 설명하기 힘든) 양자 역학적인 이유로 서로 성질이 비슷하다. 그래서 언제나 여러 금속 원자가 뒤섞여 존재한다. 성질이 비슷하니 분리하기도 어렵다. 주기율표 남쪽에는 란탄족과 악티늄족이라는 금속 원소가 사는 작은 대륙이 있는데, 이들도 언제나 뒤섞여 존재한다.

다른 금속과 잘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금속으로 '금(Au)'이 있다. 더구나 금은 다른 원소들과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금속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화되어 녹슬거나 빛이 바래지만, 금은 오랫동안 광채를 잃지 않는다. 단지(!) 이 때문에 금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금속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텔루르(Te)'라는 원자가 금과 결합할 수 있다. 텔루르 화합물 가운데 '캘러버라이트'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금처럼 노란색을 띈다. 물론 금과는 다른 색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금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골드러시 시절의 미국에서 이와 관련한 해프닝이 있었다. '헤넌스파인드'는 사막에 위치한 전형적인 금광 도시였다. 금이 발견되고 처음 몇 달은 물보다 금이 풍부했다고 한다. 금을 채취하고 남은 돌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캘러버라이트에서 텔루르를 제거하여 금을 손쉽게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 사람들은 그동안 내다버린 돌덩어리가 캘러버라이트임을 깨닫는다. 쓰레기 뒤지기에서 시작하여 포장 도로, 인도, 굴뚝이 차례로 박살났음은 물론이다.

전이 금속이 서로 뒤섞이기 쉽기 때문에, 어떤 원자는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한다. 아연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금속 원소다. 주기율표에서 아연 바로 남쪽에 비슷한 성질을 갖는 카드뮴이 있다. 카드뮴이 몸에 들어오면 아연을 대체한다. 불행히도 카드뮴은 아연이 생체 내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대신하지 못한다. 카드뮴이 몸에 축적되면 뼈가 약해진다. 한 의사는 카드뮴에 중독된 여자아이의 맥박을 재다가 손목을 부러뜨린 경우도 있었다.

아연은 전차, 비행기, 탄약 같은 무기를 만드는데도 필요하다. 군국주의 시대 일본은 가미오카 아연 광산에서 아연을 정제하고 남은 카드뮴 찌꺼기를 하천에 흘려버렸다. 이 오염 물질은 지하수로 흘러들었고 1940년대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질병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이타이이타이병'이다.

카드뮴 문제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현지 의사 하기노 노보루였다. 예상할 수 있지만, 문제의 광산 운영에 책임이 있는 미쓰이 금속 광업은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 한다. 10년의 공방 끝에 미쓰이는 결국 보상금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 <돌아온 고질라>를 보면 일본 군대가 고질라를 죽이기 위해 카드뮴 폭탄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카드뮴에 대한 일본인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맛보기로 이 책에 나오는 원자들의 이야기 몇 가지만 골라 소개해보았다. 이 책은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세상 모든 것의 이야기는 원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푼은 사라질 수 있지만, 원자는 영원불멸한다. 원자가 만드는 이야기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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