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50점짜리 '과학' 책이다!"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빅뱅>

해외에서 큰 명성이 있었던, '빅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두꺼운 책이 번역 출판되었다고 하자. 출판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꾸준히 팔리고 있고 독자들의 평도 대체적으로 호의적이라고 하자. 먼저 나는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읽기로 했다면 나는 그 책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자문해 보았다.

천문학을 전공한 나는 상대적으로 대중 천문학 책을 읽어볼 기회가 적었다. 독서의 시간이 주어지면 선택은 늘 문학책이나 미술책에게로 기울었다.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대중 천문학 책을 정독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작가들이 도대체 어떻게 천문학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을까 하는 스토리텔링 형식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몇 권을 읽으면서 놀라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과 형식이 반복되는 책들을 겹쳐 읽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피로감도 몰려왔다. 호기심은 다소 감소되었다. 오히려 작가들이 털어놓는 소소한 에피소드나 과학적 발견의 뒷담화가 이런 책들을 읽는 주된 동력과 즐거움이 되었다. 독자와 평자의 경계선에서의 대중 천문학 책 읽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평판이 좋은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읽을 때는 그 자체의 상징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작가의 평판이 책의 내용의 질을 어느 정도 담보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기대하면서 책 읽기를 시작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 <빅뱅>(사이먼 싱 지음, 곽영직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영림카디널
그러다보니 어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작가의 그동안의 평판에 바탕을 두고 기준을 정하게 된다. 저명한 작가가 쓴 책에는 더 큰 기대와 엄격한 기준을 정해놓고 살펴보게 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에 대해서는 반대로 그 가능성과 시도에 초점을 맞춰서 좀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그동안 내가 썼던 서평 에세이를 돌아보면 대체적으로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빅뱅 : 우주의 기원>(사이먼 싱 지음, 곽영직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도 번역 출판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좋은 평판을 이어가고 있는 그런 책들 중 하나다. 오랫동안 읽어보지 못하고 책장에만 꽂아두었던 <빅뱅>을 꺼내들었다.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3분의 1쯤 읽다 보니, 550쪽에 이르는 저명한 작가의 '빅뱅'이라는 제목을 붙인 책에서 내가 기대한 것은 빅뱅 우주론에 대한 한 권의 자체 완결성을 지닌 레퍼런스 북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현대 우주론의 패러다임인 빅뱅 우주론에 대한 대중 과학책이 마땅히 갖춰야할 덕목을 이 책이 모두 갖췄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빅뱅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와 빅뱅 우주론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균형감 있게 전개되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빅뱅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는 이 우주론이 태동하고 확립되어온 과정에 대한 과학사적 고찰에 대한 기대였다. 이론과 관측,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망라하고 문제점과 미래를 성찰하는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빅뱅 우주론 자체에 대한 내용은 그 핵심 개념과 이론적 토대 및 관측 결과에 대한 천체 물리학적 설명에 대한 기대였다.

<빅뱅>의 감사의 글에 적시되어 있는 것처럼 사이먼 싱은 빅뱅 우주론 논쟁에 직접 참여했던 많은 천문학자들을 인터뷰했다. 수많은 1차 자료를 뒤지고 정리했다. 그런 지은이의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든 책이 바로 <빅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빅뱅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풍부하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와 결정적인 순간에서의 천문학자들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빅뱅 우주론이 현대 표준 우주론으로 자리를 잡기까지의 인류의 우주론의 변천사로부터 시작해서 빅뱅 우주론의 이론적, 관측적 성공과 실패 과정이 생동감 있고 일상적인 언어로 기술되어있다. 사이먼 싱의 글에는 과학사적 고찰 뿐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연민도 과학자 사회에 대한 성찰도 들어있다. <빅뱅>은 빅뱅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훌륭한 책이다.

"에딩턴은 그림 64와 같이 3차원 공간을 2차원의 폐곡면인 풍선 표면을 예로 들어 이 상황을 설명했다. 만일 풍선의 지름이 처음보다 2배가 되도록 부풀린다면 두 점 사이의 거리는 2배가 될 것이다. 따라서 두 점은 서로 멀어진다는 결과가 된다. 중요한 것은 점들이 풍선의 표면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대신 팽창한 것은 표면이었고 그 결과 두 점 사이의 거리가 2배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하가 공간을 통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은하 사이의 공간이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팽창 우주를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고무풍선의 비유가 천문학자 에딩턴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 것은 이 비유를 강연이나 집필에 자주 활용하고 있던 내겐 큰 수확이었다. 288쪽의 그림 64에는 팽창 우주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바로 그 풍선의 비유가 그려져 있다.

▲ 팽창 우주를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고무풍선 비유의 한 예. ⓒoneminuteastronomer.com

'빅뱅'이라는 용어는 빅뱅 우주론에 반대하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이 BBC 라디오 방송 중에 경멸하듯이 던졌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정확한 출처를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이 늘 있었지만 게으름 탓에 미루어주고 있었다. 사이먼 싱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호일이 1950년 BBC 라디오 방송에서 '빅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상황을 잘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것도 내겐 작은 수확이다. <빅뱅>은 이런 작은 선물을 도처에 숨겨놓고 있는 보물 같은 책이다. 그가 직접 듣고 인용한 호일의 라디오 방송의 일부를 옮겨 적으면 이렇다.

"그중 하나는 우주가 유한한 시간 전에 하나의 커다란 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오늘날의 팽창은 이 격렬한 폭발의 유물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 '빅뱅' 아이디어가 탐탁지 않습니다. (…) 과학적인 근거를 놓고 볼 때 이 빅뱅 가설은 두 이론 중에 훨씬 가능성이 적은 쪽입니다. (…) 철학적인 근거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빅뱅 가설을 선호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빅뱅>은 빅뱅 우주론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는 다소 미흡한 면이 있는 책이다. 빅뱅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에 비해서 빅뱅 우주론 자체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에 상대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빅뱅 우주론의 핵심적인 개념인 팽창 우주에 대한 이야기만 하더라도 양적인 측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충분하지 않다. 빅뱅 우주론에 대한 서술이 80퍼센트였다면 빅뱅 우주론에 대한 내용은 2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용의 질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지는 것 같다. 그만큼 <빅뱅>이 빅뱅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팽창 우주 쪽 내용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부실했던 데 비해서 빅뱅 핵융합 부분은 상대적으로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빅뱅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 전개가 형식의 균형감이나 내용의 질과 양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던 것을 고려하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에필로그'를 쓰기 바로 전 단원의 마지막 줄에 사이먼 싱은 이렇게 적어두었다.

"우주학에는 혁명이 있었고 빅뱅 모델은 결국 받아들여졌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완성된 것이다."

나는 <빅뱅>을 두 마리 토끼를 쫓았지만 아직은 한 마리 토끼만 잡은 미완의 대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직은 빅뱅 우주론에 대한 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직은 빅뱅 우주론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 대해 서술한 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직은 빅뱅 우주론에 대한 서술 95점, 빅뱅 우주론 자체에 대한 서술 50점을 주고 싶다. 이 부분이 재배열되고 강화된 새로운 <빅뱅>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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