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장학생' 힐러리, 샌더스 잊었나?

부통령에 팀 케인 지명…개혁보다 안정 우선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팀 케인 버지니아 상원의원을 지목했다. 참신함과 진보성보다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58세인 케인은 기성 정치권에 속하는 주류 인사다. 그는 1998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시장을 거쳐 버지니아 부지사와 주지사를 지내는 등 20년 동안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

케인은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 다음날인 23일(현지시각) 오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플로리다 국제대학에서 열린 유세에 클린턴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클린턴은 케인을 "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진보적인 사람"이라며 "신문 헤드라인을 만들기보다는 차이를 만드는데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케인이) 기꺼이 여야를 넘나들며 일하고, 더 진보적인 대의에 헌신하려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부통령후보로서 적격이라는 것에 단 한 점의 의문도 없다"고 했다.

케인은 총기 규제 등에 관한 의지를 밝힌 뒤 클린턴에 대해 "다리를 놓는 대통령", "아이와 가족을 우선하는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웠다. 반면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선 "막말을 하는 대통령", "자기를 우선하는 대통령"이라고 대비시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힐러리 승리 펀드'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케인은) 낙관론자이자 클린턴 전 장관과 같은 진보적 투사"라며 "그는 교사와 철강노동자의 아들이어서 노동자 가정이 늘 그의 정신 속에 존재한다"고 칭찬했다.

케인이 진보주의자?

케인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가톨릭 신자다. 그의 부통령 지명은 히스패닉 등의 지지를 확장하기 위한 클린턴의 포석으로 보인다.

케인은 외교, 교육, 사법정의 분야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보여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화당에서 이탈하는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지도나 참신성이 떨어지는 그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효과가 클린턴에게 얼마나 득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샌더스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먼저 제기되고 있다.

우선 케인은 미국 대형은행의 규제 완화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로 인해 버니 샌더스가 점화시킨 '월가 개혁'과는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샌더스 지지단체 '피플 포 버니'의 공동설립자 위니 웡은 온라인매체 바이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캠프가 정말로 샌더스 지지자들을 끌어들이고 싶었다면 진정한 진보 성향의 인물을 러닝메이트로 골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 등 월가 개혁에 적극적인 인물이 배제된 데 대한 비판이다.

민주당은 오는 25일부터 시작되는 전당대회에서 샌더스 효과에 힘입어 최저임금 인상, 대학 등록금 면제 등 일부 사회 정책에서 진보적 의제를 담은 정강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정강정책에는 기존 무역협정 재검토 등 보호무역 기조도 강조될 것으로 보여 정․부통령의 근본 성향이 이와 어긋나는 점은 논란거리다.

케인은 관세와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패배자의 정신 상태를 갖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을 정도로 자유무역 신봉자다. 그는 지난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신속협상권을 지지하기도 했다. 클린턴은 상원의원과 국무장관 시절에는 TPP를 지지했지만 대선 캠페인 기간 중에는 "현 상태의 TPP에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다.

부통령 후보 지명 직후 공화당 쪽에선 케인의 부패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케인 의원이 버지니아 주지사와 부지사로 근무하던 지난 8년여간 20만1천 달러어치의 선물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 선물은 당시 버지니아 주 법으로는 합법이었다. 하지만 케인 의원의 후임인 공화당 소속 밥 맥도널은 받은 선물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연방 당국에 의해 부패 혐의로 기소됐다.

클린턴과 케인은 25~28일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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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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