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된 공간에서 사용되는 차량용 에어컨을 비롯해 공기청정기와 가정용 에어컨에 장착된 항균필터에서 유독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업체들은 이 유독물질이 공기 중으로 방출되지 않거나, 방출되더라도 극히 미량에 불과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1일 환경부가 조사해 발표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문제의 항균필터를 장착한 제품을 가동할 경우 초기에 집중적으로 유독물질이 방출돼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공기 중에서 포집된 유독물질의 양은 미량"이라면서 "인체 유해성은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부문"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밀폐된 환경에서 사용되는 차량용 에어컨의 경우 환경부 조사 내용 자체만으로 이런 유독물질이 포함된 항균필터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환경부는 공기청정기 4개 모델과 차량용 에어컨 3개 모델로 표본 실험했다. 공기청정기를 5일간 사용한 결과 해당 필터에서 유독물질 OIT(옥틸이소티아졸론)가 25~46% 방출됐다. 반면 차량용 에어컨은 8시간 사용에 26~78%의 OIT가 나왔다. OIT는 가습기 살인 살균제 사태를 일으킨 독성물질 중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유사한 물질로, 2014년 환경부가 유독 물질로 지정했다.
그런데도 이 물질이 포함된 항균필터가 국내에서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관련 규제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필터제조업체인 3M이 OIT로 항균기능을 강화한 필터는 한국에만 납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독성물질로 항균 기능을 강화한 가습기 살균제가 한국에서만 유통된 것과 판박이다.
차량용 에어컨, 문제의 항균필터 장착됐는지 직접 확인해야
22일 환경부가 문제의 항균필터가 장착된 공기청정기와 가정용 에어컨 제품 모델들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하지만 차량용 에어컨의 경우 필터 교체가 자주 있기 때문에 차량 모델과 연식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차량용 에어컨의 경우 당초 현대모비스와 두원에서 제조한 차량용 에어컨에만 OIT가 함유된 항균필터가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스터케미칼, M2S, ICM, 청솔, Genpen 등 다른 차량용 에어컨 제조업체들도 3M에서 OIT 항균필터를 공급받아 전국 대리점에 교체용 에어컨 필터로 판매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결국 차량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차량에 장착된 에어컨 필터 모델을 확인해야 한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위’ 우원식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항균필터 문제도 국정조사 사안으로 다뤄 국민 생활에 깊이 스며든 유해 화학물질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차량용 에어컨에 장착된 OIT 함유 항균필터는 모두 12종으로 집계됐다. 항균필터를 제조한 회사는 3M과 씨앤투스성진 등 2곳이다.
출시 기준으로 현대모비스는 카니발(14년식) 산타페(2012, 2015년식) 쏘렌토(2015년식), 제네시스(2014년식) 등 61개 제품모델에 3M 항균필터를 사용했다. 이밖에도 씨앤투스성진의 항균필터는 무쏘, 체어맨, SM5, QM3, 제네시스, 로디우스 등 국내 대부분의 차종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가정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 장착된 문제의 항균필터는 모두 3M이 제조, 납품한 것이다.
가정용 에어컨 제조사별로 보면 LG전자가 25개, 삼성전자가 8개 등 33개 모델이다. 공기청정기는 쿠쿠가 21개(업체 측은 중복 계산돼 실제로 10개라고 주장), LG전자 15개, 삼성전자 8개, 위니아 4개 등51개 모델이다.
환경부는 3M이 문제가 된 항균 필터를 자진 회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수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회수 명령이 내려지는데, 이를 어긴 업체는 3년 이하 징역형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충격적인 것은 항균필터를 만든 3M이나 이를 사용해 가정용 에어컨, 공기청정기, 차량용 에어컨 등의 부품으로 사용한 제조사 모두 유해화학물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는 기업들만 믿다가는 어떤 화학물질의 공습이 진행 중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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