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가 최선이다

[민들레] 체험활동, 질적인 도약을 위하여

체험활동,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을까

요즘같이 다양한 체험거리가 널브러져 있는 시대를 사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여전히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바닥 수준이다. 아직 모자란 걸까? 무엇이 더 채워져야 하는 걸까? 더 많은 체험의 기회가 필요한 것일까?

체험활동 프로그램의 효과를 보여주는 연구들은 제법 많다. 체험활동 참가는 성취동기·자아정체성·진로성숙도 같은 변인의 점수를 높여주고, 불안이나 부적응과 부정적인 심리정서적 변인의 점수들은 낮춰준다. 심리‧정서적인 변화뿐 아니라 지적인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체험활동의 경험이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증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1) 이에 따르면 어린 시절 체험의 양은 많을수록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체험활동 프로그램의 효과를 너무 맹신할 필요도, 너무 민감할 필요도 없다. 체험활동의 효과가 허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그램 참여 전과 후를 비교해서 프로그램이 정서적·지적 발달에 긍정적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전-사후 검사 결과 오히려 점수가 낮아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런 것들은 거의 보고되지 않는다.2)

마찬가지로 체험학습 이후 높아진 점수를 마냥 좋다고만 볼 수도 없다. 단기적인 효과를 측정한 연구들을 종합하면 결국 많은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자연스럽게 정서적‧지적 발달이 촉진된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결과에는 너무 여러 가지 변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측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나는 이것을 '보이지 않는 경로(invisible path)'라고 부른다. 이 '보이지 않는 경로'를 거치는 다양한 활동의 효과를 측정하는 방법은 잘 개발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 경로는 혼돈(Chaos)현상과 같아서 제대로 측정한다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

체험활동이 장기적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하는 것은 인문사회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정책 입안자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체험활동이 가져오는 경제적인 효과를 계산하거나, 비용-편익분석을 하거나, 장기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나 수입 또는 직업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도 한다. 행복지수 향상이라는 매우 포괄적인 효과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 대전 갑천중학생들이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전지방청을 방문해 진로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전국 중학교에 전면 시행된 자유학기제의 모델이 된 전환학년제(Transition Year)를 운영하는 아일랜드나 우리보다 앞서 청소년들의 체험활동 참여를 강조해오고 있는 일본 역시 이런 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각국 정부가 이 점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체험활동의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력 저하론자들의 비판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전환학년제에 참여하는 것이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가져오지 않으며 오히려 향상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일본 정부는 체험활동 참여가 활발한 지역의 학업성취도 더 높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이러한 결과들은 한편으로는 성적이 더 우수하거나 더 혜택받은 지역, 한 마디로 본래부터 학력수준이 높은 지역이나 학교에서 체험활동의 효과가 더 두드러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오히려 체험활동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속화시킨다는 반박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체험활동이 스펙 확장의 도구로 이용되거나, 프로그램 질의 학교 간, 지역 간 격차를 유발하는 등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는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목고나 자사고와 같은 학교의 체험활동은 다른 학교들에 비해서 우수하며, 자부담을 포함한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되기도 한다. 게다가 교사나 학생들의 동기도 충만해서 더 효과적이며, 스펙 관리에도 더 유리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교육 시장이 이 틈새를 누구보다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힘든 게임을 해야 한다. 따라서 체험활동의 효과는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하나의 효과만으로 평가되기 힘들다.

체험활동의 효과를 높이는 외부 요인

학부모들은 여전히 체험활동보다는 학력 향상에 더 관심이 있다. 체험활동의 교육적 의미는 오래도록 강조되어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학교 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본 경험이 일천한 까닭인지 학교 밖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자 공부 걱정에 안달이다. 체험활동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아무리 홍보를 해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경쟁은 그대로 있으니, 불안이 가실 리 없다. 이 현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본보기가 될 프로그램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그것이 학교를 통해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허사다. 프로그램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의외로 '프로그램의 외부'에 있다.

▲ 어린이들이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양재천 인근 벼농사학습장에서 모내기 체험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 가지는 학교 내부의 변화에 있다. 한마디로 학교 혁신이다. 단순히 체험활동을 더 많이 시키는 혁신이 아니다. 양에만 승부를 거는 것은 초기의 양상이다. 양에만 승부를 걸어서 실패한 사례는 국내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성공한 사례는 '양'보다는 '질'에 더 신경을 쓴다. 이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교에서의 체험활동이 증가하며, 양적인 확장에만 관심을 두는 현상을 한 마디로 '외주화'라고 할 수 있다. 돈만 있으면 더 양질의 강사를 초빙할 수 있고, 더 좋은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에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질'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좀 더 좋은 방식의 '외주화'가 아니다.

물론 더 좋은 프로그램과 체험 장소를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학교혁신은 교육과정의 유연한 운영과 연계성 확보를 포함해야 한다. 자유학기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다는 점은 이미 정부도 알고 있고, 또 강조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학교가 얼마나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학교의 오랜 관행 때문에 말처럼 쉽지 않지만, 교육과정의 혁신 없는 사례는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교육과정의 혁신’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학교 구성원이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이 앞장서서 만들어진 사례도 있지만, 학교 혁신의 근본은 학교 조직의 혁신에 있다. 단순하게 보면 교장의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여기에 '열정적인 교사'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학교나 열정적인 교사는 있다. 문제는 학교 조직이 그 열정을 얼마나 뒷받침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장의 탁월한 리더십과 교사의 열정이 맞물려 만들어진 좋은 사례가 가장 많다. 그렇지만, 이런 사례가 더 확산되고, 또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학교 조직 전반에 대한 혁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교장의 리더십은 카리스마보다는 민주적이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리더십이 아닌 학교 조직문화의 역동으로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질적인 전환(Transition)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이나 교육과정이 아니라 조직이다. 일단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면, 프로그램의 질은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무엇보다 교육과정 실행자인 교사들의 동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신 나는 일이 아니라면, 교장 선생님이 바뀌고 열정적인 일부 교사가 빠져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두 번째 방법은 학교 조직의 역동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이기도 한 지역사회와의 연계이다. 많은 학교가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교육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경험은 미숙하다. 초기 단계의 지역사회 연계는 지역사회 자원의 발굴이라는 기계적인 연계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체험활동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역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축적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 연계는 유기적인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체험 장소를 발굴하고, 관리하고 연결하는 네트워커들이나 교사들이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기에 십상이고, 그래서 자칫 형식적인 활동에 그칠 수도 있다. 이른바 '외주화' 현상에 머무르는 경우다. MOU 체결, 체험 장소의 발굴. 이 또한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기계적인 연계는 결국 지역사회와 학교의 피로를 누적시킬 공산이 크다. 학교가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데 미숙하기도 하지만, 지역사회가 학교와 같이 호흡할 만큼 여유롭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공동체' 또는 '마을학교'라는 용어를 이미 흔하게 쓰고 있지만, 제대로 지역사회와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호 간 네트워크의 경험이 부족할 뿐 아니라 도시의 골목에는 마을학교를 만드는 데 참여할 여유가 없는 영세업자들이 많아 진로교육 차원에서의 직업적인 롤모델이나 장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대응이 용이한 것은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은 진로교육법에 의거해 의무적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사회 연계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민간영역이다. 이들 자원은 그저 단순한 지역사회 자원이 아니라 서로 호혜적인 파트너여야 한다. 학교는 지역사회 자원이나 전문 인력을 대등한 관계로 대해야 한다. 지역이 학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지역이 함께 교육하고, 함께 마을을 만들어가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외주화'가 아니라 '네트워크'여야 한다는 말이다.

▲ 어린이들이 지난 6월 국회로 체험학습을 나왔다. 사진 오른쪽 '할아버지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연합뉴스

아이들이 꿈을 찾을 수 있는 골목과 마을이 될 수 있도록 공동의 목표선을 세워, 양자 간의 연계가 지역사회와 골목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전환이 단순히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경제나 마을공동체 사업의 확산도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지역사회 균형발전 정책, 중소기업 프렌들리 정책, 영세업자들에 대한 지원강화도 필요하며, 기술인에 대한 우대와 직업교육 강화 정책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정책들이 골목을 살리는 정책이라면, 대기업 친화적인 정책이나 수도권 중심의 정책 그리고 직업교육 홀대는 하나같이 지역과 골목의 붕괴를 부추기는 정책들이다. 지역을 살리는 정책은 당장은 교육과는 멀게 느껴지지만 실은 교육을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다.

청소년의 '자기주도성'이 최선의 방법

학교 혁신과 지역사회 연계가 체험활동 프로그램의 외적인 요인이라면, 체험활동의 질을 높이기 위한 궁극의, 최선의 방법은 청소년의 '자기주도성'이다. 의외로 청소년의 '자기주도성'은 학교 혁신과 지역사회 연계와도 맞물려 있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 가장 안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자기주도적인 체험활동 참여는 적극적으로 체험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수준에서는 자신들의 관심사로부터 시작해 청소년들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형태의 참여를 의미한다. 이때 교사나 지도자들이 해야 하는 것은 최소의 개입이다. 즉, '최소'가 최선이다. 아주 쉽지만, 아주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교사나 지도자들은 이런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청소년의 자기주도성이 확보되면 체험 장소를 발굴하거나 연결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뒤따른다. 동아리 활동은 이렇게 운영할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다. 동아리는 기본적으로 학생 공동의 관심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동기가 있으며, 또 자기주도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험의 양이 아니라 동기의 형성과 지속적이거나 연계된 활동의 참여이다. 어딘가에 푹 빠져든 아이들에겐 체험 장소의 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반드시 어딘가 체험하러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청소년들의 자기주도적 활동 참여는 지역격차를 해소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자유학기제에서 비롯된 공교육 안에서의 '체험활동'이 더 자율적인 선택지 안에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대상, 시기도 더 다양해져야 한다. 한 학기일 수도 있고, 1년일 수도 있으며, 몇 개월일 수도 있어야 하며, 몇 주씩 수차례일 수도 있어야 한다. 중학교일 수도 있으며, 초등학교 혹은 고등학교일 수도 있어야 한다. 다양한 개인의 관심사를 집단 활동으로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들 각자가 자기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고도 좋은 교육방법이다. 어른들의 오래된 관습, 즉 일일이 찾아주고, 가르쳐주고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포기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다. 그리고 이 강박은 가장 최악의 선택인 '외주화'에 기대게 만든다.

창의성에 불을 지피는 단초는 관심과 즐거움이다. 그래야 몰입이 가능하다. 몰입은 주로 집단이 아닌 개별적인 활동에서 가능하다. 체험활동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잘 제공되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관심영역을 갖게 되고 개인적인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체계성보다는 자기주도성이 더 중요해진다. 덕후든 어린 전문가든 뭔가에 몰입하여 활동하는 아이들에게서 창의성은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그들은 훗날 지역에서, 골목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무엇인가로 삶을 꾸려가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각주

1) 스포츠 활동 참여가 지적인 발달과 성적 향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지만, 스포츠 활동 자체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기보다 스포츠 활동을 많이 하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본래 낮았던 것과 관련이 있다. 오히려 스포츠 활동이 뇌 혈류량을 증가시켜 특정 지능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2) 그렇다고 낮아진 점수가 프로그램의 부정적인 효과를 입증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기적인 프로그램의 효과를 측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서 오는 것일 수 있으며, 측정도구 혹은 프로그램의 문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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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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