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쿠데타 진압한 에르도안 골칫거리

IS 격퇴전, 난민 대책에 차질 빚을까 전전긍긍

군부 쿠데타를 6시간 만에 진압하고 정치적 입지를 새롭게 다진 레제프 타이미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미국과 유럽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대테러 정책과 난민 문제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 군부 쿠데타 발생 직후 미국과 유럽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을 지지한다"며 즉각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에르도안 정부가 '민주적'이어서라기보다 터키 정세의 현상 유지를 바라는 서방의 입장이 투영돼 있다.

서방이 에르도안 정부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힌 이유는 무엇보다 이슬람국가(IS) 격퇴전과의 긴밀한 관련성 때문이었다. 터키는 IS의 거점인 시리아, 이라크와 접경국이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주도해 벌이고 있는 IS 격퇴전의 거점이 터키다. 서방은 터키가 IS 격퇴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위주의적인 통치 방식을 완화하기를 희망해왔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 실패 후, 에르도안 대통령의 행보는 서방의 희망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그는 서방의 지지 표명으로 확보한 정권의 정당성을 터키 내부의 반대세력 탄압에 활용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이스탄불 파티흐 모스크에서 엄수된 쿠데타 희생자 장례식에서 "암세포처럼 바이러스가 국가를 뒤덮고 있다"며 "모든 국가기관에서 바이러스 박멸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6000여 명의 쿠데타 가담 세력을 연행했다. 여기엔 군인들뿐만 아니라 판검사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대대적인 '피의 숙청'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철권통치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의 입지 강화는 미국이 수행하는 IS 격퇴전에 럭비공 같은 변수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불확실성은 쿠데타 발발 직후 터키가 안보상의 이유로 인지를릭 공군기지 상공을 이틀간 폐쇄한 대목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대러시아, 대중동 정책의 거점을 터키가 임의로 폐쇄하자 미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인지를릭 공군기지에는 미국의 B61 핵폭탄 약 50기가 21개 지하창고에 나누어져 있다. 이 기지는 IS를 폭격하는 전투기와 무인기(드론)가 출격하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과학자협회(FAS)의 핵무기 전문가 한스 크리스텐슨은 "미국이 터키와 인지를릭 기지에 핵무기를 비축하기에는 안전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진짜 끔찍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빨리 핵무기를 철수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에르도안 대통령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쿠데타 전부터 엿보였다. 미국은 IS 격퇴전에 터키의 보다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해왔지만, 터키는 미국이 IS 격퇴전의 파트너로 쿠르드계 반군을 지원하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이 정권 붕괴를 노리는 시리아 바샤를 알 아사드 대통령과 우호적 외교관계를 펴는가 하면,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와도 협력적인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

러시아와 터키의 관계는 지난해 11월 터키 공군이 시리아와의 접경지에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한 사건이 벌어진 뒤 극도로 악화됐다. 그러나 쿠데타 발생 뒤인 17일 터키 관영 아나돌루 통신이 내달 초 에르도안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계획을 알렸다.

쿠데타 진압으로 입지를 다진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과 유럽의 IS 격퇴전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러시아와 화해 기류로 선회할 경우 미국의 대테러 전략은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터키의 모든 당사자가 법치에 따라 행동하고 추가 폭력이나 불안정을 야기할 어떤 행동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녹아있다.

유렵연합(EU)도 최대 현안인 난민 문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중적 태도에 불안해하고 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터키는 유럽 난민 문제에서 수문장 역할을 해왔다. 지난 3월 터키와 EU는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을 떠안는 대신 EU가 비자 면제, 경제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의 송환 협정을 맺은 뒤 EU로 들어오는 난민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번 쿠데타로 인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친이슬람주의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가 지지 세력 확보를 위해 난민 통제에서 손을 떼면 유럽의 난민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현재 터키에는 300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 난민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기도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 3일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유럽을 긴장시켰다. 이렇게 되면 난민들이 시리아 국적을 얻으면 터키 외부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와 관련해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우리는 터키에서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란다"며 "이것은 에르도안에게 (정적을 숙청해도 된다는) 백지수표가 아니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세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도 독일 dpa통신 인터뷰에서 "EU 장관 회의에서 유럽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어디가 한계인지를 명확히 제시할 것을 요구하겠다"며 "법을 무시한 숙청과 처벌은 어떤 경우에도 안된다"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많은 EU 정상들이 난민 차단이라는 목표 때문에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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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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