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니껴? 당장 벌 빼이소!"

[작은책] 1200통 대군을 꿈꾸다

꿀벌 농사꾼들은 남쪽에서 아카시아 꽃봉오리가 맺힌다는 소식을 들으면 3층까지 올렸던 벌통을 2층으로 압축해 채밀군(採蜜軍)을 빵빵하게 꾸린다. 작년에 우리 부부가 정착한 강원도 평창 청옥산의 봄은 기온이 낮고 일조량이 적어 여왕벌의 산란이 저조했기에 벌통 안이 헐렁했다. 그래서 아카시아 꽃봉오리가 버선발 모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우리도 부랴부랴 채밀군을 꾸렸다.

청옥산에 남겨 두고 갈 다른 벌통에서 곧 태어날 번데기판은 물론이고, 이제 막 번데기판이 된 벌집판까지 빼다 넣어 스무 통의 채밀군을 겨우 만들었다. 그리고 따뜻한 남쪽에 가서 벌이라도 키워 올 심산으로 알판까지 끼워 넣어 열 통을 더 만들었다. 우리의 1톤 트럭에는 2층짜리 계상을 2단으로 쌓으면 딱 30통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새 벌통으로만 꾸려져서 깔끔하고 짜임새 있어 보였겠지만, 벌통 속을 아는 우리 부부는 속이 탔다. 하여간 우리는 그렇게 이동 양봉을 떠났다.

ⓒ이순이

우리의 첫 이동 양봉지는 경북 군위군이었다. 해가 져야 벌들이 벌통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양봉인들은 한밤중에 이동을 한다. 이동 양봉을 갈 때에는 팀을 이루어 가는 것도 중요하다. 꿀을 뜨는 날에 최소한의 일손이 있어야 채밀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창 아저씨와 팀을 이루고 채밀날의 일손들까지 미리 짜놓고 출발했다. 저녁 8시에 출발해서 평창 아저씨의 군위 봉장(蜂場)에 도착하니, 12시 반이 넘었다. 군위에 살고 있는 양봉인 세 분이 마중을 나와 있다가 벌통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멀리서 왔다고 그렇게 환대해 주니, 참 고마웠다.


평창 아저씨의 벌통을 배치해 두고 우리 봉장에 가 보니 아카시아 나무가 덜렁 네 그루만 보였다. 게다가 그 아카시아 나무와 봉장 사이에 2차선 도로까지 끼어 있었다. 평창 아저씨네 봉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봉장이었다. 군위 사람이 "아카시아 나무 네 그루에서도 꿀 세 드럼은 너끈히 따니까 걱정마셔요. 어, 근데 정말 네 그루밖에 없네!"라고 농담까지 하니까 허탈함이 짜증으로 바뀌었다.

ⓒ이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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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한낮까지도 벌들은 그곳 지리를 익히느라 분주하고 시끌시끌했다. 이동 오기 전날 정리채밀로 벌집의 꿀을 다 털려서 쫄딱 굶고 있던 벌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빨리 익히고 아카시아 꽃에 붙어 꿀을 먹을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사륜오토바이 뒤에 짐수레를 달아 아이들을 태워 가던 할머니가 봉장 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할머니는 손주 셋을 데리고 봉장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벌을 구경시켜 주러 온 것인 줄로 생각하고는, "안녕하세요? 그렇게 들어오시다 벌에 쏘이면 위험해요"라고 말하며 달리다시피 걸어 나갔다. 그 할머니는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떨궈 놓고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나만큼 빠른 속도로 봉장 중간까지 걸어 들어오셨다.

ⓒ이순이
"어디서 왔니껴?"

그렇게 묻는 할머니의 얼굴에 화가 묻어 있다는 걸 파악하지 못하고 평창에서 왔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우리 집은 쩌어기 보이는 다리 건너에 있어요. 나도 벌을 멕여요. 그란데 이라면 안 되지요. 우리 소보 사람이면 몰라도 외지 사람이 들어와서 벌 먹이를 가로채면 안 되지요. 이런 법은 없습니더! 우리 아지베미도 벌을 멕이고요. 내가 벌을 판 집도 있고요. 그란데 이라면 안 되지요. 이런 법은 없습니더! 경우가 아니지요. 오늘 저녁에 당장 벌 빼이소!"

할머니는 법과 경우를 계속해서 들먹이며 당장 봉장을 비우라고 했다. 그 봉장은 스님의 봉장이고 스님이 벌을 다른 봉장에 놓는 대신에 우리가 들어온 것이고, 할머니 집 뒷산에 아카시아가 하얗게 덮여 있으니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양해를 구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스님이라면 더더구나 이라면 안 되지요. 경우가 아니지요. 이런 법은 없습니다!"를 반복하니, 봉장을 내어 준 스님의 입장도 불편해지겠다 싶어 봉장을 비우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갑자기 어디로 옮긴단 말인가. 그 할머니가 스님에게도 전화를 걸었는지 해질녘에 스님이 봉장으로 나와서는 다행히 빈 봉장을 찾아냈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밤에 경북 의성군의 숲으로 벌통을 옮겼다. 어제 기껏 지리를 익혀 놓았던 벌들이 아침에 벌통 밖으로 나와 새로운 장소를 보면 또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다시 지리를 익히고 꿀을 따오는 것은 벌들의 몫으로 넘겨 두고 우리 일행은 1200통의 대군을 키운다는 봉장에 구경을 갔다. 반 이상은 이동 양봉을 떠난 상태인데도, 단상 벌통이 끝없이 늘어서 있고, 봉장 가장자리로는 창고와 생활 공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꿀을 채울 드럼통들이 쌓여 있었다.

ⓒ이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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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규모에 입이 쩍 벌어졌다. 모든 양봉인들의 꿈일 테지. 하지만 난 안다. 그 정도의 규모가 갖춰지면 자본가이고, 노동의 땀은 임금으로 계산되고 벌농사의 과정은 획일적이고 기계적으로 돌아가며 돈은 많이 벌 수 있을지언정 벌에 대한 애정은 시든다는 것을. 어찌됐든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하나라도 더 전수받고 밀원이 좋은 봉장터를 주선받기 위해 그 봉장주의 성공담을 실컷 들어야 했다.

ⓒ이순이
꿀벌들이 꿀을 모아들이는 동안 우리는 내년에 들어갈 봉장터를 찾아내느라 거의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고, 새벽에는 다른 팀의 채밀을 도우며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습득했다. 군위에서는 꿀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양봉인들끼리 전화를 주고받으며 올해는 물꿀만 들어오고 그나마 양이 적어 흉년이라는 말이 많이 돌았다. 대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꿀을 드럼통째 납품을 하는데 납품가가 오르니 화색이 돌겠지만, 우리 같은 소농은 생산량이 적으면 타격이 크다.

흉년 소식의 우울한 와중에도 2차 채밀지인 경북 영주시 순흥면으로 갔다. 한밤중에 벌통을 옮겨 놓으려는데 논으로 들어서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트럭이 올라채지를 못했다. 몇 번을 시도하느라 부르릉대며 차체가 흔들렸으니, 벌들의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달했으리라. 하는 수없이 논 아래의 길에 차를 대고 둘이서 벌통을 들어 올렸다. 벌통 배치를 하고, 벌통을 묶은 벨트를 끌러 놓고, 개포를 바르게 덮은 후에 소문을 열어 두고 나니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개구리 소리 요란한 새벽 4시였다. 6시에 다른 팀의 채밀을 돕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누워서 허리 한 번 펴 보지 못하고 약속한 봉장으로 달려갔다. 남편의 졸음운전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승문 앞을 몇 번이나 다녀왔을 것이다. 무슨 놈의 삶이 이리도 '미션 임파서블'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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