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리프킨 <엔트로피>를 읽으세요?"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볼츠만의 원자>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과학 고전 50'을 선정할 때, 정해진 규정은 아니었지만 과학자의 전기(傳記)는 피하려고 했다. 자칫 위대한 과학자 인기투표가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기 하나가 선정되었고,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데이비드 린들리의 <볼츠만의 원자>(이덕환 옮김, 승산 펴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볼츠만? 그게 누구지?" 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라 예상된다. 내가 보기에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년)은 '역사상 위대한 물리학자 5인'을 고른다면 들어갈 사람이다. 우선 볼츠만이 한 일이 무엇인지 가늠해 보기위해 큰 스케일의 질문을 던져보자.

물리학을 구성하는 핵심 아이디어가 무엇일까? 물론 내가 이런 질문에 답할 위치에 있지 않으니, 양자역학의 아버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생각을 들어보자.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을 제대로 하려면 역학, 전자기학, 양자역학, 통계역학의 네 분야를 완전히 통달해야한다고 말했다.

역학은 천재 아이작 뉴턴이 만든 분야다. 이건 세부 분야라기보다 물리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총론이라 보아야 옳다. 뉴턴은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수학적인 절대 시공간을 정의하고 미분방정식을 도입했다. 전 세계의 모든 물리학자는 학부 2학년 때 역학을 공부하며 물리학자의 인생을 시작한다.

전자기학의 스타는 마이클 패러데이와 제임스 C. 맥스웰이다. 전자기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의 세부 분야지만, 더 중요하게는 장(場)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학문이다. 뉴턴 역학이 물체의 운동에 대한 것이라면 전자기학은 공간에 펼쳐져있는 가상의 무엇을 다루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여기서 빈공간이 그냥 빈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뉴턴 역학의 확장판이다. 원자, 분자 세계에서는 뉴턴 역학의 기본 틀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냥 확장이라기보다 변형 확장이라 보는 편이 맞을 거다. 이 때문에 뉴턴 역학을 (유행이 지난) 고전 역학이라 부른다. 양자역학에는 스타가 너무 많다. 이 분야는 수많은 이들의 협업으로 탄생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 <볼츠만의 원자>(데이비드 린들리 지음, 이덕환 옮김, 승산 펴냄). ⓒ승산
통계 역학은 기본적으로 대상이 모호하다.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는 물리 분야란 말이다. 고전 역학에 사용하면 고전 통계, 양자역학에 사용하면 양자 통계다. 원래 통계가 그렇듯이 그냥 대상의 수가 많으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여기에는 핵심이 되는 운동방정식도 없다. 역학에는 'F=ma', 전자기학에는 맥스웰 방정식, 양자역학에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있지만, 통계 역학에는 마땅한 미분방정식이 없다. 이 때문에 물리학과 학생들이 이 과목을 처음 배울 때,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한다. 방법이나 철학 자체가 앞의 것들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통계역학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볼츠만이다.

통계역학의 핵심 질문은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것이다. 시간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 물리학자가 문제를 풀려고 할 때 첫 번째로 할 일은 문제를 정량화하는 거다. 시간의 흐름과 관련된 물리량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바로 '엔트로피'다. 엔트로피를 정의한 것은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였지만, 그 의미는 알지 못했다. 볼츠만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엔트로피의 미시적 기술방법을 제시하고 그 물리적 의미를 파악한 것이다.

엔트로피만큼 혼란을 일으키는 개념도 드물다. 볼츠만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거시적 상태를 구성하는 미시적 상태의 수'다. 분명 우리말인데 왜 이해가 안 되냐는 생각이 들 거다. '무질서의 척도'이며, '정보의 척도'이면서 '무지의 척도'이기도 한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욱 아리송해질 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같이 엔트로피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이 과학 고전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엔트로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은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아니라 린들리의 <볼츠만의 원자>를 읽어야한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성립하기까지의 역사다. 19세기 독일어권의 과학계 뒷얘기를 비롯해서 엔트로피가 갖는 심오한 의미가 무엇인지 웬만한 과학 서적보다 자세히 설명해준다.

사실 엔트로피의 핵심 아이디어는 간단하고 명징하다. 다만 그 핵심에 확률이라는 개념이 들어있어 낮선 느낌이 들 뿐이다. 시간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것보다 확률이 커서 그렇다. 세상에 확률적으로 성립하는 물리 법칙이라니! 그렇다. 이 낯선 느낌만 극복하면 된다.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런 낯섦에서 오는 거부감을 극복하는데 실패했고, 여기서 이 책의 두 번째 축이 나온다.

볼츠만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며 뚱뚱하고 대인 관계에 서툰 어리숙한 사람이었다.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천재적 아이디어를 냈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극렬하게 저항했고, 이 때문에 그는 피곤한 삶을 살게 된다. 더구나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원자가 실제 존재하느냐?"는 철학자 에른스트 마흐의 공격이었다. 원자를 보여주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 없는 불리한 게임이다.

과학이란 분명히 존재하고 측정 가능한 것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에 국한한다는 것이 마흐의 입장이었고, 그 너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그는 못 박았다. 안타까운 것은 볼츠만보다 마흐가 더 유명했다는 사실이다. 마흐의 철학은 당시 빈의 세기말적 분위기와 호응하여 일반인들에게도 지지를 받았다. 이 책은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이 논쟁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쨌든 그의 이론은 1890년대 말이 되어서야 서서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때 볼츠만은 이미 과학 일선을 떠난 후였다. 한때 볼츠만의 이론을 믿지 않았던 막스 플랑크가 이즈음 마음을 바꾸게 되고, 곧 흑체 복사 이론이라는 황금알을 낳게 된다. 이 알은 부화하여 양자역학이 된다.

볼츠만의 통계적 접근에는 원자의 존재가 명백히 가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끊임없는 무작위적 요동이 존재한다. 이를 수학적으로 기술한 것이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논문이다. 볼츠만이 물리학에 확률을 도입했을 때 모두가 거부했지만, 머지않아 20세기의 천재 물리학자들은 확률을 양자역학의 중심에 놓게 된다.

말년, 볼츠만은 조울증을 보이다가 1906년 62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897년 이미 전자가 발견되었고, 1911년에는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원자핵의 존재를 보인다. 이로써 원자의 구조에 대한 연구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따라서 볼츠만이 조금만 더 살았다면 그의 업적이 인정받는 것을 보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시대를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볼츠만은 물리학에서 그런 사람이었다.

볼츠만은 엔트로피가 증가하기만 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했다. 문제는 엔트로피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거였다. 볼츠만은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작아서 무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그 확률이 얼마나 적은 것인지를 기술하는 일반적인 법칙을 가지고 있다. 1993년 데니스 에반스 등은 '요동 정리(fluctuation theorem)'라는 것을 제안한다. 이 정리는 일정량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확률의 비를 그 엔트로피의 함수로 기술하는 방정식이다.

우주를 이해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던 볼츠만. 생전에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죽은 후에도 그의 업적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츠만의 이름을 기억하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흐르는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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