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을 위한 조선업 구조 조정, 사기다!

[독서통] <현대 조선 잔혹사>

조선업 구조 조정 이슈가 한국 경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대로라면 중국의 저가 공세에 치인다' '미래를 걸었던 해양 플랜트 사업마저 위기다' '세계 경제 불황으로 조선업 전망이 어둡다.' 실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이 정작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진 않는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만큼 조선업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도 말이죠.

한국 조선업의 실상은 참혹합니다. 현장 노동자가 일하다 부지기수로 죽어나갑니다. 안전 설비 따위는 없습니다. '무사고 몇 시간'이라는 공장 홍보 간판에 속아선 안 됩니다. 그저, 산업재해 신청자가 없었다는 말일 뿐이니까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도 만연합니다. 정규직이 출근하지 않는 날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찬물로 샤워해야 합니다. 밥도 함께 먹지 못합니다.

<프레시안>의 허환주 기자는 직접 조선 업체 하청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21세기 한국 노동의 처참한 민낯을 살펴봤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오래 취재한 결과를 <현대 조선 잔혹사>(후마니타스 펴냄)에 담았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위장 취업 경험을 담은 르포르타주의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한국 조선 산업의 하도급 구조, 조선업의 현황 등을 충실하게 설명했고, 하도급 업체 사장 등 그간 언론에서 조명하지 않은 조선업 관계자의 목소리도 담았습니다.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진행하는 '독서통'은 20일 서울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허환주 기자와 함께 한국 조선소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조선소에 위장 취업한 기자

김종배 : 책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어떤 책을 들고 나오셨나요?

강양구 : 저희가 시즌 2 시작하고 주로 외서와 구간을 소개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신간을 들고 나왔습니다. <현대 조선 잔혹사>라는 책입니다.

김종배 : 최근 엄청난 의제 가운데 하나가 조선업 구조 조정입니다. 때맞춰 나온 책입니다.

강양구 : 이 책을 고른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업으로 상징되는 장치 산업 구조 조정이 한국의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최근 구의역 사고로 상징되는 한국의 산업재해 문제, 또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입니다. <현대 조선 잔혹사>는 조선업을 중심으로 하청 문제와 산업 재해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대 조선 잔혹사'의 '조선'은 배 만드는 산업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헬조선'처럼 한국을 은유하는 단어인양 들리기도 합니다.

김종배 : 저자가 누구입니까?

강양구 : 제가 아는 저자입니다. <프레시안>의 허환주 기자입니다. '내부자 거래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까봐 스스로에게 여러 번 자문했습니다. 정말로 좋은 책이어서 가지고 나왔어요. (웃음)

김종배 : 강양구 기자가 '다음에 이 책을 하자'고 하기에 제가 '내부자 거래 아니냐'고 했습니다. '아니다'라고 하기에 책을 읽어봤는데, 책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저자인 허환주 기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허환주 : 예, 안녕하세요.

김종배 : 이 책은 허환주 기자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썼습니다.

허환주 : 보름 가까이 일했는데, 도저히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일이 힘든 것도 문제인데, 잘못하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한 눈 팔고 발 헛디디면 바로 죽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퇴근하면 온 몸이 따끔따끔했습니다. 결국, 보름 만에 그만뒀죠.

강양구 : 저는 편집국 내에서 '취업한 김에 한 달은 일해야 한다'고 농반진반 얘기했어요.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그렇게 말한 게 미안했습니다. 보름 만에 안 돌아왔다면 이 친구를 잃었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이 일을 보름 가까이 현장에서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종배 : 몇몇 기자가 현장 잠입 취재를 합니다만, '내가 기자'라고 밝히고 현장에 들어가는 건 100% 잠입 취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들어가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실상을 그대로 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가감 없이 조선소 노동의 맨얼굴을 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양구 : 단순히 '저자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쓴 르포르타주'이기만 했다면 이 책을 안 들고 왔을 겁니다. 이런 책의 고전이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작품입니다. 조지 오웰이 직접 탄광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 조건, 생활 또 그들의 사고방식 등을 생생히 기록한 작품이죠. 그 책은 반세기 이상 르포르타주의 고전으로 꼽혔죠.

그런데 <현대 조선 잔혹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이 조지 오웰의 작품보다 못할 게 뭐지? 지금 한국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위건 부두로 가는 길>보다 <현대 조선 잔혹사>를 여러 독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하청 노동자의 사고는 기록되지 않는다

김종배 : 그런 잠입 취재의 한계 가운데 하나가 숲은 보여주지 못하고 나무만 보여준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책은 조선업 현황 전반을 일목요연하게 한눈에 보여줍니다. 그래서 지금 이야기되는 조선업 구조 조정에 관한 사전 이해를 쌓는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일단 보름 동안의 위장 취업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어떤 점이었는지부터 이야기해 보죠.

허환주 : 조선소 업무가 다 분리돼 있습니다. 일하다 보면 '어디서 사람이 다쳤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적잖은 경우 중대 재해(산업안전보건법상 ▲ 사망자가 1인 이상 발생한 재해 ▲ 3개월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하는 부상자가 2인 이상 발생한 재해 ▲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인 이상 발생한 재해)죠.

하루는 제가 일한 케이싱(엔진룸) 옆 케이싱에서 도장하시던 40대 아주머니가 발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셨어요. 저도 일할 때 발판을 움직일 때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해서 움츠러들곤 했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조금만 실수하면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김종배 : 조선소에 여성 노동자가 우리 생각보다 많은데, 그분들이 대부분 도장 업무를 하신다고 합니다. 스프레이로 분사해 도장하는데, 중간 중간 페인트가 제대로 안 묻은 부분은 붓으로 칠해야 한다고 합니다.

허환주 : 안전 펜스라도 설치하고, 몸이 기울어질 때 잡을 기둥이라도 있으면 위험이 줄어들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 하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사건을 겪고 한편으로는 '안전 관련 지침이 조금 바뀌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분이 반신불수 되셨다는 이야기만 들리고, 안전 조치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아침 출근길 정문에 "무사고 며칠"이라는 글귀가 그대로 붙어있었다는 겁니다.

강양구 : 분명히 어제 사람이 떨어지는 큰 사고가 났는데도 사고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거군요?

허환주 : 네. 그 숫자가 '1'이 되어야 하는데, 무재해 팔백 며칠이 되어 있었던 거죠. 아무도 이에 관해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김종배 : 왜 재해가 없다고 넘어가버린 겁니까?

허환주 : 저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렇게 다쳐도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으면 재해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양구 : 책에 잘 설명됐습니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친 당사자들이 재해 신청을 하지 않는 거죠.

허환주 : 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가, 어쨌든 회복 후 다시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관리자 눈 밖에 나선 안 됩니다. 따라서 공상 처리(공무 중 당한 재해에 관해 사업주가 직접 보상하는 것.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직원이 입은 재해는 '업무상 재해' 혹은 '산업재해'인데, 이는 신고제다. 기업주가 신고를 원치 않을 경우 대개 공상 처리한다)합니다. 입원비가 나오면 회사에서 일정 금액을 주고, 대신 산재 처리하지 마라고 노동자에게 권유합니다.

강양구 : 이 대목을 듣고 청취자 여러분은 분노하셔야 합니다. 노동자가 산업 재해 신청을 하면, 산재보험에서 돈이 나옵니다. 그 돈은 기업이 냅니다. 그런데, 그 노동자가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고 공상 처리되면, 치료비 일부를 국민건강보험에서 냅니다. 기업이 내야 할 치료비를 국민이 내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처리하고 기업체는 사고가 없다며 산재보험에 내야 할 돈을 절감 받습니다.

▲하청업체에서 파견돼 위험 노동에 몰리는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자는 매일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정기훈

모든 위험은 비정규직에게로

김종배 : 조선소에서 주로 나타나는 재해가 어떤 유형입니까?

허환주 : 1970~80년대에 정말 많은 노동자들이 돌아가셨는데, 당시 대부분 추락사하셨거나 협착되어서, 즉 기계 사이에 몸이 끼어서 돌아가시거나, 낙하한 물건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래형 사고가 아직도 전체 산재의 80% 가까이 됩니다.

김종배 : 많은 분이 한국 조선업 위상이 세계적이니 작업 환경도 선진화되었으리라고 착각하십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조선업 공정은 자동화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게 인간 노동력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니 거기서 발생하는 중대 재해 형태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거고요.

강양구 : 여기서 더 문제는, 이런 재해 대부분이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된다는 거라던데요?

허환주 : 책에도 썼습니다만, 조선업 하청 노동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중국발 물동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세계적으로 중국의 물동량을 감당할 배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조선업이 대호황을 맞았죠.

당연히 노동자를 늘려야 하는데, 회사는 노동조합 때문에 정규직을 늘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많이 줘야 한다는 점도 문제였죠. 그러니 조금 쉬운 일, 누구나 와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청 노동자를 뽑아 시켰습니다. 기업이 이런 경향을 점점 늘려가고, 단순 작업하던 사람도 숙련 노동자가 되면서 2000년대 후반 들어서면 하청 노동자가 용접, 도장, 파워 그라인더 등의 핵심 업무도 맡게 됩니다.

강양구 : 그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 일부도 하청 노동자를 반겼다면서요?

허환주 : 조선업의 생산 관련 업무가 30~40가지 정도 됩니다. 그 중 특히 위험한 업무가 몇 가지 있어요. 도장이 대표적이죠. 배의 모든 면에 페인트칠을 해야 하는데, 대포처럼 큰 분사기로 배의 표면에 쏴요. 워낙 유해하니 우주복과 같은 옷을 입고 분사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막아도 유해 물질이 호흡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파워 그라인더도 마찬가지인데, 이건 철을 깎는 업무입니다. 엄청나게 큰 철면의 모서리에 그냥 페인트칠을 하면, 철면이 거칠어 페인트가 금방 벗겨집니다. 이 때문에 겉을 모두 매끄럽게 깎습니다. 이 업무 역시 특수복을 입어야 합니다. 철가루가 마구 날려서 역시 호흡기에 치명적입니다.

이런 일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매우 꺼립니다. 그런데 하청 노동자들이 숙련자가 되었으니, 회사와 정규직이 적당히 거래해 이런 위험 업무를 하청 노동자에게 맡깁니다.

강양구 : 회사는 비용을 아끼고, 정규직 노동자는 위험을 외주화하는 거군요.

김종배 : 그러니 중대 재해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고요.

조선업의 경우 정규직 한 명당 하청 노동자가 3.5명 정도 된다면서요?

허환주 : 네. 산업 전체로 따지면 노동자 10명 중 원청이 3명, 하청이 7명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르기 쉬운' 사람들

김종배 : 요즘 조선업이 구조 조정된다, 현대중공업이 희망 퇴직 3000명 신청받는다, 이런 뉴스 나오잖아요? 여기서 3000명은 정규직입니까?

허환주 : 네.

김종배 : 그러면, 정규직 3000명이 잘릴 때 이미 비정규직 1만 명이 잘렸다고 봐야겠군요.

허환주 : 네. 현대중공업 희망 퇴직자 3000명의 대부분은 사무직입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 해고된 하청 노동자 통계가 있습니다. 8000명 정도 됩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의 경우도 거의 비슷한 규모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통계가 잘 안 나와요. 현대중공업은 그나마 하청노조가 있으니 자료가 있는데, 나머지 조선소에서는 어느 규모로 얼마나 많이 잘리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김종배 : 고용 형태가 아니라 계약 형태니까, 그냥 계약 해지하면 끝이죠. 해고가 아니라고 기업은 주장하고요.

허환주 : 원하청 구조에서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려는 가장 근본적 이유죠.

강양구 : 똑같은 작업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하청 노동자 개개인이 다 다른 업체 소속이라면서요?

허환주 : 네. 전 케이싱에서 일했는데, 아파트 10층 높이 정도 됩니다. 그 안에만 노동자 수십 수백 명이 있습니다.

내부에 족장(비계, 임시 발판)을 층마다 설치했습니다. 제가 만일 3층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위에서는 그라인딩 작업하고, 밑에서는 도장하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혼재 작업이 이뤄지죠.

강양구 :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허환주 :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관련 법상 하청끼리 여러 작업을 혼재해서 하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원청과 하청이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것만 문제됩니다. 원하청이 같은 공간에서 다른 작업을 하면 차별이라고 해서 안 되지만, 하청끼리 모여 있으면 문제 삼지 않죠.

저는 일하면서 관리자가 조금만 업무를 조정해주면 일을 더 안전하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나 싶었어요. 알고 보니, 그렇게 개입하는 순간 원하청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하청에게 관리자가 업무 지시를 하면 불법 파견 등으로 인해 법에 걸립니다.

그러니 하청 노동자끼리 알아서 일하는데, 일을 일찍 끝내야 하니 옆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건 '난 오늘 내 일 어디까지 끝내야 하니 신경 꺼라'는 식이에요. 그러니 사고가 안 생길 수 없죠.

김종배 : 대충 현장 그림이 그려지시죠?

요즘 조선업 구조 조정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만, 뉴스가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하청 구조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모든 숫자에 하청은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조선업 전반이 동시에 가라앉으니, 하청 노동자는 갈 데가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환주 : 하청 노동자들이 그 때문에 플랜트 산업으로 많이 간다고 하더라고요. 조선업과 플랜트 업무 구조가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지역 건설업도 어렵잖아요? 그러니 요즘은 이런 전업도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자르기 쉬운 사람'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세상은 이들에게 관심 없었다. ⓒ정기훈

같은 일하는 다른 사람

김종배 :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화났던 부분이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책 내용을 그대로 읽겠습니다.

"정규직, 즉 원청 직원과의 차별도 사람 마음을 옹졸하게 만든다. 통근 버스에도 정규직 자리가 지정돼 있는데, 그런 자리는 비어도 함부로 앉지 못한다. 정규직 직원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온수도 나오지 않아 찬물로 샤워를 한다. 정규직 퇴근 시간이 지나면 기본 전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끊긴다."

이게 1950~60년대 미국의 흑인 차별과 뭐가 다릅니까?

강양구 : 같은 맥락에서 저도 굉장히 화난 대목이 있습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 중 하나가 (실질 업무 시간이 늘어나니) 체조하지 말자는 거였답니다. 덕분에 지금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체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청 노동자들은 한다고 해요. 업무 시작 시간 20분 전에. 30년 전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했던 선배 덕분에 혜택을 누리는데, 하청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분들은 여전히 30년 전의 폐습을 버텨야 합니다.

김종배 : 정말 이처럼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심해요?

허환주 : 제가 일하는 동안 정규직을 본 적이 없어요. (웃음) 그래서 정확히 설명하진 못하겠습니다.

다만 취재하면서 하청 노동자를 많이 만났고, 여러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들의 생각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동을 하는데, 나머지는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상여금으로 원청(정규직)은 70만 원을 받는데, 나는 30만 원만 받는다. 작업 도구를 받아도 원청은 가죽장갑을 쓰는데 나는 면장갑을 쓴다.

김종배 : 다른 공장을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사용하는 식당이 다르거나, 식당이 같으면 밥 먹는 시간이 다르다더군요.

허환주 : 이 책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밥 먹는 사진을 실었어요. 이 사진이 2012년인가 2013년쯤 사진인데, 해양 플랜트에 하청 노동자가 엄청 늘어나서 이들이 밥 먹을 식당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현장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여기서 점심을 먹도록 했어요. 정규직은 식당을 썼겠죠.

강양구 : 앞서 구의역 사고를 잠깐 이야기했습니다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위험 업무를 모두 직접 고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의미심장한 이야기인 게, 만일 원청 하청 구분 없이 전부 직접고용 형태로 작업이 이뤄졌다면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안타까운 죽음의 사연을 상당히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도 정리되어 있습니다만, 유럽 같은 다른 선진국에도 조선업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곳 조선소에서는 죽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조선소라서 죽는 게 아니라, 한국처럼 기이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노동이 이뤄지는 곳에서 사람이 죽어요.

김종배 : 다른 나라와 한국 조선소가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작업 환경이 다른 게 아닙니다. 하청 중심으로 돌리다 보니, 도급을 주고 대가로 돈을 주는데, 이걸 후려치니 하청 업체는 비용을 줄이려고 동시 작업을 시키면 안 되는데도 시키는 식으로 노동자를 위험에 노출시킵니다.

강양구 : 발판이 흔들리면 안전 조치를 강화해야 하는데, 이러다 보면 시간이 걸리잖아요. 한 시간 이내에 마무리할 걸 못한다 싶어 그냥 계속 일하게 하니 노동자가 바닥에 떨어져 돌아가시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거죠.

'대항해라'는 한심한 주문

김종배 : 우리는 '하청'하면 다 똑같은 줄 아는데, 하청에도 등급이 있더군요.

허환주 : 일차 하청 업체를 하청본공이라고 표현해요. 하청본공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가 또 있어요. 하청의 하청이죠. 하청본공이 현대중공업에서 100의 일을 따왔다면, 그 중 70은 자기가 하고 나머지 30은 다른 하청 업체에 넘기는 거죠. 그 30을 일하는 업체는 2차 하청 업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2차 하청 업체도 30의 일을 다 못해요. 20의 일을 하고 10의 일은 3차 하청 업체에 넘기죠.

업체라고 하니 크고 대단한 회사로 생각하기 쉬운데, 건설업의 십장 정도로 생각하시면 돼요. 다섯 명이 한 조로 이뤄져 한 업체가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양구 : 대표 한 명, 총무 한 명 정도 있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노동자고요.

김종배 : 책에는 '물량팀'이라고 표현되는데, 오늘 여기서 부르면 여기서 일하고, 다음날은 저기서 일하고.

허환주 : 네.

강양구 : 그러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A 현장과 B 현장이 다 다른데, 거기 어떤 위험 요인이 있는지 파악할 겨를도 없잖아요.

허환주 : 네. 하청 업체 노동자가 대부분 시급제예요. 그런데 물량팀만은 일당제로 받아요. 그러니 물량팀은 오늘 몇 시까지 이 일을 무조건 마무리해야 돼요. '이 시간에 이만큼 일하겠다'고 하고 돈을 받는 사람이니까요. 시급제로 일하면 일정 시간동안만 하면 되는데, 물량팀은 그럴 수 없는 거죠. 거의 대부분의 산재 사고가 물량팀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뭉뚱그려 하청 노동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5~10명 정도로 이뤄진 팀으로 움직이는 노동자가 대부분인 거죠. 이런 식으로 일하니 많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양구 : "그러면 하청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노조를 만들어야할 것 아니냐"고 하실 분도 있을 거예요. 이 책을 보면, 그게 왜 불가능한지도 설명됩니다.

허환주 : 회사도 바보가 아니잖아요. 블랙리스트부터 시작해서 노동자 관리를 철저히 합니다. 대표적으로 현대중공업의 경우 273개의 하청업체를 관리하는데, 평균 60~70명 정도로 직원 수를 제한하라고 해요. 100명이 넘어가면 노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유죠. 조그만 노조라도 만들어지는 순간, 회사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지니까요.

이렇게 관리하니, 안 그래도 일하기 바쁜 노동자가 언제 노조 만들어서 우리 목소리 내겠느냐는 자괴감도 많이들 가지시는 것 같아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쓰다 버려진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차별은 회사의 '시혜'

김종배 : 이 책이 현장 이야기만 담은 게 아닙니다. 조선업 전반을 개괄하는 자료, 산업 재해 자료가 각종 데이터로 제시됩니다.

특히 건설 업체에서 하청 업체 사장님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알려주는 대목도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강양구 : 하청 업체 사장님 중 자살하신 분도 있으시더라고요.

김종배 :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만, 나머지 내용은 여러분이 책을 보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평단 질문도 조금 받아볼까요?

서평단 : 중국의 조선업이 부상하고 있는데, 중국에서도 이런 사고가 많이 발생하나요?
허환주 : 예.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보다 곱절로 많이 죽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다 사진으로 봤는데, 한국 조선소의 발판은 철로 돼 있어요. 거긴 대나무입니다. 아마 거기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매우 많은 노동자의 죽음이 있을 겁니다.

하다못해 한진중공업이 만든 필리핀의 수빅 조선소에서도 많은 현지 노동자가 죽었죠. 사실 유럽 선진국의 산재율이 낮다고 하는데, 엄밀히 말해 그곳 나라가 위험을 제3세계로 외주화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 정도로 본격화하지 않았고, 위험을 하청 노동자에게로 외주화한 거죠.

서평단 : 식당이나 버스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일어나는데, 이게 정규직 노조가 요구한 건가요? 아니면 회사의 분리 정책이 있는 건가요? 아울러 이런 노동 현실에 관해 정규직 노조의 반응은 어떤가도 궁금합니다.
허환주 : 정확히 얘기하면 차별이 아니라 원청 회사의 시혜입니다. 원청 입장에서는 하청 노동자에게 통근 버스를 지원할 필요가 없죠. 원청 회사에서 장갑을 나눠줄 필요도 없죠.

김종배 : 제3자 입장에서 보기엔 명백한 차별인데, 원청은 시혜로 생각하는 거군요.

허환주 : 네. 현대중공업의 경우 하청 노동자가 5년 이상 일하면 성과급 얼마, 학자금 혜택 지원 등의 복리 지원을 해요. 이를 위해 정규직 노조가 힘쓴 부분이 있죠. 어쨌든 우리가 보기엔 명백한 하청 차별이 일어나도, 원청에서 '우리가 시혜를 제공하는데 왜 뭐라고 하느냐'고 해버리면 할 말이 없죠.

정규직이 이 구조에서 뭘 했느냐를 어떻게 말하기란 쉽지 않네요. 또 현대중공업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현대중공업 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는 현대중공업에만 하청노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조선소의 경우 하청노조가 없으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2014년 어용 노조가 물러나고 민주 노조가 들어왔어요. 당시 대표적으로 한 일이 원하청 공동으로 하청노조 조합원 가입 운동을 했어요. 그러나 결과가 매우 안 좋았어요.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는데, 제가 들은 얘기는 '결국 정규직 노조의 생색내기였다'는 평가예요. 하청노조를 조직하고 만드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이 필요한데,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그런 부분에 부족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입니다.

조선업 위기론, 과장됐다?

서평단 : 세계적으로 조선업이 어렵다고 하는데, 이 상황에 안전 조치를 강화하면 비용이 더 들 테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대응책이 있을까요?
허환주 : 저는 조선업이 과연 위기냐는 의구심이 들어요. 지금 큰 규모의 적자를 보는 곳이 한국의 전체 조선업이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한 곳이에요.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업계에서 오래 전부터 좀비 회사나 마찬가지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저가 수주로 인해 여러 차례 문제가 됐죠.

반면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은 2000년대 들어 계속 흑자였어요. 사업 확장도 많이 했고요. 아직 수주량이 2년치 가까이 남아있어요.

정규직에 희망 퇴직 받는다고 하지만 그 숫자는 미약한 편이죠. 삼성중공업은 그나마 2020년까지 2000명을 줄인다는 게 전부죠.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압박에 발맞춰 시늉만 보이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강양구 : 선제적으로 구조 조정하면서 정부 지원까지 받으려는 생각 아니냐는 거군요.

허환주 : 그렇죠.

김종배 : 지금 언론에 거론되는 조선업 구조 조정 이야기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허환주 : 저는 정말 구조 조정을 하고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지금 나오는 이야기는 대량 해고뿐입니다.

2010년부터 정부 주도하에 해양 플랜트 사업이 이뤄졌고, 거제에는 대규모로 해양 플랜트 연구 단지도 만들기로 했죠. 그런데 유가 하락으로 인해 해양 플랜트 전망이 안 좋습니다. 이 상황에 구조 조정을 하자고 하면, 앞으로도 해양 플랜트를 계속 강화할 것인지, 강화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이 길이 아니라고 한다면 컨테이너선이나 바지선을 위시한 저가 선박이 중국에서 치고 올라오는 시대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의 전략적 계획 아래에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려우니 해고해야 한다'는 말밖에 없어요. 해고안만 나오지, 조선업의 마스터플랜은 얘기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현대 조선 잔혹사>(허환주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김종배 :
조선업의 문제는 해양 플랜트 산업에 관한 경영 판단 실패였는데, 이걸 왜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해양 플랜트 사업 선택이 왜 문제였느냐는 거론된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해양 플랜트 사업 선택이 왜 실패였느냐가 설명됩니다. 해양 플랜트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려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수준은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처럼 저유가 시대에는 바보가 아닌 이상 발주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런 판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사업에 뛰어든 결과가 고스란히 적자로 돌아왔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이런 걸 제대로 짚지 않죠.

강양구 : 구조 조정이 국민 경제와 지역 경제, 또 노동자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정몽준 씨 같은 소수의 재벌 경영자를 위한 것이냐는 의문이 자꾸만 들더라고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여러분도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되시리라고 봅니다.

김종배 : 오늘 <프레시안>의 허환주 기자가 쓴 <현대 조선 잔혹사>를 이야기했습니다.

강양구 : 조선업, 산업재해, 하청 노동자 문제까지 조선업과 관련한 전부를 다룬 책입니다.

김종배 : 조선업에 관해 제대로 짚어보고자 하시는 분은 반드시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허환주 기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환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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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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