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크레인에 쓰레기통 매달고 일 시킨다"

[증언대회] 임금체불, 대량해고에 놓인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

고성, 통영 인근 조선소의 '물량팀'에서 용접공으로 일해 온 최강호(43) 씨. 2008년 11월 마산에 있는 동림중공업 물량팀에서 처음 용접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8년 째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 용접을 배울 때만 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막상 부딪힌 현실은 그동안 겪어왔던 세상과는 전혀 달랐다.

2012년 8월 통영 성동조선소 물량팀에서 일할 때다. 팀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름 휴가 기간 중이었다. 최 씨와 친하게 지내는 형님이 현장에서 일하다 지게차에 협착 돼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게차 운전기사는 심지어 무면허였다.

사고를 당한 형님과 최 씨는 '절친'이었다. 집이 마산인지라 '카풀'도 함께 했다. 일 외의 사적인 이야기도 주고받는 유일한 동료였다. 워낙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라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형님의 사망 소식에 휴가를 취소하고 곧바로 다음 날 출근했다.

그렇게 출근한 현장에는 중앙 통로 출입구 쪽에 사각으로 안전 테이프가 처져 있었고 그 가운데 스프레이로 사람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사고 현장이었다. 그런데 몇 분 있으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체조 음악이 흘러나왔고 휴게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사고 현장 바로 옆에서 작업 소장 주도하에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야 이 XX들아, 너그가 인간이가? 너거랑 같이 일 하던 동료가 어제 이곳에서 죽었는데 너거는 묵고 살라고 사고현장 바로 옆에서 체조하고 있나? 이 XX들아!"

그렇게 외치고 주저앉아 통곡했다. 형님이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노동자들에게 분노했다. 하지만 조선소 현장이 그러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누군가가 일하다 죽어도 언제 죽었냐는 듯 이내 다시 작업을 해왔다.

더구나 이 사고에 대해 원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언제 그렇게 그들이 법을 잘 지켰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촉구함과 동시에 노조가입 운동을 벌여나갈 것임을 선포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위험한지 알고 시키고, 또 일한다"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선업종노조연대 주최로 조선산업에서 하청, 즉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요즘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조선소 구조 조정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조선업 불황이 이유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의 해고는 시작된 지 오래다. 현재도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불황이라는 이유로 길거리로 쫓겨나고 있다. 2014년 12월 말 4만1059명이었던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은 2016년 3월 말 현재 3만331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1년 3개월 사이에 7742명이 사라진 셈인데, 그야말로 소리 소문이 없었다.

개미처럼 일해 온 사람들이 노조도 없이 제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그런 그들이 조선소에서 해온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꺼리는 위험한 일을, 그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으로 떠맡았다.

이날 증언대회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조선 빅3(현대, 삼성, 대우)가 아닌 중소 조선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조선 빅3 하청 노동자보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최강호 씨는 "조선소에서는 말로만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하지만 정작 안전은 제일 마지막 순위"라며 "안전 매뉴얼 다 지켜가며 일하면 업체장이나 물량팀 모두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씨는 "그러니 위험한 것을 알면서 작업을 시키고 또 작업자는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2미터 이상 고소 작업은 발판 없이는 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이 발판 작업은 작업 공정에 맞춰 설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업체가 발판공정에 맞춰 제작공정을 늦추는 법은 없다고 한다.

최 씨는 "발판이 설치되지 않을 경우, 사다리 놓고 고소작업을 진행시키고 사다리로도 안 되는 곳은 크레인에 쓰레기통을 달아서 그 속에 작업자를 탑승시켜 일 하도록 지시한다"며 "작업 공정을 늦추면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000만 원 체불해놓고 벌금은 고작 500만 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임금체불 문제도 지적했다. 최 씨는 '솜방망이' 처벌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씨는 "하청 업체 사장이 노동자의 임금을 6000만 원 체불했다고 하면, 노동자들이 이 사람을 고소해도 500만 원의 벌금만 받는 식"이라며 "이러니 누가 임금체불을 하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최 씨는 "임금체불이 문제될 것을 아니 사장들은 자기 재산은 가족 명의로 빼돌리고 고급차를 몰고 다닌다"며 "결국, 법은 있는데 처벌이 약하니 이런 임금체불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진행되는 대량해고를 두고도 쓴 소리가 이어졌다.

하영수 대선조선 위원장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죽도록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데 돌아오는 것은 상이 아닌 대량해고, 임금체불이라면 어느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지금 눈앞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도 정부는 조선업에서의 문제점과 관련해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 내놓은 게 고작 물량팀의 고용보장 정도다"라며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을 정부 관리 하에 두어서는 안 된다, 법을 다루는 국회에서 근본적 처방과 앞으로의 대비책까지 손을 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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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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