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장애인 "사람이 고팠다"

[여기, 유성 잇다 ②] 장애인과 노동자가 만나다

3월 17일, 한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료들은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5년이 넘도록 현대차와 유성기업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온갖 공작을 펼쳤다.

그러나 파괴된 것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다. 일상, 평화, 우정, 희망, 관계…. 노동조합은 이런 말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깨져본 사람은 안다. 이런 말들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말로 만난다. 인간의 존엄.

한광호 열사를 이대로 보낼 수 없는 유성노동자들을 또 다른 사람들이 만난다. 직업병 피해자, 장애인, 성 소수자, 철거민, 밀양 할매….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속 깊은 친구들이 되어줄 사람들의 만남을 전한다.

시청광장 같은 곳에서 같은 경험으로

한광호 동지의 영정 사진이 있는 천막 안, 6월의 빛으로 더 뜨거워지고 있는 곳에서 우리는 만났다. 서울시청 광장의 다양한 이유의 시위와 기자회견, 자동차 소리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우리의 첫 이야기는 2016년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서울시청 광장 천막 안에서 농성하고 있는 유성노조 동지들에게, 서울시청 광장의 이 자리에서 2005년 40여 일 동안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스티로폼 하나 깔고 비닐 하나 덮고 버티며 맞이하던 때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됐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깨어나는 서울의 새벽 소리가 어떤 것인지, 목덜미로 스며드는 새벽 찬 공기가 어떤 것인지, 시간 차이와 다른 조건에 있지만, 같은 곳에서 같은 경험 때문에 공감되었다.

왜 노조원이 되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노조원이 되면 회사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이고 탄압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노조원이 되었느냐고 나는 질문을 하였다. 유성기업은 입사하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노조에 가입되기 때문에, 김순석 동지, 엄기한 동지의 얼굴에 나의 질문이 생소하다는 표정이 짧게 지나갔다. 그리고 두 동지가 말했다.

"사람이 고팠다."
그리고 "함께 술 마시고 이야기 하는 것이 참 좋았다"라고. 노조 활동을 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하던 시간들을 이야기하는 표정에서는 행복함이 가득해 보였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던 노조, 사람이 고팠던 것을 채워주던 노조, 그래서 자신이 노동자이고 유성노조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이 투쟁을 버티게 해주는 기둥 같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필요 없으면 산업 폐기물 버리듯이 해고해버리는 자본가들에게, 노동자도 사람이라고 외치는 투쟁을 하고 있다.

▲ 왼쪽부터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엄기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김순석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존재를 부정당한 장애인의 삶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부모가 가족이 책임지지 않으면 마을 밖 농장의 가축처럼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시설로 들어가,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 교육도 이동도 노동도 희망도 모두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할 수도 가질 수도 없었다. 어떠한 정책도 장애인도 국민으로 시민으로 '있다'라는 전제 아래 계획되지 않았다. 그 많은 정책 안에 장애인이 없다. 분명 있는 존재인데 마치 없는 존재로 낮에 나온 달처럼 존재가 부정 되어 왔다.

그래서 나 스스로 존재를 인정하고 장애인으로 긍지를 가지기 위해 투쟁을 한다. 장애인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고팠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처럼 살기 위해, 권력가들에게 장애인도 사람이라고 외치는 투쟁을 한다.

그래서 광화문역사 지하에서 장애 등급제와 부양 의무제 폐지를 외치는 농성을 4년째 하고 있고, 여의도 새누리당 길 건너 이룸센터 처마 위에서는 경기도 남경필 도지사에게 경기도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며 열흘이 넘게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장애인이 사람임을 외치는 투쟁은 계속 되고 있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는가?

자본가들과 권력가들은 자기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였는지를 모른다. 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에게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해고 통보하여 쫒아내고, 직장 안에서 괴롭히고, 부당한 대우를 하고, 필요로 할 때 사용하고 버리는 도구보다 못하게, 우리를 사람으로 보았다면 할 수 없는 짓을 하였다.

그들은 장애인을 몇 십 년씩 시설에 갇혀 살게 하고, 이동할 수단을 만들지 않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만들지 않고, 지역에서 살 수 있는 집이 마련하지 않고, 장애인의 몸을 등급으로 나누었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와 장애인도 존엄한 인간인데, 그들에게는 우리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기는 방법을 안다

우리는 사람이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과 저녁이면 같이 밥을 먹고 싶고, 친구와 시시한 이야기로 웃으며 술 한 잔을 하고 싶고, 때로는 애인과 영화도 보고 싶고, 자매·형제들과 여행도 가고 싶고, 호화롭거나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쁨을 주는 노력도 하고 싶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주는 작은 행복이 마냥 좋은 우리는 사람이고 싶다.

이 정도를 바라는 것이 전부인 우리가 자본가와 권력가들에게 억압당하고 밟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존엄한 사람으로서 노동자도 장애인도 당당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자본가와 권력가들은 우리에게서 자기들의 기준으로 우리가 사람임을 잊게 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우리는 사람임을 노동자임을 장애인임을 서로 인정해주고, 스스로 자긍심을 잃지 않으며, 사람에 대한 고픔을 연대로 채워나간다면, 우리는 분명 이길 것이다. 꼭 이기게 될 것이다.

유성노조 동지들의 자긍심에서 나의 지친 투쟁을 충전하였다. 다음에는 내가 유성동지들에게 충전시켜 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채우며 같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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